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호암 이병철 꿈 이룬 '1등 기업'

삼성그룹의 모태는 삼성상회'...1938년 대구부 수동에서 창업

작년 말 기준 63개 계열사...총 자산 400조원의 글로벌 기업 성장

우리나라 대기업 순위 및 계열사 재계 현황 자료(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 삼성은 자산총액 486조원으로 국내 1위다. SK그룹이 327조원으로 2위, 현대차그룹이 271조원다. 2·3위 그룹 간 규모 차이가 큰 독보적 1위 기업이 삼성이다.

삼성은 총 63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가 창립 85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3월 발표한 '주요 삼성계열사 2022년 매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20곳의 작년 매출 규모는 402조원였다.

이는 조사 당시 감사보고서·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매출이 확인 가능한 20곳만 조사한 결과다. 사업내용 등이 공시되지 않은 40개 계열사까지 합치면 매출은 415조∼420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10조원 이상 매출 올린 '10조 클럽' 계열사는 삼성전자(211조8674억원) 외에 삼성생명(34조4850억원), 삼성디스플레이(30조7794억원), 삼성물산(26조4065억원), 삼성화재(25조2109억원), 삼성SDI(17조4582억원), 삼성증권(13조1220억원) 등 7곳이었다.

◆ '재계 1위'...중요시점마다 '통 큰' 의사결정 창업주 호암(호암) 이병철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3월 대구부 수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三星商會)'를 개업했다. 삼성그룹의 모태다.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던 호암은 당시 29세였다.

30대의 호암은 조선양조 인수(1942년), 삼성물산공사 출범(1948년) 하며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호암이 사업적으로 성장하게 된 데는 6.25 전쟁 종전 이후 경제 발전을 위해 진행된 대외 차관이 큰 힘이 되었다.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한 후 사명을 삼성물산으로 변경한 호암은 전쟁 이후 국가를 지불보증인으로 한 차관 유치에 성공, 자본력을 키우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제일제당(1953년)·제일모직(1954년) 설립,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와 한국흥업은행 인수(1958년)를 통한 금융업 진출했고,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및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1963년)로 대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또한 'TBC 동양방송'(1964년)과 '중앙일보' 창간(1965년)을 통해 언론사업 진출 및 신문용지 자체 수급을 위해 새한제지도 인수했다. 동양방송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KBS로 통폐합됐다. 이 같은 창업과 기업 인수를 통해 삼성은 재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 심성 성장기에 찾아온 극심한 시련...사카린 밀수 사건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던 호암에게도 시련의 시간이 있었다. 사카린 밀수 사건(1966년)으로 위기에 빠진 호암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반강제 헌납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한국비료는 그룹 전체 매출액의 30%에 이르는 알짜배기 기업이었기에 호암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이후 경영에 복귀한 호암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결정적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전자산업 진출 선언이다. 수원 공단부지 매입과 함께 이듬해 삼성전자와 삼성-SANYO전기(1970년)를 세웠다. 삼성NEC 설립(1970년)으로 전자사업을 확대하면서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를 통해 국내 최초로 반도체산업에 진출하게 된다.

이외에도 제일합섬(1974년)과 삼성석유화학(1974년) 설립 및 삼성중공업(거제조선소·1977년) 인수 등을 섬유·화학·조선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등 몸집을 키웠다.

삼성을 식품기업에서 전자사업/중화학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켜 우리나라가 글로벌 반도체 강국이 되게 한 데는 호암의 공이 컸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중앙그룹 그리고 BGF그룹까지 호암의 영향 하에 태동한 기업군으로 지금도 범삼성가라는 이름으로 재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이건희 시대 개막..."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 호암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몇 해 동안 그룹 경영엔 장남(이맹희·2016년 작고)과 차남(이창희·1991년 작고) 그리고 3남(이건희·2020년 작고)이 참여했다. 하지만 1976년 막내아들인 이건희가 공식적인 그룹 차기 수장으로 지명되면서 본격적 2세 경영체제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전자통신 인수(1980년)를 통해 한국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해 본격적인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돌입했다. 삼성데이타시스템(1985년), 삼성종합기술원(1987년)을 세워 반도체 연구개발(R&D)에 주력한다.

호암 타개(1987년 11월)와 함께 이건희는 그해 12월 회장이 됐다. 이후 1990년대부터 친족분리를 진행, 신세계백화점과 전주제지(1991년), 제일제당(1993년)을 각각 분리시켰다.

이건희는 1993년 6월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통해 그룹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재계 1위에 걸 맞는 '인재영입', '무결점 경영' 등 경영혁신에 힘을 쏟았다. 반도체 강점을 살려 삼성자동차(르노삼성)를 세워 자동차 산업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구조조정으로 결국 이 회사는 프랑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매각(2000년)되는 아픔도 경험했다.

호암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삼성전자를 세계 굴지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취임당시 삼성그룹의 연매출은 약 10조원에 불과했지만 이건희는 30년간의 경영을 통해 연매출 약 400조원(40배 성장)의 대기업으로 키웠다. 아버지가 씨를 뿌린 반도체 사업의 열매를 맺게 한 것으로 제2의 창업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한 명의 천재가 수천, 수만 명을 먹여 살 릴 수 있다"는 '천재론'을 펼치면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인재 영입에 물적·양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가 해외출장 시 현지 인재들과 만나 영입을 추진한 것은 유명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 이건희 시대에서 이재용 시대로..."잘 할 수 있는 사업만"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 뒤를 이어 외아들 이재용이 차기 수장에 올랐다. 이재용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삼성종합화학 등 4개 석유화학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컬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팔았다.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건국 이래 최대의 사건으로 인해 그룹 계열사를 수직적 지배하는 조직인 미래전략실(미전) 해체(2017년 2월)를 선언했다. 그룹 총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직마저 사라지는 일련의 과정을 두고 세간에선 사실상 삼성그룹 해체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삼성그룹은 미전 해체 이후 계열사 각자 자율적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그룹 공채도 종결(2017년)되고, 계열사별 독자적 채용체제로 전환했다. 다만, 그룹 내 계열사(관계사)간 지분관계는 예전처럼 유지했다.

이재용은 회장에 오른 지 1년 후인 지난해 11월 예년보다 앞당겨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며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존 사업과는 다른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신사업을 찾아 키우는 전담 조직을 마련한 것이다.

호암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뉴 삼성'의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