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부동산PF 고질적 문제 해결 위해선 자기자본 확충·보증 의존도 줄여야"

KDI, '갈라파고스적 부동산PF, 근본적 구조개선 필요 연구 보고서'에서 제시

"韓 시행사, 총사업비 97%는 빚…고질적 반복, 근본적 개선 없어"

"시행사 사업 실패, 거시 변동성 확대...공적자금 투입 증 위험의 사회화 확대"

"장기적으로 부동산PF 종합 데이터베이스 구축 중요...체계적 정보 획득 위해"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넨싱(PF)과 관련해 시행사들이 총사업비의 97%를 빚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난 십수 년간 우리나라 경제에 반복적으로 위기를 초래했으나 근본적인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자기자본비율을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상향하고 건설사 등 제3자의 보증은 폐지하는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개선방안이 제시됐다. 아울러 사업장별·회사별 재무 및 사업 정보를 공식 통계로 수집하는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 필요성도 거론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발간한 '갈라파고스적 부동산PF, 근본적 구조개선 필요'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PF 문제는 우리 경제의 중대한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KDI가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내 추진된 총액 100조원 규모의 PF사업장 300여 개의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시행사는 자기자본을 3.2%만 투입하고 96.8%는 빌린 돈으로 메꾼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이 30~40%의 자기자본비율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9년 100조원 미만이었던 PF 익스포저(대출+보증)는 4년 만에 160조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토지담보대출과 새마을금고 대출 등 유사 PF대출을 포함하면 무려 230조원에 이른다.
이런 부동산PF의 기형적인 구조는 지난 십수 년간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1년 30여 개 저축은행이 뱅크런으로 무너지고 10만명 이상의 고객이 손실을 입었던 저축은행 사태도 바로 이 PF 부실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후 2019년, 2022년에도 채무보증 등 대형 위기가 터져 나오면서 채권시장이 경색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해 말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20개 이상의 종합건설사가 파산하기도 했다.

투입 자본은 적고 수익성은 높기 때문에 소위 한탕을 노리는 행태가 나타나고 수많은 영세 시행사가 난립하는 문제로 이어져 저(低)자본·고(高)보증 구조는 사업성 평가 부실과 '묻지마' 투자, 거시 변동성 확대를 통해 결국 시스템리스크를 초래해 위험을 사회화한다는 지적이다.

'낮은 자기자본'과 '높은 보증 의존도'로 대표되는 낙후된 재무구조가 근본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업주체(시행사)가 극히 적은 자기자본을 투입하고 제3자의 보증에 과도하게 의존해 총사업비 대부분을 부채로 조달하면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행사는 일반적으로 총사업비의 3%에 불과한 자본을 투입하고 나머지 97%는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빚을 내서 PF사업을 추진한다. 결국 자기자본비율 선진국들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어 사업 위험성은 늘 존재하게 된다.

이 같은 저자본·고보증 구조는 개발사업의 사업성 평가를 부실화시키기도 한다. 부동산개발사업은 고위험 사업이므로 사업성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PF 추진 구조상 시행사가 자본확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분투자자를 유치하지 않는다. 사업성 평가 상 취약점이 늘 존재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대형 건설사, 부동산신탁사나 증권사 등이 대출 보증을 제공하기 때문에 은행 등 금융기관은 거액을 빌려주면서도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 전문평가기관인 신용평가사는 보통 사업주체의 의뢰를 받고 사업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의뢰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현실적으로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하기 어렵다.
이렇듯 제대로 된 사업성 평가 없이 제3자의 보증에 의존해 대출이 이뤄지면서 거시 변동성이 확대되는 문제도 발생하며, 결국 시스템리스크를 초래하면서 사회화된 위험으로 확대된다.

사업진행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소규모 시행사는 소멸되고, 보증을 제공한 건설사가 대출 상환 의무를 지게 된다. 일부 대형 건설사를 제외하고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건설사가 대출 상환에 실패하면 대출을 제공한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훼손된다.

정부는 이런 고질적 PF 위기가 금융시스템뿐 아니라 건설업 등 실물경제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PF 보증을 확대하고 긴급유동성을 지원하는 등 직·간접적인 공적자금 투여 등 다양한 처방을 시행하고 있지만 결국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다.

KDI는 PF문제 해법으로 먼저 자기자본비율을 높여 시행사 스스로 자본확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한다. 자기자본비율이 낮을수록 금융회사가 PF대출을 공급할 때 더 많은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간접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저자본·고보증 구조가 장기간 지속된 현실을 고려할 때 자기자본비율을 일시에 크게 높이는 것은 어렵고 부작용도 클 것"이라며 "먼저 다소 약한 수준의 자본확충 규제를 도입해 시행사가 스스로 자본을 확충하거나 지분투자자를 유치할 필요성을 마련하고, 동시에 자본확충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부동산PF 종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고 제안했다. 국토교통부는 물론 금융당국이나 신용평가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부동산신탁사 등 어느 곳도 모든 사업장에 대해 체계적인 재무 및 사업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내놓으면서다.

황순주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향후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보증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PF 구조를 개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회사들에게 부동산 정보와 금융 정보를 동시에 요구하는 법이 없는 점이 문제"라며 "국토부와 금융위, 기재부가 부동산과 금융정보를 통합 정보로 요구하고 공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법이 제정돼야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모든 개발 사업을 대상으로 사업장별·회사별 재무 및 사업 정보, 그리고 사업 완료 후 성공 여부와 수익성에 대한 정보를 상시적으로 수집해 정기적으로 공시할 수 있어야만 고직적인 PF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