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국세청장 발탁.
젊은 시절 세무서에서 공직을 시작했던 나에겐 그 의미가 남달랐다. 금의환향하는 내 모습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명감 하나로 버티면서 밤낮없이 일하고 있던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 또한 오랜 기간 기획재정부에서 수립해온 조세 정책과 제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집행되는지 피드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후 중요한 공직을 계속해서 맡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던 당시 나는 관세청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통상 정무직은 그만두는 것이 관례였고 당시에도 모든 청장들이 바뀔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었다. 특히 나는 노무현대통령은 물론 그 주변 분들과도 어떤 인연이나 연결고리가 없었으므로 1년여의 관세청장직을 조용히 마무리 중에 있었다.
2003년 3월3일. 참여정부 첫 차관 및 청장 인사가 발표된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관세청장으로서의 마지막 행사인 ‘납세자의 날’ 기념식 참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TV자막에 참여정부 첫 국세청장 내정자로 내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누구로부터도 사전에 국세청장 내정 통보가 없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그날 오전 10시 예정대로 차관 및 청장 인사를 공식 발표했다. 청와대는 나를 발탁한 이유로 세금에 대한 전문성과 관세청장 시절 보여준 개혁성을 꼽았다. 과거 기준으로 보면 국세청장자리는 대통령과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측근 중의 측근이 가는 자리인데 어떻게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는 내가 발탁되었는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그 당시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전해들은 얘기로는 3월3일 아침 총리에게 보고된 인사안에는 나는 기획예산처 차관으로 내정되어 있었고 국세청장에는 모 지방국세청장이 내부 승진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청와대가 최종 결정하는 과정에서 운명이 바뀌었다. 그 내막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가 2011년 6월에 발간한 '문재인의 운명' (214～215쪽)을 보면 당시 국세청장 발탁 배경을 대강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이용섭 관세청장을 초대 국세청장에 발탁한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그는 우리와 전혀 인연이 없었고, 나하고도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중략)
마침 호남출신인 이용섭 관세청장의 개인 업무평가와 부처 혁신평가가 대단히 좋았다. 비국세청 출신을 통해 국세청의 고질적 문제를 개혁해보자는 취지도 있었다. 인사회의에서 그렇게 추천했는데 모두 찬성했고, 당선인도 좋아했다. 그는 나중에 우리 쪽과 인연과 연줄이 전혀 없는데도 발탁된 게 신기했고, 그 때문에 참여정부의 인사 철학을 높이 평가하게 됐다는 심정을 토로하곤 했다.
그는 국세청장 재임 시 박원순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세정개혁위원회를 둬 접대비 상한제, 골프와 유흥업소의 접대비 불인정 등 많은 세정개혁을 했다. 대통령도 그의 혁신 능력을 높이 평가해 이후 청와대 혁신관리수석 행자부장관 건교부장관 등으로 계속 기용했다. 지금도 국회의원으로 전문성이 돋보이는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나는 국세청장, 청와대 수석비서관, 장관으로 일하면서 서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 분은 단 한 번도 나의 발탁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참으로 심지가 깊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도 문재인대통령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 때 나는 문재인캠프 비상경제대책단장을 맡았고, 2017년 5월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일자리위원회 초대 부위원장(위원장 :문재인대통령)으로 일했다. 그리고 2018년 2월 7일 나는 부위원장을 사직하고 광주광역시장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시장이 되고 나서도 광주형 일자리 성공, 인공지능 대표도시 광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대통령은 어려운 광주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내가 국세청장으로 임명될 당시 국세청의 여건은 참으로 어려웠다. 세풍사건, 언론사 세무조사 등의 여파로 세무조사의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어 있었고, 세금 부조리도 큰 문제였다. 권력기관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국세청장에 대한 국회인사청문회제도까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나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은 분명했다.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던 국세청을 국민의 봉사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국세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국세행정의 패러다임과 시스템을 바꾸는 강도 높은 혁신을 추진하였다. 취임 3일만에 혁신적인 직원들로 ‘세정혁신추진기획단’을 출범시켰고, 보름만에 각계각층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세정혁신추진위원회’를 발족하여 세정혁신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혁신과제를 확정하였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시작된 개혁의 걸음들이었다.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보수성이 강한 조직에 1988년 이후 15년만에 외부 출신 청장이 취임하고 전면적인 혁신을 추진하자, 과거 연고에 의해 인사나 세금문제를 해결해왔던 안팎 기득권층의 저항이 거셌다. 1만7천여명의 국세공무원을 이끌고 세정 불신의 벽을 넘는 것은 매우 험난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신뢰와 뜻있는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었다, 많은 저항을 감내해야 했던 접대비실명제 실시, 과세자료 양성화를 위해 세계 최초로 도입한 현금영수증제도 시행, 20년 이상 유지되어온 특별세무조사 폐지를 비롯한 투명한 세무조사시스템 확립, 납세자들에게 자긍심을 드리기 위한 세금포인트·모범성실납세자·고액납세기념탑 제도 도입, 청탁과 로비가 통하지 않는 ‘전자희망인사시스템’ 구축 등의 성과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값진 변화는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던 국세청이 국민의 봉사기관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그 결과 내가 청장으로 재임하던 2003과 2004년 우리 국세청은 2년 연속 정부업무종합평가 최우수기관과 혁신선도부처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국세청장 시절의 개혁성을 인정받아 나는 참여정부 초대 혁신관리수석비서관과 행정자치부장관으로 발탁되어 정부혁신을 총괄하는 소중한 기회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내가 과거 근무경험이 전혀 없는 행정자치부와 건설교통부의 장관으로 임명된 것을 보면 노무현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인사기준은 ‘혁신성’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분은 진정한 ‘혁신대통령’이셨다.
*4회부터는 본격적으로 현안 조세 잇슈를 다루고자 한다. 그간 3회에 걸쳐 세금과 관련된 살아온 이야기를 먼저 연재한 것은 내가 세금 칼럼을 쓰는 논거와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연재 내용 중에는 필자가 그동안 쓴 저서나 기고 내용을 상당부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다음회 예고 : ④ 한국의 조세부담 수준 적정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