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속에 감춰진 별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라고 묻는다면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닐까, 거기서 거기 즈음이지, 사람 한 꺼풀만 벗고 나면 비슷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 고달파지고 위로받고 싶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저마다 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능력이 부족해서인가, 나와 맞지 않는 일인가, 운이 없어서인가?’ 하면서 자책 같은 물음을 던진다.

부처님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에 이어서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했다. ‘인간의 존귀함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에게 ‘고통 아닌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하나님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하나님, 제 십자가가 너무 무거우니 가벼운 것으로 좀 바꿔 주세요.”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힘이 들었구나. 저쪽 창고에 가면 십자가가 쌓여있으니 네가 원하는 것으로 바꿔가도록 해라”고 했다. 그는 창고에 가서 가장 작고 가벼워 보이는 십자가를 골랐다. 그런데 막상 자기가 선택한 십자가를 다시 져보니 예전 십자가보다 전혀 가볍지 않았다. 다시 하나님을 찾아갔다. “하나님, 이 십자가가 지난번보다 더 무거운 것 같으니 다시 바꿔가고 싶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십자가 크기는 다를지 모르지만, 그 무게만큼은 똑같단다.”

부처님과 예수님은 삶의 형태는 다를지언정 그 고통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고 일깨운다. 공부하는 학생이든 취업준비생이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직장에서 성공하고 싶은 샐러리맨, 직장과 가정에서의 워라밸을 추구하는 이나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사업가, 더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은 정치가 등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는 것이다.

교회나 성당이나 절을 가 본 적은 있지만, 하나님의, 부처님의 신자는 아니다. 종교가 있느냐고 물으면 없다고 답을 한다. 그런데도 하나님과 부처님을 원망한 적은 있는 것 같다.

힘겨울 땐 뭐라도 해 보면 좀 나을까 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지난해 우연찮은 기회에 모 신문사의 인문학 수강생 모집 요강을 보고 신청을 했다. 방송 매체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강사진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가슴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역사학자를 포함하여, 행복전문가, 환경학자, 예술가(미술, 음악 등), 중문학자, 일본학자, 셰프, 미래과학 전문가, 건축학자, 법률가, 소설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귀중한 시간을 공유했다. 흥미도 돋우면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어쩌면, 14세기 중엽 유럽에서 페스트가 휩쓸고 간 시기에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일곱 명의 부인과 세 명의 청년들이 10일 동안 세상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시름을 달랬던 것처럼, 21세기 코로나의 후유증으로 힘들어할 때 열다섯 분의 석학으로부터 6개월여에 걸쳐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와 감동을 받았던 셈이다.

올핸 조금 색다른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든 일과 마주할 때 누군가가 ‘사는 게(인생이) 뭐지’ 하면 ‘인생이 뭐냐 하면 타고난 팔자지’라는 소리를 한 번쯤 들은 경험이 있을 테다. 흔히들 말하는 운명(명리학) 같은 거다.

30대 초 대학로의 어느 천막에서 긴 머리 선생이 ‘사주에 40대가 되면 공직을 이직할 운이 있다’라고 했던 적중한 예언(?)을 떠올릴 땐 ‘정말 뭐라도 있긴 있는 건가’라는 호기심과 ‘어쩌다 그랬겠지’라는 의구심이 함께했다.

안면이 있는 철학관 원장님한테 ‘확실하지는 않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운명, 그 자체가 좀 궁금하다’라고 했더니 명리학은 점술이 아닌 인간에 관한 관심의 학문이라며 기초 원리 정도는 알아두어도 나쁠 것은 없다며 살며시 권한다.

운명을 이야기할 때 운運은 ‘운용하다, 운전하다’는 뜻의 움직이는 변화의 기운이라면 명命은 ‘주어진 요소’ 즉 정해진 것으로 설명한다. 주어진 명을 바탕으로 어떻게 삶을 펼쳐갈 것인지 고민하고 그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 명리학이라고 한다. 마치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 바다로 쫓아 내려가듯이.

힘이 들고 고통이 따르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힘이 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야말로 비정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마음 한편에는 왜 부처님과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우릴 사랑하는 것일까. 왜 고통과 십자가의 엄중함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일까? 예수님과 부처님이 우리 곁에 늘 함께하는데도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까 하는 의문만은 여전하다.

한편으로는,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먹구름 속에 감춰진 별들이 어디 사라진 것이랴.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