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공전' 길어지면 안돼... 총체적 위기에 '협치'해야

21대 하반기 국회 34일 동안 의장도 상임위 구성 없어... '개점휴업'

신(新) 3고 도래, 국민의 삶 더욱 어려워져... '네 탓' 타령에 비판 커져

국회 '협치' 통해 신냉전체제-글로벌 경제 위기 타개해 나가야

국회 공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21대 전반기 국회 임기가 종료된 지 한 달이 넘도록 국회는 휴업 상태다. 민생을 위해 일해야 할 국회가 휴업하면서 민생법안 심의 및 처리는 고사하고 주요 내각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조차 진행이 안 되고 있다.

삼권분립 하에서 입법부인 국회는 단 하루도 쉬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국회는 한 달 넘게 국회의장도 없고 국정 현안을 다뤄야 할 상임위 구성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소속 상임위도 없이 마냥 놀고 있는 상태다.

신(新) 3고(고물가·고유가·고환율) 시대 도래로 국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기업들은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국회 공전이 계속되면서 민생경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협치는 이미 물 건너간 모양새다.

여론은 새 정부에 냉랭해지기 시작했고, 언론의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여야 모두 '네 탓' 타령만 하고 있다. '입법부 사망'에 비견할 만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서로 네 탓이라고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3일 21대 후반기 국회 원구성 합의를 위해 협상에 나섰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어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여한 '2+2' 2차 심야 담판까지 벌였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급기야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국회의장단 선출을 위한 본회의를 강행할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 없이 첫 본회의 일방 개의는 불법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이 그간 논란이 된 국회 법제사법위원(법사위)장직을 국민의힘 몫으로 내주는 대신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관련 후속 조치를 위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소 취하 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권한쟁의심판 청구 취소와 사개특위는 이달 말로 예상되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지켜본 뒤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조건 수용에 미온적 입장을 보이면서 전날까지 양측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내대표는 2차 회동 후 "국민의힘 요청으로 오후 양당 원내대표 회동을 한 데 이어 저녁에는 수석부대표들까지 같이 만나 협상을 진행했다"며 "국민의힘이 내일 오전까지 전향적으로 양보안을 전격 제시하지 않는 한, 우리 민주당으로서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밝혀 협상 진전이 없을 경우 단독 본회의 개최를 기정사실화했다.

여야는 4일 오전 후반기 국회 원 구성을 위한 협상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만한 협상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협상 진전이 없을 경우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의장단 단독 선출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민의힘은 당내 의원들에 대해 국회 경내 비상 대기령을 내리는 등 강하게 저지할 것으로 예상돼 국회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된 하반기 첫 본회의 전 여야가 어떤 타협점을 찾을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합의엔 실패했지만,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만큼 이날 절충안이 도출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는 게 여야 관계자간의 전언이다. 양측 모두 부담감이 크고, 특히 여당으로서는 취임 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국회 공전을 너무 길게 가져가게 될 경우 여론이 더욱 냉랭해 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날 오전 협상 테이블에서 국민의힘이 제3의 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예상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오전 10시 원 구성 협상 등 주요 현안 논의를 위해 국회 본관에서 긴급의원총회를 연다.

한편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당시에도 국회 공전이 장기화된 바 있다. 당시에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내 ‘상원’ 역할을 하는 법사위원장을 한국당(현 국민의힘)에 넘겨주면 하반기에 각종 법안 처리에 발목이 잡힐 것으로 보고 법사위원장을 고수하며 41일간 공전됐다.

2018년 5월말 20대 국회 전반기를 마감하면서 당시 여당 출신 정세균 의장이 물러가면서 민주당은 차기 의장으로 문희상 의원을 낙점했지만, 의장 선출이 원 구성 협상과 결부되면서 의장 선출이 지연됐다. 결국 41일 동안 국회는 의장 부재는 물론, 상임위 구성과 상임위원 배정이 없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통상 원구성은 의장 선출을 시작으로 상임위원장(상설특별위원회 포함) 선출로 마무리된다.

지난 주 독일과 스페인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신(新)냉전체제가 재출범하게 되면서 전 세계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에너지·곡물 등 파동으로 인한 세계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중에도 우리 경제의 견고한 성장을 견인해온 무역수지가 올 상반기  누계 적자로 돌아서는 등 우리나라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조짐이 큰 상황에서 국정을 뒷받침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의 장기간 공전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조찬 간담회를 열고 국내외 금리 상승기에 거시경제 리스크 요인들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관계부처 합동 대응체계를 구축해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기로 했다.

재정·통화·금융당국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달 16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이후 18일 만이다. 그만큼 현재 복합 경제위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지난 여야 합의를 통한 1차 추경을 통해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손실 및 피해보상에 나섰지만 이는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신 3고 시대에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 마련 등 민생경제는 물론 거시적 관점에서의 대응이 미진할 경우 과거 금융위기 때와 같은 총체적 위기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지금 국회가 '제 밥그릇 지키기' 싸움이 아닌 협치를 통한 경제·안보·민생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할 중차대한 기로에 놓여있다는 점을 절실히 느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