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30여 년 동안 국가 조세정책의 실무 사령탑이었던 역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들이 계묘년 새해를 앞두고 지난 12월 27일 송년 오찬 모임을 가졌다. 법인세율에 대한 여야 간 이견 때문에 내년도 예산안이 정기국회 종료일을 보름이나 넘겨 통과된 직후라서 나름 의미 있는 자리였다.
세제실의 역사를 보면 1948년 재무부 사세국으로 출발하여 1966년 2월 재무부 세제국으로 개편되었으며, 이후 세금의 역할이 커지면서 1990년 9월 세제실로 확대 개편되었다. 내가 1979년 국세청에서 세제국으로 전입할 때만 해도 1국 4과였으나 지금은 1실 5국 15과로 크게 확대되었다. 우리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조세제도와 세금정책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진 것이다.
지난 32년 동안 세제실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부처 명칭은 재무부에서 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로 바뀌었고, 23명의 세제실장을 배출했다. 이날 모임에는 이 중 15명이 참석했다. 평일 오찬이라 몇몇 현직들이 참석 못 한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두가 참석한 것이다.
2. 세제실장 모임이나 세제실 전·현직이 모이는 세제 동우회가 코로나19와 같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매년 몇 차례씩 함께 자리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동질성(homogeneity)이 강한 조직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제실은 지금과는 달리 내부 공직자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업무는 어렵고 일은 많은데 비해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두리 양식장처럼 한번 세제실에 들어오면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중한 업무에 함께 시달리면서 동고동락을 하다 보니 가족과 같은 끈끈한 귀속감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국세청은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관장한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7월 24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이른바 3대 권력기관(검찰청·경찰청·국세청) 중 하나인 국세청을 견제 또는 통제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기재부 세제실이 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려 자칫 세제실이 국세청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기재부 세제실은 세 법령 개정과 세수 예측 등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정책 수립 부서이고 국세청은 이를 집행하는 외청이어서 업무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국세청은 독립적인 인사·조직·예산권을 갖고 있으며 세무조사를 비롯해 주요 업무 등도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3. 세제실장 출신들은 나라 곳간지기로서 휴일도 반납한 채 밤샘 작업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관급 등 중요 직위로 승승장구하는 보답도 받았다. 초대 세제실장 김용진 (前과학기술부 장관), 2대 이근영(前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3대 강만수(前기획재정부 장관), 4대 윤증현(前기획재정부 장관), 5대 남궁훈(前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6대 김진표(現 국회의장) 그리고 7대 세제실장인 필자(前광주광역시장)를 포함하여 대부분이 국가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가졌다.
이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인 세제실장들이 국가 중요 직위에 오르고 또 맡겨진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세법에는 삼라만상이 다 들어가 있고 조세정책은 산업과 금융 등 경제사회 전반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종합예술일 뿐만 아니라 매우 정교함과 치밀함을 요구하는 업무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세정책이 차지하는 역할과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최근에는 후배들이 국가 중요 직위에 과거처럼 발탁되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과거에는 정부 전문가 그룹인 세제실이 조세정책을 주도했으나 지금은 세금 지식이 보편화되고 정치화되면서 주도권이 국회로 옮겨가면서 세제실의 위상도 과거만 못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들이었다.
*8대~23대 관세청장 : 최경수, 김영룡, 이종규, 김용민, 허용석, 이희수, 윤영선(세제동우회 회장), 주영섭, 백운찬, 김낙회, 문창용, 최영록, 김병규, 임재현, 김태주, 윤태식
4. 이런 맥락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세제실 직원들의 전문성과 조직에 대한 귀속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안타까움을 지적했다. 후배들은 ‘라떼(나때) 이야기’를 안 좋아하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세제실에서 공직 대부분을 근무하다 보니 조세 전문가라는 자긍심과 사명감 그리고 조직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나 요즘은 세제실이 선호 부서가 되다 보니 다른 부서와 이동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교류가 활발하다 보니 전문성은 다소 약해진 반면에 정책 시야가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세금정책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전문가 육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60조가 넘는 역대 최악의 세수추계 오차로 올해 초 세제실장이 경질되고 감사원 감사까지 받는 일은 과거에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이고 전문성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5. 이날 모임에서는 이번 예산국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법인세율, 종합부동산세, 반도체산업 감면 등 현안에 대한 애기도 나눴다. 내가 놀란 것은 우리는 공직생활 내내 세금이라는 한솥밥을 먹으면서 지냈는데도 보는 시각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이러니 이해관계가 다른 여야가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우리 정치권의 고질적인 문제는 자기 당의 이익과 지지층의 입장에만 매몰되어 국가 발전과 국민 이익 관점에서 타협하고 합의하는 통합의 정치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한국세무사회의 ‘세무사 드림봉사단 발대식’에 참석해 “저는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세금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중하게 잘 쓰도록 해 세금이 아깝지 않은 유능한 정부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년 8월에 발표한 정부 첫 세제개편안과 예산안을 보면 공정·형평·효율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5월에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절대적인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하니 앞으로 조세정책과 예산편성을 지켜볼 일이다.
6. 우리는 재임 중 때로 세금밖에 모르는 융통성 없고 답답한 세금쟁이라는 혹평까지도 감수하면서 ‘세금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일념으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외롭게 조세원칙을 지켜냈다. 오늘날 한국 재정이 이렇게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노력의 결과란 점에서 우리는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계묘년 새해가 밝아온다. 준비된 누군가에게는 축복의 해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거나 불운의 해가 되기도 할 것이다. 세제실 전‧현직 가족들 모두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면서 큰 성취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내년 2월 세제동우회와 7월 세제실장 모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세제실의 역사를 보면 1948년 재무부 사세국으로 출발하여 1966년 2월 재무부 세제국으로 개편되었으며, 이후 세금의 역할이 커지면서 1990년 9월 세제실로 확대 개편되었다. 내가 1979년 국세청에서 세제국으로 전입할 때만 해도 1국 4과였으나 지금은 1실 5국 15과로 크게 확대되었다. 우리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조세제도와 세금정책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진 것이다.
지난 32년 동안 세제실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부처 명칭은 재무부에서 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로 바뀌었고, 23명의 세제실장을 배출했다. 이날 모임에는 이 중 15명이 참석했다. 평일 오찬이라 몇몇 현직들이 참석 못 한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두가 참석한 것이다.
2. 세제실장 모임이나 세제실 전·현직이 모이는 세제 동우회가 코로나19와 같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매년 몇 차례씩 함께 자리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동질성(homogeneity)이 강한 조직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제실은 지금과는 달리 내부 공직자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업무는 어렵고 일은 많은데 비해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두리 양식장처럼 한번 세제실에 들어오면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중한 업무에 함께 시달리면서 동고동락을 하다 보니 가족과 같은 끈끈한 귀속감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국세청은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관장한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7월 24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이른바 3대 권력기관(검찰청·경찰청·국세청) 중 하나인 국세청을 견제 또는 통제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기재부 세제실이 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려 자칫 세제실이 국세청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기재부 세제실은 세 법령 개정과 세수 예측 등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정책 수립 부서이고 국세청은 이를 집행하는 외청이어서 업무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국세청은 독립적인 인사·조직·예산권을 갖고 있으며 세무조사를 비롯해 주요 업무 등도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3. 세제실장 출신들은 나라 곳간지기로서 휴일도 반납한 채 밤샘 작업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관급 등 중요 직위로 승승장구하는 보답도 받았다. 초대 세제실장 김용진 (前과학기술부 장관), 2대 이근영(前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3대 강만수(前기획재정부 장관), 4대 윤증현(前기획재정부 장관), 5대 남궁훈(前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6대 김진표(現 국회의장) 그리고 7대 세제실장인 필자(前광주광역시장)를 포함하여 대부분이 국가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가졌다.
이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인 세제실장들이 국가 중요 직위에 오르고 또 맡겨진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세법에는 삼라만상이 다 들어가 있고 조세정책은 산업과 금융 등 경제사회 전반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종합예술일 뿐만 아니라 매우 정교함과 치밀함을 요구하는 업무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세정책이 차지하는 역할과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최근에는 후배들이 국가 중요 직위에 과거처럼 발탁되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과거에는 정부 전문가 그룹인 세제실이 조세정책을 주도했으나 지금은 세금 지식이 보편화되고 정치화되면서 주도권이 국회로 옮겨가면서 세제실의 위상도 과거만 못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들이었다.
*8대~23대 관세청장 : 최경수, 김영룡, 이종규, 김용민, 허용석, 이희수, 윤영선(세제동우회 회장), 주영섭, 백운찬, 김낙회, 문창용, 최영록, 김병규, 임재현, 김태주, 윤태식
4. 이런 맥락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세제실 직원들의 전문성과 조직에 대한 귀속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안타까움을 지적했다. 후배들은 ‘라떼(나때) 이야기’를 안 좋아하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세제실에서 공직 대부분을 근무하다 보니 조세 전문가라는 자긍심과 사명감 그리고 조직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나 요즘은 세제실이 선호 부서가 되다 보니 다른 부서와 이동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교류가 활발하다 보니 전문성은 다소 약해진 반면에 정책 시야가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세금정책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전문가 육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60조가 넘는 역대 최악의 세수추계 오차로 올해 초 세제실장이 경질되고 감사원 감사까지 받는 일은 과거에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이고 전문성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5. 이날 모임에서는 이번 예산국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법인세율, 종합부동산세, 반도체산업 감면 등 현안에 대한 애기도 나눴다. 내가 놀란 것은 우리는 공직생활 내내 세금이라는 한솥밥을 먹으면서 지냈는데도 보는 시각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이러니 이해관계가 다른 여야가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우리 정치권의 고질적인 문제는 자기 당의 이익과 지지층의 입장에만 매몰되어 국가 발전과 국민 이익 관점에서 타협하고 합의하는 통합의 정치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한국세무사회의 ‘세무사 드림봉사단 발대식’에 참석해 “저는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세금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중하게 잘 쓰도록 해 세금이 아깝지 않은 유능한 정부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년 8월에 발표한 정부 첫 세제개편안과 예산안을 보면 공정·형평·효율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5월에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절대적인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하니 앞으로 조세정책과 예산편성을 지켜볼 일이다.
6. 우리는 재임 중 때로 세금밖에 모르는 융통성 없고 답답한 세금쟁이라는 혹평까지도 감수하면서 ‘세금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일념으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외롭게 조세원칙을 지켜냈다. 오늘날 한국 재정이 이렇게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노력의 결과란 점에서 우리는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계묘년 새해가 밝아온다. 준비된 누군가에게는 축복의 해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거나 불운의 해가 되기도 할 것이다. 세제실 전‧현직 가족들 모두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면서 큰 성취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내년 2월 세제동우회와 7월 세제실장 모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