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광장 이건훈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광장]
즉,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는 이유는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여 사업 목적상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사업 형태를 갖추기 위한 데에 있다. 이러한 기업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가 바로 법인세법상 적격합병·분할 제도이다.
적격합병·분할 제도는 1998년말 법인세법 개정으로 도입되었다. 1997년경 IMF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기업구조조정의 촉진 및 지원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미국법을 본받은 과세이연 제도로서 법인세법상 적격합병·분할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미국세법이 기초하고 있는 사고방식은, 합병뿐만 아니라 분할과 같은 기업 조직변경의 경우 "법인격은 결국 허깨비일 뿐이고, 법률적 또는 형식적인 겉껍질의 변화에 불과하여 실질에 변화가 없는 재조직이라면 미실현이득의 과세계기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법인세법 개정은 정상적인 합병·분할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과세문제가 가급적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는 합병·분할 세제의 틀이 정비된 2009년말 법인세법 개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대법원 역시 마찬가지 견지에서, "회사분할에 대한 과세이연 규정은 1998. 12. 28. 법인세법 전부 개정으로 합병·분할 등 기업조직재편 세제를 도입할 때 마련된 것으로서, 회사가 기존 사업의 일부를 별도의 완전 자회사로 분리하는 조직형태의 변화가 있었으나 지분관계를 비롯하여 기업의 실질적인 이해관계에 변동이 없는 때에는 이를 과세의 계기로 삼지 않음으로써 회사분할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이다"라고 판시하여(대법원 2018. 6. 28. 선고 2016두40986 판결,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두42184 판결 등), 일관된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던 중 대법원 2023. 11. 2. 선고 2020두56803 판결(이하 '대상판결')이 선고되었다.
대상판결 사안에서 원고는 적격합병을 한 후 3년 내에 다시 적격분할을 하였는데, 이때 후속 적격분할이 앞선 적격합병의 과세이연 종료사유로서 '사업의 폐지'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위 판결은 "이 사건 분할은 위 조항에 규정된 이 사건 합병에 따른 합병평가차익의 과세이연 종료사유인 '사업의 폐지'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이를 긍정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원심판결 선고 이후로 3년 남짓한 기간의 장고 끝에 나온 판결임에도 위 쟁점에 관해 달리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원심판결의 결론을 간단히 수긍하였다.
원심판결은 이 사건 분할이 '사업의 폐지'에 해당한다는 판단의 논거로 크게 두 가지를 내세웠다.
(1) 첫째로, 구 법인세법 제46조 제2항은 적격분할에 따른 과세이연의 종료사유를 규정하면서, 후문에 "이 경우 분할신설법인 또는 분할합병의 상대방법인이 분할법인 또는 소멸한 분할합병의 상대방법인으로부터 승계받은 사업을 합병법인이 다시 승계하는 경우에는 사업의 폐지로 보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추가로 두었는데, 구 법인세법 제44조 제2항은 적격합병에 따른 과세이연 종료사유를 규정하면서도 그와 같은 내용의 규정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구 법인세법 제46조 제2항 후문의 반대해석상 그와 같은 예외규정을 두지 않은 적격합병의 사후관리 규정 해석에 있어서는 적격분할 역시 사업의 폐지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2) 둘째로, 비록 이 사건 분할이 적격분할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분할법인인 원고 입장에서는 더 이상 고정자산을 소유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구 법인세법상 적격합병으로 인한 과세이연이 종료되는 '사업의 폐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적격합병의 과세이연 종료사유인 '사업의 폐지'는 적격합병 주체인 분할법인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인 반면, 적격분할의 과세이연 사유인 '사업의 계속'은 분할신설법인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으로, 사업 계속 여부의 판단 주체가 서로 다르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상판결 나아가 원심판결 판시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좀처럼 수긍하기 어렵다.
첫 번째 논거에 관하여 보자. 합병·분할 세제에 대한 여러 분석과 과거의 유권해석들, 그리고 법령의 개정 연혁과 관련한 장황한 논의를 이 짧은 글에 담기 어려운 한계가 있긴 하나, 적어도 구 법인세법 제46조 제2항 후문의 신설 경위에 비추어 보면 이는 적격분할 후 합병이 법인세 과세의 계기로 볼 수 없다는 입법자의 의사를 확인한 확인적 규정에 가깝다고 해석된다.
실제 대법원은 구 법인세법 제46조 제2항 후문에 관한 명시적 준용 규정이 없는 경우라도 적격분할 제도의 취지와 관련 법 규정의 체계 등에 비추어 적격분할 후 합병에 불구하고 사업 계속 요건이 충족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두42184 판결).
두 번째 논거에 관하여 보면, 이는 기존 대법원 판례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설시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대법원은 "적격분할 과세특례에 대한 사후관리는 적격분할 요건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기업 전체적으로 회사분할이라는 조직변경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이 계속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폐지 역시 위 규정의 문언과 취지에 따라 개별 사업부문이나 개별사업장이 아닌 승계받은 사업 전체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여, 명시적으로 적격분할의 사후관리 요건과 적격 요건은 서로 상응하는 것이므로 회사가 분할되면서 조직변경이 있었을지라도 사업의 계속과 사업의 폐지는 함께 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나아가 그 판단은 사업 전체를 기준으로 하여야 함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6두51535 판결).
이는 합병이나 분할은 모두 일방 주체가 소멸하거나 신설될 수밖에 없는 기업 조직의 재편이므로 언제나 주체의 변동은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주체를 기준으로 처분 여부를 따지면 항상 사업의 폐지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을 고려한 취지로 보인다.
심지어 대법원은 분할신설법인이 사업 계속성이 인정되는 적격합병·분할도 아닌 신탁법상 신탁을 한 사안이어서 형식적으로는 고정자산의 '처분'으로 볼 여지가 많았음에도 이를 사업의 폐지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기도 하였다(대법원 2018. 6. 28. 선고 2016두40986 판결).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일련의 대법원 판례의 취지와 경향성 모두를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상판결 사안은 구 법인세법령상 합병이나 분할이 곧바로 처분에 해당한다거나 양도에 해당한다는 등의 의제규정이 존재하여 기업의 조직변경을 반드시 처분으로 해석해야 할 법적 당위나 필연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었다. 게다가 문제된 쟁점 규정은 세금을 아예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 차원에서 이를 잠시 뒤로 이연시키는 내용의 규정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쟁점 규정상 사후관리 위반 해당 여부에 관한 여러 갈래의 해석이 열려 있는 경우라면, 그렇다면 법에서 도대체 어떤 취지에서 합병·분할 세제를 두고 있고, 나아가서 적격합병·분할에 대해서는 왜 특별한 취급을 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 순서라고도 할 수 있다.
굳이 조세법률주의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구체적 타당성에 어긋나는 결과 초래를 막기 위해 합목적적 해석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는 조세법상 해석 원리에까지 나아갈 필요도 없다. 질문을 단순화 해보자. 과연 쟁점 규정이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 단행한 기업구조조정이 예상과 달리 기업 현실에 맞지 않는 경우라도 더 이상의 후속 조직 재편을 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인가? 그렇게 보기 어려울 듯하다.
대상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의 태도 및 경향과 어긋날 뿐만 아니라, 법인세법에 합병·분할 세제를 입안한 입법자의 의사에도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례의 합병·분할 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대상판결이 하나의 튀는 판결에 불과한 것일지, 향후 대법원의 입장이 주목된다. 대법원 2023. 11. 2. 선고 2020두56803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