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이 예산 부족으로 중단 위기를 맞으면서 정치권은 날벼락을 맞은 듯 시끄럽다.
총선 공약으로 내놓은 0~2세 무상보육 서비스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철회될 위기에 처하면서 민심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으로서는 표심이 흔들릴까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권은 급하다. 민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민심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복지다. 때문에 정치권이 복지 정책에 대한 철저한 준비도 없이 복지만을 외치는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정책 시행 전에 비용과 수요를 제대로 예측만 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예견된 일…"아무도 듣지 않았다" = 무상보육 서비스 중단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매칭으로 진행되는 사업에서 지방정부의 목소리는 외면당했다. 지방정부가 얼마를 부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지방정부는 진작부터 "예산이 6~7월이면 고갈될 것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정치권은 알면서도 정부에게 예산 확보만 주장할 뿐, 문제해결에는 나서지 않았다.
무상급식에 이은 무상보육 바람은 선거판을 흔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에 두고 있는 정치권으로서는 표를 의식해 우선 해주고 볼 일이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집권여당에게 압력을 받은 정부는 지난해 말 무상급식에 이은 무상보육 바람이 불자 올해 3월부터 0~2세의 영유아에게 보육비용을 전액 지원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무상복지 시리즈를 내놓았던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그렇게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승리했다. 무조건적인 복지는 안 된다고 했던 새누리당이었지만 저출산 문제 해결과 양육비 부담 경감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내세웠던 무상보육은 그렇게 표심을 공략했다.
하지만 무상보육을 시행한 지 5개월만에 시행 중단 위기가 오자 새누리당은 6200억원의 예비비를, 민주통합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선 얘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어설픈 비용추계는 "나 몰라라" = 무상보육 중단 위기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예산 부족이다. 말 그대로 돈이 없어서 추진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어설픈 비용추계와 재정전망이 한 몫 했다. 정부는 지자체별로 국고보조금을 차등 지원하고 있다. 0~2세 무상보육 정책만 보더라도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10%의 보조를 해주고 나머지는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다.
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곳은 중앙정부가 최대 90%까지 예산을 지원해주고 있다. 중앙정부의 지원금이 최소 10%에서 많게는 90%까지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문제는 국고보조금을 나눠주는 기준이다. 정부는 모든 국고보조 사업을 사회복지비의 지출이 많은 곳과 재정자립도만 따져 지원한다.
노령연금이나 0~2세 무상보육과 같이 서비스를 받는 대상자가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인구보정이 안 되는 것이다.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지방에는 노인층이 많고 아이들이 적어도 국고보조금이 많이 지급된다. 반면 재정자립도가 높은 도시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층이 많은데도 국고보조금이 적게 지원된다.
그래서 재정자립도가 높다고 알려진 서울 서초구에서 무상보육을 하지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든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 중앙·지방정부, 예결산 공유 필요 = 지자체의 예결산 자료가 중앙정부와 공유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중앙정부가 국고보조금을 내려보내면 집행하는 것은 지자체다. 지자체가 예산을 집행하고 난 후, 돈이 얼마가 남았는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지 결산을 해 중앙정부와 공유해야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무상보육 정책만 놓고 본다면 중앙정부에서 대주는 국고보조금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출된다. 무상보육 사업에 예산을 쓰다가 돈이 남아 초등교육에 돈을 쓰더라도 그건 지자체 마음이다.
반면 예산이 모자라면 중앙정부의 정책이 우선이기 때문에 지자체가 하던 다른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이런 것을 분석해보면 지자체별로 수요 예측이 비교적 정확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제대로 분석하는 시스템이 없을뿐더러 지자체의 예결산 자료는 중앙정부와 잘 공유되지 않는다. 국회는 지자체 예결산 자료까지 요구할 수 없다. 그래서 단순히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만 따져 국고보조를 하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예결산 자료를 공유해 중장기 재정전망을 세워 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투입되는 교육 분야 전반에 대한 중장기 재정전망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