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해설]'돈', 솔직하지만 무모한 도전 택한 정부

'원칙에 입각한 세제정상화'를 명분으로 한 박근혜 정부 첫 세법개정안이 8일 공개됐다.

일단 명분과 실제 세법개정 사항들 사이에 거리감은 그리 크지 않은 모습이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차원에서 형편과 달리 그동안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 않던 이들에게 납세의무를 짊어지게 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한 대목임에 틀림없다.

원칙을 명분으로 근로자들 호주머니 터는 격, 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할 수 있다.

다만 합당한 명분에만 집착, 사실상 '증세(增稅)'를 추구한 정부의 의도를 모른 척 눈감아 주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비과세·감면 축소 등은 간접적인 방식일 뿐, 그 자체를 증세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잘못됐다.

증세는 세율을 인상하거나 세목을 신설하는 의미로만 설명하고 비과세·감면 정비 등은 증세가 아닌 '재원확보' 차원으로 이분화해 설명하는 정부의 태도는 정작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 세법개정안 곳곳에 숨겨진 '증세시도' = 복지공약을 모두 현실화하려면, 증세밖에 답이 없다는 지적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하나다. 세율인상 등 직접 증세는 경제활력을 저해하기 때문에 불가하며, 비과세·감면 정비 및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세수를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3년 세법개정안은 현 정부의 조세정책 기조를 상당히 솔직하게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직접 증세 방안은 담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비과세·감면을 무더기 정비하는 형태로 간접 증세를 추진하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 더해 종교인 과세를 전격 결정했고 정부 스스로 '성역화' 했던 공무원 직급보조비 소득세 과세도 추진하는 등 세법개정안 곳곳에 증세시도 흔적을 남겨놓았다.

사실 종교인 및 공무원 직급보조비 과세 추진은 조세원칙을 감안할 때 당연히 해야 할 부분이고 환영받을 대목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왜 이 카드를 지금에 와서야 꺼내들었냐는 것이다. 지난 십 수년 동안 과세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정부가 태도를 급작스럽게 바꾼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판단'이 가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근로자 세부담 인상(근로소득공제 축소,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축소)에 따른 반발력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릴 목적의 '선전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한가지 생각해 볼 부분은 가뜩이나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로 근로자 가구와 기업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시점에서 세부담을 늘리는 방향의 세법개정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이번 세법개정을 통해 정부는 5년에 걸쳐 2조5000억원 수준의 추가적인 세수확보가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살림살이가 어려울 때 정부에서 곳간을 열어 경제활성화를 이끌어내야 할 판국에 오히려 세부담을 늘리겠다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다. 정책선택의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반적으로 '담세력'이 있는 계층(중산층·대기업)의 세부담을 늘린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담세력이 있는 계층이 '돈'을 쓸 여건을 만들어줘야 경제활성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 정치, 넘기 힘든 '거대한 산'…무모한 도전, 성공할까 = 세법개정안을 만든 정부 일각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이번 세법개정안이 무사히 정부의 정책의지가 보존되면서 입법이 완료되어 시행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물론 대부분의 세법개정 사항들은 이견 없이 정기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지만, 상당한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부분들도 눈에 띈다.

특히 근로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세법개정 사항들이 그렇다.

국민개세주의, 조세형평 등 원칙론의 측면만 부각시켜 보면 정치권도 그다지 반대명분을 찾기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흔들어 놓을 여지가 많은 부분에 선뜻 손을 대기가 정치권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

여론은 원칙보다는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정기국회 논의를 앞두고 한 푼이라도 세금을 더 내라는 정부의 요구를 여론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민의(民意)'를 대변하는 국회도 뾰족한 설득수단이 없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는 박근혜 정부 초반 국정운영에 대한 성과를 '심판' 받는 장(場)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의'를 명분으로 정부의 정책의지를 꺾어버리는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정치적 여건을 놓고 볼 때 정부의 이번 세법개정안은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 정부가 이 난제(難題)를 어떻게 풀어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