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세계와 한국 - 한 템포 늦추며 돌아가자

 2011년 신묘(辛卯)년은 토끼의 해다.

토끼와 관련된 사자성어(四字成語)로 교토삼굴(狡兎三窟)이 있다. 꾀 많은 토끼는 위기상황에 대비해 도피 굴을 3개나 준비한다는 뜻이다.

국내외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고 증폭될 2011년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토끼의 지혜'가 절실한 한 해가 될 것이다.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 증폭되고,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군사충돌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계경제의 저성장기조가 굳어지면서 수출한국의 활력이 둔화되고, 저성장에 따라 경제적 몫을 둘러싼 한국의 정치 사회적 갈등도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새해 들어 세계질서의 다극(多極)화 및 다자간 협치(協治)체제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여전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지만 군사력의 효용성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정치적 영향력도 함께 떨어지고 있다. 중국이 경성 및 연성파워 양면에서 대국으로 올라서고, 유럽연합(EU)이 미국보다 더 큰 경제적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체제가 신흥 경제파워를 형성하면서 왕년의 '워싱턴 컨센서스' 가 '베이징 컨센서스' '뭄바이 컨센서스'로 대체되는 등 세계경제체제의 '탈(脫)서방화'도 촉진되고 있다.
 
세계화로 종래의 국가 간 편 가르기는 의미가 없어졌다. 경직적 동맹 보다는 이슈별, 이해관계별로 다양한 다자적 제휴(Multi-alignment)가 새로운 생존양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다자적 협치는 그 과정에서 리더십의 공백을 낳기 마련이다. 유엔도, G20 (주요20개국)정상회의도 기후협약이나 환율전쟁 같은 글로벌 현안타결에는 하나같이 무력하다.

파워는 있지만 국제적 책임감이 없는 신흥강국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가 간 이해대립과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다자간 협치는 지역단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단계다. 구질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질서로 가는 과도기적 불안의 한 가운데 우리 모두가 서 있는 것이다.

새해는 글로벌 금융위기 3년차다. 위기 직후 1년여 동안 세계경제는 빠른 회복세를 보여 왔지만 2010년 초반을 정점으로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경제위기로 미루어 두었던 대기수요들이 어느 정도 충족된 데다 주요국 정부들의 경기부양책 효과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재정위기에 따른 선진국 경기의 부진, 개발도상국들의 내수주도 성장 한계 등으로 새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3%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고무적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가계부채 부담이 소비확대를 계속 제약하고 있어 급속한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남유럽재정위기는 지금도 '진행형'이고 주요 개도국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긴축기조를 강화하는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요인들은 새해에도 크게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세계경기가 둔화되면 국내경제의 고성장을 주도해 왔던 수출의 활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등으로 전열(戰列)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글로벌기업들이 새해부터는 선진국, 신흥국 구분 없이 본격적으로 시장개척에 나설 태세여서 수출환경 또한 녹록치가 않다. 
 
2010년 국내경제성장률은 6%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지만 새해에는 성장률이 4%내외로 낮아질 전망이다. 금융위기이전의 성장궤도로의 복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업 체감환경도 원화강세로 영업실적이 많이 내려가 좋지 못하다.

금리 정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금리부담이 커지고, 달러가치가 하락하면서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도 계속 올라 고금리, 고환율, 고유가라는 새로운 '3고(高) 현상'이 새해 우리 경제성장에 수시로 태클을 걸 것으로 우려된다.

수출증가율은 한 자리 숫자에 머물고, 주택경기는 위축세를 지속 하고, 고용사정 또한 크게 나아질 전망이 없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곳이 국내증시다. 국내외 증권전문가들은 모두 새해에 한국 증시가 새로운 역사를 써가며 코스피지수가 2300~2700까지 초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면서도 그 이후는 상당히 위험한 국면이 올 수도 있다고 벌써부터 걱정들이다. 외국인들이 매수세를 주도하고, 이들이 국내외 악재에 특히 민감해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동이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내재되어 있다. 여차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하고 위험자산을 내던지는 리스크가 불시에 현실화 될 수 있다.

글로벌경제 위기수습과정에서 파생된 불안요인들이 지속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있는 데다 대북리스크에 빨간불이 켜져 있는 상태다.
 
북한이 국지전을 도발할 수 있으며, 서해 5개 도서를 직접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도는 등 한반도는 '혼돈의 2011년'으로 접어들었다. 북한리스크에 따라 외국인자금의 대규모 이탈 등 금융시장 혼란과 함께 수요의 급격한 위축에 따른 경기급락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어야 할 판이다.
 
북한의 연평도포격 도발은 한반도가 언제라도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우리 군의 포격훈련에 즉각적인 추가도발은 없었지만 북한은 그들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긴장국면을 조성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응이며, 도발에 대한 대비를 넘어 긴장을 풀 수 있는 해법이다.

북한에 대한 강경일변도의 대응에 동맹국 미국이 '부담'을 느낀다는 워싱턴 발 보도가 전해지고, 우리 통일부의 '흡수통일론'을 중국 언론이 '술주정'으로 비하하는 등 한반도 주변기류 또한 심상치 않다.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 새해에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한핵문제 해결에 큰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압박과 제재에서 대화국면으로 옮겨가기 위한 수순 밟기라는 관측이 고개를 들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이렇다 할 비전이 제시되지 않아 진정한 기조변화로 보기는 이르다.

이달 중순 미중정상회담에서 대화국면조성에 돌파구가 열리면 MB정부는 북한과 대화하라는 미국정부의 압박에 직면할 수도 있다. 북핵 폐기에 대한민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위해서도 남북대화는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MB정부는 집권 4년차인 2011년을 온갖 갈등 속에 맞았다. 4대강사업에 한미FTA 등 주요정책갈등에다 종교 갈등까지 불거지고 있다.

남북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고 세대간 지역간 갈등도 더 악화됐다. '국민통합에 앞장 서겠다'고 누누히 다짐하지만 어디에도 갈등 해소조짐은 보이지 않고, 연말국회 예산안파동에서 보듯 청와대가 오히려 갈등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정부가 급한 마음에 혼자 열 걸음 가려고하는 것 같다"면서 "국민을 섬기는 리더십이 중요하고 열 사람이 한 걸음 가는 자세가 정말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고 한다.                     

'때로는 돌아가고 쉬어가는 것이 오히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우직지계(迂直之計)를 떠올린다. 경제도, 대북관계도, 국내정치도, 사회통합도 한 템포 늦추고 돌아가는 지혜가 절실한 한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