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유통 규제로 특정 장소(하우스맥주 전문점)에서만 맛 볼 수 있었던 하우스맥주를 내년부터는 편의점과 마트 등 가까운 곳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된다. 묶여 있던 유통 규제의 끈을 정부가 풀기로 했기 때문이다.
1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재정부는 최근 발표한 2013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맥주시장 경쟁촉진을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하우스맥주의 외부유통을 허용하고 하우스맥주 주세 과세표준을 낮추는 한편 제조장 시설기준을 완화키로 했다.
핵심은 '외부유통' 허용이다. 하우스맥주에 대한 세부담을 낮추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일반 맥주에 비해 비싼 하우스맥주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주는 등 사실상 '전방위적 지원'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하우스맥주를 묶고 있던 규제를 푼 근본적인 이유는 소비자들의 '미각적 선택' 범위를 늘려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 등 대형제조 업체의 독과점 구조로 되어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폭이 좁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한 주간지에서 한국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보도하면서 맥주 맛 논란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정치권이 나서 하우스맥주로 대표되는 소규모 맥주제조자에 대한 규제완화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내는 등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 시큰둥한 시장, "'찻잔 속 태풍' 될 것" = 정부의 개정안이 올해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당장 내년부터 소비자들은 다양한 맥주를 좀 더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이론'에만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의 개정안이 가져올 파급효과가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게다가 소규모 맥주제조자들의 상황을 감안할 때 원활한 유통 또한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최근 4년 동안 맥주시장 점유율은 오비맥주와 하이트 맥주가 1, 2위 자리를 놓고 오십보 백보 경쟁을 펼치며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해 왔다. 실제 지난해 맥주시장 점유율은 오비맥주 53.9%, 하이트 맥주 40.7%였고 수입맥주는 5.2%, 하우스맥주 등 기타맥주는 고작 0.1%였다.
대형 맥주제조사들도 하우스맥주의 시장유통 허용이 가져올 파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맥주제조사 관계자는 "현재 소규모 맥주업체는 40개 정도에 불과한데 이 업체들이 용기포장을 해서 외부로 유통하기가 쉽지 않다. 외부로 유통하려면 인력과 시설이 따라야 한다"며 "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규모 제조 업체들을 경쟁자라고 생각했다면 법 개정 추진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장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상생(相生) 차원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소비자 선택권 보장' 상징적 의미만? = 정부의 개정안을 둘러싼 각계의 반응은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대형제조업체들과도 큰 차이가 없다. 소비자 선택권 보장이라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맥주제조사 관계자는 "대형맥주업체들의 점유율이 높은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의 입맛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며 "정부가 막걸리, 전통주 활성화 등을 위해 정책적 지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시장이 살지 않는 이유와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우스맥주의 시장점유율이 낮은 것은 유통규제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소비자들의 입맛이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유통규제를 푼다고 해서 시장에 미칠 영향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벤처대학원 양조학전공 정철 교수는 "시설기준이 높아 소규모 업체들은 투자하기 부담스럽다는 점에서 시설기준은 일단 완화하는 것이 맞다"며 "하지만 소비자들은 다양한 맥주를 원해도 우리나라 맥주시장이 독과점이기 때문에 이를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하우스 맥주의 외부판매가 가능하더라도 소규모 업체의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아 전체 시장이 흔들리진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열어준다는 의미 정도로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