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산업, 다시 암흑기 오나

대지진과 쓰나미에 따른 일본 후쿠시마(福島)원전사고가 발생한지 한 달이 지났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이후 최악의 방사능 유출 속에 냉각기능 등 복구 작업은 난항을 거듭 중이다.

'피난구역'이 확대되면서 사고등급도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의 '등급5'에서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원전사고 때의 '등급7'로 두 단계 껑충 뛰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가동중단으로 총 전력공급능력의 약 25%를 잃었다. 가동중단 중인 화력발전소의 재가동과 인접지역에서의 전력조달 등 비상조치에도 불구하고 계획정전사태는 장기화될 조짐이다.

피해지역 뿐만 아니라 수도권 등에서 향후 2-3년간 주민들의 생활불편은 물론이고 민간기업의 생산 활동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방사능 공포 때문에 방사능 오염지역 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과 가공제품에 대한 기피현상도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직·간접적인 GDP(국내총생산) 감소효과는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원전 안전수준이 세계최고로 평가받는 일본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세계 원전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치명적이다.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 까지 대형 원전사고가 하나같이 '원전선진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원전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은 원자로 계통만 완벽하다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는 원자로를 식히는 열교환기에 물 공급이 중단되면서 일어났다.

냉각수가 증발되면서 증기압력이 높아져 파이프가 파괴되고 터빈과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됐다. 사고발생 16시간 만에 냉각펌프를 작동시켰지만 원자로 노심의 절반이상이 녹아내린 뒤였다.

이 때문에 원자로 중심부가 부분적으로 노출되고, 핵연료의 외피에 입혀진 지르코늄이 주위의 과열된 증기와 반응하면서 많은 양의 수소기체가 발생했다. 이 중 일부 방사성기체가 대기 중에 노출된 사실은 이틀 뒤에 확인됐다.

1m 두께의 격납용기 덕분에 원전 부근과 주변 반경 16km이내 지역의 방사능노출 수준은 가슴 X선 촬영을 1-3번 하는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어서 원전사고 등급5로 분류되었었다.

그럼에도 후폭풍은 엄청났다. 건설계획을 승인받은 129개 원전 가운데 이미 착공한 53개를 제외한 나머지 계획이 취소됐다. 사고가 난 원전은 영구 폐쇄됐고 같은 구조의 7개 원전이 작동 중지됐다.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은 사고현장을 방문해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않는다"고 선언까지 했다.

사상 최악의 원전참사인 체르노빌사고 역시 비상시 냉각펌프 작동여부 실험과정에서 제어불능사태로 노심이 녹아내리고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두 차례 폭발로 대기 중에 확산된 방사성 물질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때의 400배 규모로 '핵전쟁'으로 표현될 정도였다.

오는 26일이 체르노빌사고 25주년이다. 폭발한 원자로는 콘크리트 '석관'(石棺)으로 봉인돼있다. 핵 대국 미국에 한 술 더 떠 라이벌 소련이 원전 안전신화를 콘크리트 무덤 속에 묻은 격이다.

후쿠시마원전은 진도 9.0의 강진에도 원자로 자체는 안전했다. 쓰나미로 냉각시스템이 침수되고 연료봉 파손과 수소폭발로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유출되면서 '제2의 체르노빌'로 치닫고 있다.

문제가 심각한 1∼3호기의 원자로가 냉각수 온도 섭씨 100도 이하의 '냉온정지'상태를 회복하는데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냉각기능 회복에 시간이 걸릴수록 방사능 물질의 유출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근 도호쿠(東北)전력의 오나가와(女川) 원전에서 오염된 냉각수가 일부 유출되고, 히가시도리(東通) 원전과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시설의 외부전력이 끊기는 등 원전안전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원전선진국 일본의 위기는 도쿄전력의 실패를 넘어 일본 국가에너지정책의 총체적 실패이며  스리마일 섬 및 체르노빌 사고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고개를 든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석유의 99%를 수입에 의존하던 일본은 원전입국을 결심했다.

그러나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원전에 대한 일본인들의 거부감과 '우리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님비'현상이 두드러졌다. 원전 부지확보와 건설, 안전규제에 관한 정부-원전산업체-규제기관 간의 '3각 유착'관계가 형성됐다.

원전부지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확보한 부지에 많은 원자로를 집중 건설했다. 후쿠시마 단지에는 6기, 지진대에 위치한 니이가타에는 7기를 '구겨' 넣었다. 원전 건설업체에 세제유인과 보조금 등을 지원하고, 안전규제업무는 따로 독립시키지 않고 원전건설을 관장하는 부처 산하기관이 맡도록 했다.

안전규제와 감독보다는 원전건설사업자의 이익추구에 협조하는 체제다. 배전시스템도 동부와 서부 지역이 서로 달라 비상시에 전력을 나눠 사용하기도 어렵게 돼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대형 참사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후쿠시마사고가 체르노빌의 악몽을 되살려 내면서 각국의 원전정책은 도처에서 제동이 걸리고 있다.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힌 나라는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정도다.   

프랑스는 75%를, 미국은 2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어 마땅한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중국과 터키, 이란 등 일부 국가들은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원전정책을 강행할 기세여서 주변국들에게 또 다른 우려를 안기고 있다.

석유 등 화석연료를 대체할 현실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원전을 제외하고 세계에너지 수급을 논할 수가 없다. 지구촌 전체로 443기가 가동 중이고 건설 내지 계획 중인 원전이 220개에 이른다.

노후화된 원자로의 가동중지와 함께 건설 또는 계획 중인 원자로의 상당수가 보류 또는 취소되는 등 차질이 예상된다.   

원전반대여론이 날로 드세어지면서 원전산업은 정부가 국민의 반대여론을 무시하거나 짓누를 수 있는 비민주국가나 권위주의국가들에 새 둥지를 틀게 되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원전산업의 장래는 글로벌 차원에서 원전에 대한 새로운 컨센서스(합의)형성 여부에 달려있다.

자연재해는 갈수록 예측을 불허한다. 규제기준의 상향조정과 철저한 점검시스템을 통한 인재(人災)의 최소화 등 이번 사태를 원자력 안전측면에서 새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한국은 국토면적당 원전시설용량이 세계10대 원전대국 중 1위다. 게다가 러시아와 일본 중국 등 원전대국들에 둘러싸여있다.

부대설비나 비상전원에 조그만 문제가 생겨도 대형 참사로 연결되고, 그로 인한 방사성물질 확산에는 국경이 따로 없다.

재해도 세계화하는 마당에 '원전안전은 한국이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