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국세공무원들, 은퇴 후 세무사로 '제2의 삶' 시작
과거엔 현직에 있을 때 기장 혹은 고문 알선 등 도움 받아.. 이젠 사실상 불가능
위험 줄이기 위해 법인 지사나 동업 선호하기도
퇴직 후 세무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국세공무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세무사 시장이 포화상태가 됐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 현직에 있을 때 관내 업체들을 상대로 알게 모르게 훗날을 도모했던 시절도 저물어가고 있다. 개업 환경이 좋은 지역을 관내로 둔 세무서장 출신이라도 '맨땅에 헤딩', 그야말로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게 국세청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한 세무서 직원은 "과거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며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퇴임하는 서장들을 위해 직원들이 삼삼오오 돈을 걷는 경우도 있었다. 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운영지원팀장이 개업 사무실의 조감도를 대신 만들거나, 법인세 과장이 관할 기업들의 기장 업무를 알선해 주는 것이 당연시됐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런데 요즘에는 익명게시판에 혹시 글이 올라오거나 공론화될까 무서워 관리자들이 나서서 그런 일을 못 하게 사전에 단속하고 있다"며 "나가는 마당에 논란이 되면 개업 후에 더 힘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에 세정협의회가 없어지면서 관내 기업들과 특별히 연결고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퇴직하는 서장 입장에서는 관내 기업들을 많이 알아두고 나가고 싶겠지만, 이유 없이 기업을 만나면 의심을 살 수 있어 최대한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업 후 입에 풀칠만 해도 좋겠다'는 푸념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위험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기존 유명 세무법인의 지사를 차리거나, 동업자를 찾아 함께 개업하려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개업을 앞둔 한 서울 관내 세무서장은 "그냥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버는 게 목표"라며, "최근에는 젊은 세무사들과 연락하고 있다. 같이 개업하면 위험부담이 줄어서 최대한 안정적인 방향으로 알아보는 중이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세무서장은 "주변 선배들이나 지인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하고 있다. 꼭 홀로 개업하는 것이 아닌, 인연이 닿으면 다른 세무법인의 지사를 개업하는 것도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라고 했다.
개업에 대한 두려움은 마찬가지지만, 성향에 따라 '나 홀로 개업'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한 세무서장은 "요즘에는 회계법인이나 로펌도 정년이 65세에서 계속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그냥 혼자 처음부터 개업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나은 것 같다"며 "개업 생각을 하면 초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퇴직 후 바로 출근하기보단 몇 달 정도 휴식을 가진 후 개업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직에서 받았던 평가들과는 별개로 세무사로서 내 모습이 밖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 기대감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라며 "개업 후 수억 원의 적자가 났다는 선배도 있어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퇴직 후 일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처럼 개업이 만만치 않다 보니 퇴직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자신의 생일까지 바꾸는 이들도 종종 있다는 전언이다. 국세청 서기관급 이상 간부들은 출생일에 따라 6월(상반기 출생자)과 12월(하반기 출생자)에 정년보다 2년 앞서 명퇴를 하는데, 예를 들어 생일이 6월이면 한두 달 정도 생일을 늦춰 하반기로 퇴직을 미룬다는 것.
한 국세청 관계자는 "요즘 퇴직하기 싫어서 몰래 생일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작년 연말에도 국장과 과장 한 명씩 두 명이 있었고, 지금도 바꾸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승진이나 전보 등 다른 부분 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만, 개업 환경이 나쁘다 보니 퇴직을 뒤로 미루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