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일각(쇄신파)에서 시작됐던,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증세논의는 그 동안 소극적 반응을 보였던 한나라당 지도부가 방향을 급선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들불처럼 번진 상황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27일(일요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및 세율인상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한 상태. 아울러 29일(화요일) 쇄신 연찬회를 가진 직후 당·정·청 협의를 갖고 이 문제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의 급작스런 행보에 '빛'을 잃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재정건전성 강화 등의 명분을 내세워 증세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해 왔다.
정치권이 증세 논의에 빠르게 휩쓸리고 있는 것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지배할 '복지' 아젠더를 선점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풀이된다. 복지는 공짜로 할 수가 없다. 막대한 액수의 국가 재정이 소요되는 대(大) 사업이다.
현재의 재정상태로는 복지 확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원 확충 방안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뽑아들 수 있는 카드는 '증세' 밖에 없다는 데에 정치권의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 다른 듯 같은 정치권, '증세 방법론' =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증세방안은 '소득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권이 제시하는 방안은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신설하고, 세율자체도 현재보다 높이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과표구간, 세율 등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득세 증세방안의 '원조' 격이나 마찬가지인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제시한 방안은 기존 과표구간에 1억2000만원의 소득세 최고 과표구간을 신설, 40%의 소득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의원은 이에 더해 과표 1000억원 구간의 법인세 최고구간을 신설, 해당 기업에 30%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나라당이 제시한 방안은 1억5000만원~2억원 사이의 최고과표구간을 신설, 이 구간에 40%의 소득세율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주식양도소득과세도입과 부동산 보유세 강화 등의 종합적인 '증세카드'를 의제로 내놓은 상태다.
민주당은 1억5000만원의 소득세 최고구간 과표를 신설, 40%의 소득세율을 적용하는 방안과 함께 과표 1000억원 초과 기업에 30%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증세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 소득세 증세? "효과 크지 않을 것" = 정치권의 증세 논의가 소득세 측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세율을 올리는 것에 대한 비판도 비판이지만, 증세의 효과가 복지 확충을 위한 재원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현재까지 제기된 정치권의 소득세 증세방안이 현실화 될 경우 많아야 매년 2~3조원의 추가적인 세수가 창출되는데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정도 추가 세수로는 정치권이 내놓은 복지 확충을 감당할 만한 재정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와 관련해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은)장단점이 있으나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 투자와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다 낮은 저축률, 사회보험료 최고구간 요율 상승 등을 감안하면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판단"이라며 "세수확보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 명분은 '복지 재원' 확충…증세 없이는 불가능한가 = 4대 보험 등 현재의 복지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저출산·고령화 추이를 감안할 때 추가적인 재정소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다만 현재로서는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증가분 등으로 어느 정도 충당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내놓는 복지 확충 방안을 쫓아가려면 인위적인 방식의 재정 확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기본적인 증세 정책의 기조인 비과세·감면 정비, 신규세원 발굴 등을 통한 재정 확보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법인세율 상향 조정 및 부가가치세율 인상 또는 새로운 과세제도(주식양도차익과세제도 등)를 도입하는 방식의 적극적인 증세방안을 마련해야만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복지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획취재 : 김진영 정책팀장, 유엄식·장은석·이희정·연지안·조혜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