종교인 과세…국회·정부·종교계 '同床三夢'

"종교인 소득에도 세금을 물려야 한다."

수 십년 동안 논란만 거듭한 채 현실화되지 못한 해묵은 과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정부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종교인 과세도 '종교소득' 명칭으로 법제화시키고, 직장인처럼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더 내게 하겠다는(누진구조) 방향성을 설정했다. 종교계에서도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비추어볼 때, 종교소득을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규정하는 방침이 연내에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계에서 '법으로 규제하지 말고, 종교인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반대 입장을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어 종교인 과세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도 표심에 영향으로 종교인 과세에 대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모양새다. 일부 종교단체의 반발을 근거로 정부에 '신중론'을 주문하는 한편 종교계 설득을 하겠다는 핑계로(?) 법제화를 무력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입장, "종교인 과세 분위기 무르익었다"

정부가 발표한 2015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종교인들이 받는 급여(사례금) 등을 '종교소득'으로 명시하도록 하고, 소득이 많은 종교인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기 위해 필요경비율을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종교인 과세를 법제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앞서 지난 2013년 소득세법을 개정하며 관철시키려 했으나 국회에서 무산됐다. 이후 종교인 소득의 80%를 필요경비로 인정하며 원천징수의무자는 종교단체로 해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작년 말 국회 논의과정에서 1년 유예 결정이 내려졌다.

다시 말해 가만히 놔둬도 올해 과세제도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과세체계를 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등 한발짝 더 나아가면서 이 문제를 매듭짓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를 공고히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종교인 소득에 대해 과세 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며 "애초에 종교인 과세에 대해 장기적인 시각으로 봤다면 유예기간을 한 2~3년 설정했을 것인데, 국회에서도 1년으로만 한 것만 봐도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종교인 과세안이 내년부터 발동되면 소득구간별로 필요경비율이 차등 적용된다.

소득이 연 4000만원 이하인 종교인은 공제율 80%, 4000만~8000만원 구간은 60%, 8000만~1억5000만원 구간은 40%, 1억5000만원 초과는 20%의 공제율을 적용된다. 소득이 많은 만큼 비용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세금을 더 내는 구조다.

종교소득 세율은 소득세와 마찬가지로 6~38%가 적용되지만 공제율 등을 고려할 때 실효세율은 크게 낮아지게 된다.

여기에 종교단체에서 받는 식비와 교통비 등의 성격의 급여는 비과세 소득으로 분류된다. 현재 근로자의 경우에는 식비는 월 10만원까지만 비과세 소득으로 인정되며 교통비 성격인 자가운전 보조금은 월 20만원까지만 인정된다.

원천징수에 대해서는 종교단체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종교계에서 원천징수 자체를 '세무간섭'이라며 부담감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원천징수 하지 않는 경우 종교인(개인)은 자영업자들처럼 개별적으로 신고·납부하면 된다.

앞서 지난 3일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종교인 과세안과 관련해 "어떻게 해서든지 종교단체를 설득해 법이 (국회)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계의 입장, "세금 낸다니까…법제화 NO"

종교인 과세에 대한 정부와 종교계의 '온도차'는 여전하다. 종교인들의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겠다는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으나, 법적 의무를 짊어지지 않겠다는 일부 종교계의 반발이 수그러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납세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종교인 소득에 세금을 물리는 움직임은 '세금을 내냐, 내지 않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현행 시행령에 근거해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내년부터 과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걷지 않는 세금을 걷는 만큼, 종교계 설득작업을 통해 과세의 당위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태도다.

그러나 종교계 일각에서는 이미 정부가 내놓은 과세방안에서도 '자진납부'가 명시되어 있는 만큼, 제도 신설에 실효성이 없다며 법제화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박종언 목사는 "대한민국은 '정교일치'가 아니기 때문에 (종교인 과세)법제화하지 않은 것"이라며 "모든 목사들이 개인 생활비로 받는 것을 종소세(종합소득세)로 자발적 납부하도록 하고, 정교분리 헌법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이어 "기재부 안이 일단 나왔으니 내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동안 종교인들 소득이 비과세 대상이 아닌데도 관행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자진납세를 외치고 있는 그들이 외치는 메시지가 '위선'으로 비춰질 공산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자진납부를 하겠다고 하는데, 올해 대부분의 개신교계 종교인들이 자진납부를 하지 않았다"면서 "자발적인 납세를 하더라도, 국세청의 사후검증을 통해 압박을 더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종교계의 공감대가 꾸준히 확대돼 왔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소득세를 자진 납부하고 있으며,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역시 '정부 방침에 따라 납세를 위한 준비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겠다'며 과세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의 입장, 내년 총선 어쩌지…국회는 '묵묵부답'

지난해 한 설문 조사 기관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한 의견을 조사해 본 결과, 국민 10명 7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이 국민 절대다수가 종교인 과세에 대해 하루 빨리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인 국회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분위기다.

종교인 과세에 대한 법제화 방침을 놓고 일부 개신교에서 반대하는 입장이 있기 때문에 설득작업에 더 매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중론(신중론)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 입장에서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반대파 개신교인들은 종교인 과세를 찬성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협박을 사례가 있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당은 표면적으로 설득작업에 매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종교단체들이 다 찬성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며 말을 아꼈다. 야당 역시 "세법개정안을 천천히 검토해보겠다" 등의 반응 보이면서 여론의 분위기만 살피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과세에 반대하는 일부 종교계를 의식한 정치권의 모호한 태도를 지적하며, 종교인 과세 유예가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정부는 종교인 과세안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 등을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9월11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