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정부가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했을 때 상속·증여세가 면제되는 '주식출연한도'를 올렸는데, 이 같은 조치가 주식 기부의 물꼬를 텄음에도 여전히 기부 문화를 막는 '규제'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른바 '착한 기부'를 했다가 막대한 세금폭탄을 맞았던 황필상 사태의 재발을 막는 보완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위한 공시제도가 도입되고 사회적 감시망이 견고해진 상황인데도 불구 과도한 규제로 인해, 기업(자산가)들이 불투명한 세제혜택 받기 위해 다른 기부처를 찾아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2일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상속·증여세 비과세가 적용되는 성실공익법인의 주식 보유한도를 20%(현재 10%)로 올렸다.
기부하는 주식이 자산·장학·사회 복지 목적이 있거나 대기업과 특수 관계가 없고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규제를 풀었지만 이 같은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한한데는 공익법인이 일부 대기업의 사실상 지주회사로 활용되면서 공익에 대한 기여도가 낮다는 지적 때문에서다.
사실 공익법인을 통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은 재벌들의 지배력 확대 꼼수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재벌이 소유한 성실공익법인은 총재산 가액 대비 50%까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데, 공익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증여받은 계열사 지분의 10%까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기부문화 '패러다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수의 악용사례를 막고자 비과세 '상한선'을 두고 있어, 오히려 선의의 기업주나 재산가의 재산 출연을 원천적으로 매우 어렵게 만드는 규제라는 비판도 많다.
자수성가로 성공한 재산가가 공익법인을 설립했고 이 법인을 통해 공익 활동을 하고자했을 때 기부할 수 있는 재산은 대부분 자기 회사의 주식일 수밖에 없다. 자신 소유의 수원교차로 주식 90%를 모교에 기부하고자 장학재단을 설립한 황필상씨도 그랬다.
현재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는 5%(성실 10%). 미국은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를 20%로 설정하고 있고, 일본은 이보다 높은 50%다.
영국과 독일은 아예 상한선이 없다.
일각에서는 재벌이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우회지배를 한다는 우려를 잠재우기 보단, 기부자의 사익을 위한 활동을 엄격히 금지하면서 주식출연 한도를 국제적 통념에 맞게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령 대기업은 미국처럼 20%, 중소기업은 일본처럼 50%, 대기업과 특수 관계없는 경우는 독일처럼 100%를 예로 들 수 있다.
정치권에선 이미 공익법인 운영에 있어 감독·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손질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발의한 '공익법인 운영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시민공익위원회' 제도를 도입해 이 위원회가 공익법인의 설립허가 등 공익법인의 총괄 주무부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공익법인 설립 이후 주무부처의 감독·관리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회계나 세무사항에 대한 사후검증만을 국세청이 민간 위임의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영국, 호주, 일본 등에서는 별도의 '공익위원회' 조직을 구성해 주무관청의 역할을 총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기부문화를 꺾는 공제체계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다.
기부금 연말정산 공제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기부자들의 세부담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아 기부문화 자체를 후퇴시켰다는 지적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기부금 공제제도를 세액공제에서 소득공제로 재차 전환하는 소득세법 일부개정안(바른정당 이혜훈 의원안)이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법무법인 율촌 소속 조세전문가인 소순무 변호사는 "과거에는 공익법인에 대한 감독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공시를 하고 사회적 감시망으로 인해 운용이 투명해졌다"며 "규제적인 사고가 너무 불신으로만 남아 있는데, 착한 일 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기부문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