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지난 20년간 자발적으로 법인세를 납부한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 매출 12조원에 가까운 대기업의 사례여서 주목된다.
대한항공은 이 기간 동안 세무조사를 통해 거액의 탈루세액이 드러나면 법인세를 추징당하는 방식으로 납세의무를 때워온 것으로 전한다.
이 같은 사실은 <조세일보>가 대한항공의 지난 15년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나타났다.
□ 국세청 세무조사 통해 추징해야 세금 납부= 1999년 세무조사 이후 2015년까지 15년 동안 대한항공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2000년, 2008년, 2009년, 2011년, 2013년을 제외하고 모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이 발생한 해에도 법인세를 납부하지 않아 현금흐름표 상에는 모두 현금지출 없는 비용으로 차감돼 있다. 즉, 이익이 나서 세금이 발생했지만 실제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1999년 세무조사 당시 '이전 6년 동안 세금을 안 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무려 20년 동안 스스로 법인세를 낸 적이 없는 셈이 된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누적적자가 있기 때문에 세금을 차감 받아 내지 않았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어떻게 수 십 년 사업을 영위한 대기업이 20년 동안 세금을 한 푼도 안 낼 정도로 적자가 계속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게다가 적자 때문에 세금을 낼 게 없다고 하는 회사가 세무조사만 나오면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한 후에야 세금을 납부하고 있어 더욱 대한항공의 설명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심지어 대한항공 내부에서도 "회계를 조작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달에는 대한항공 직원이 외부 사이트를 통해 직접 고강도 세무조사를 요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측은 "기업회계 재무제표와 세무회계는 차이가 있다"며 "대한항공은 2001년, 2007년은 세무조사와 무관하게 법인세를 자진납부했으며 2006년도 세무조사와 시기가 일치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 이익 줄이는 감가상각비 과다계상 논란= 대한항공이 법인세 차감 혜택을 활용해 세금을 내지 않는데 사용한 회계기법은 항공기의 감가상각비를 과다 책정해 이익을 줄이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지난 2월 12일 잠정실적 공시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2014년 매출액은 11조9097억원, 영업이익은 395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이익이 788%나 늘었다.
이는 작년보다 유가가 47%나 떨어진데다, 중국 관광객 등 화물·여객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런 영업환경 호전에도 불구하고 당기순손실이 4578억원 발생해 회사는 적자기업이 됐다. 영업이익과의 차이가 무려 8528억원이나 된다.
대한항공을 적자 회사로 만든 주범은 항공기 등 유형자산의 감가상각비 때문이라는 것이 항공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한항공의 감가상각비는 2011년 1조원을 넘어서더니 2012년 1조4642억원, 2013년 1조6059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가 분석에 의하면 2014년에도 1조6000억원대의 감가상각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즉, 아무리 영업을 잘해도 감가상각비용이 워낙 커 회사는 적자가 나고 법인세는 한 푼도 내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항공기에 대한 감가상각비가 영업의 모든 이익을 초과할 정도로 대규모로 발생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법인세법의 감가상각 기준에 따르면 항공기의 내용년수는 9~15년이다. 하지만 국세청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경우 항공기 감가상각비를 자체적으로 계산해 최장 15년 동안 감가상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상각비는 더 줄어든다.
국세청 관계자는 "신 항공기를 기준으로 감가상각비를 계산해 봐도 전체 감가상각비가 1조6000억원 규모는 아닐 것"이라며 "감가상각이 과하게 계상됐는지 또는 중고 항공기를 고가로 구입한 것은 아닌지 자세히 조사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측은 "회계기준이 K-IFRS로 바뀌며 상각 내용연수가 20년에서 15년으로 줄어 상각비가 크게 증가했다"며 "대한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는 모두 신규 항공기여서 구매가격이 높아 상각액도 크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1999년 세무조사에서 밝혀진 것이 유일하다. 당시 5416억원의 추징액 중 기업회계와 세무회계 차이로 4732억원이 탈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예정된 세무조사에서도 기업회계 기준에 의한 감가상각비가 세무회계와는 얼마나 차이가 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대한항공의 세무조사 역사는?=과거에도 세무당국은 대한항공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고강도 세무조사를 진행해 온 사례가 있다.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으로 225명 승객이 사망하고 이어서 1999년 또 다시 화물기가 추락하자 대한항공의 오너 중심 경영과 방만 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1999년 세무당국은 대한항공에 대해 고강도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세무조사 당시 그룹 총수였던 조중훈 회장이 구속되고 1조 895억원의 조세 포탈에 대해 5416억원이라는 거액의 추징액이 부과됐다. 이 사건에는 '역대 최고 탈루액과 추징액'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이 외에도 1974년 재벌들의 외화 밀반출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세무당국은 대한항공에 대해 30만 달러 해외 밀반출과 거액 탈세 혐의로 고강도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