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초기 조세개혁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았던 대표적인 조세전문가 곽태원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사진)가 최근 '부자증세'로 대변되는 정치권의 조세정의 논쟁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조세정의는 부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세금을 부담하는 제도를 마련·시행해야 구현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곽 교수는 최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정치인들은 흔히 상대적으로 소수인 부자들을 공격해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공평과세에 대한 객관적 기준 설정이 어렵기 때문에 소위 '부자 때리기'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미 부자들이 많은 세금을 내도록 세제가 설계돼 있어, 부자증세는 조세정의 개선효과가 크지 않다"며 "정직한 부자들을 공격하기보다, 세금을 내지 않고 탈세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부자증세 등을 추진해 세금으로 소득재분배를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는 한계가 있고, 일자리 마련 등 경제성장 정책과 어우려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치권의 재벌세 도입 논란 등 과도한 재벌개혁과 관련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중요한 동력을 제공, 일자리 확충과 세수 확대에 기여하는 재벌을 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어리석다"고 덧붙였다.
□ 최근 정치권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조세정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단순히 '부자증세'로 귀결되는 모습이다.
☞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능력에 부합하는 세금을 부담하도록 설계된 제도가 공평한 제도다. 이러한 제도를 엄정하게 시행하는 것이 더해져야 조세정의가 구현된다.
그러나 능력에 따른 공평한 부담이 무엇인가에 대해 객관적 기준 설정이 어렵기 때문에 늘 논란이 있어왔다. 정치인들은 흔히 상대적으로 소수인 부자를 공격함으로써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판단, 소위 '부자 때리기'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적으로 이미 부자들이 많은 세금을 내도록 설계돼 있어 부자증세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조세정의 개선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정직한 부자들을 공격하기보다는 오히려 정해진 제도대로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정의를 주장하는 위선적인 구성원들과 부자든 아니든 간에 탈세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등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 버핏세 도입 논란이 일었고, 소득세 최고세율이 인상됐다. 부자증세가 과연 복지재원 확충 방안으로 적당한 정책인가.
☞ 복지확대가 불가피하다면 재원마련을 위한 세부담 확대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부자든 중산층이든 모두의 부담이 같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사회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며, 세금을 통해 소득 재분배를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론이다. 소득재분배는 복지지출과 일자리 마련을 위한 경제성장 정책 등과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서구 복지국가들은 부가세 등 소비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최근 야당에서 부동산 거래세 강화, 고액 금융자산 과세 강화는 물론 10대 기업에 재벌세를 과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중요한 동력을 제공해 일자리와 세수입 확대에 직·간접으로 크게 기여하는 재벌을 마치 '적'처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
□ 증세 이전에 각종 비과세·감면 등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과,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 친기업적 감세정책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 조세정책은 재정지출 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복지 확대가 필요해도 지금 정치권에서 이뤄지는 무분별한 복지 경쟁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고, 결국 국민들에게 실망과 손실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선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통해 절도 있고 효율적인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증세가 실제 세수 증대를 가져온다는 보장도 없고, 감세가 세수를 줄이는 것도 아니다. 법인세 같은 비효율적 세금의 세율을 낮추면 결국 국내외 기업의 국내 투자·활동이 활성화돼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난다.
법인세뿐 아니라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베이스도 커져 세수가 크게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선순환을 도모하는 것이 감세 주장의 핵심이며, 이것이야말로 고령화의 급진전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불가피한 방향이다.
□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 국민들이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제일 먼저 개혁해야 할 부문으로 조세부문(27.8%)을 꼽았다. 우리나라 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 우리나라 조세제도는 오랫동안 다듬어져 왔기 때문에 특별히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개방경제에서는 높은 법인세가 자본유입을 방해해 궁극적으로 국내 근로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되는 현상에 주의해야 한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유엄식, 장은석, 이희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