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나성동 국세청사 전경.
보험설계사, 학원강사 등 많은 수의 프리랜서 사업자들이 국세청으로부터 거액의 '세금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한 가운데, 이번 탈세스캔들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세청이 구체적인 수치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이번 탈세스캔들에 연루된 프리랜서 사업자들의 숫자가 2000~3000명에 달하고 이들이 토해내야 할 세금의 액수도 최소 1000억원, 최대 수 천억원 규모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다니고 있다.
특히 사건의 중심인 Y세무사(구속 수감 중)가 엉터리 장부를 기반으로 부당 환급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일선 세무공무원들에게 '검은 돈'을 무차별 살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27일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프리랜서 사업자를 위주로 지난 수 년 동안 수도권 등지에서 활동해 온 Y세무사는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Y세무사는 본인의 세금탈루는 물론, '가공경비'를 계상하는 방식으로 고객들의 세금을 줄여준 사실까지 발각됐다.
이에 국세청은 Y세무사를 지난해 10월 조세포탈혐의로 고발했고, Y세무사는 구속된 채 현재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최근 국세청은 Y세무사에게 장부기장을 맡긴 프리랜서 사업자들에게 허위로 계상된 비용에 대한 소명자료를 요청했다.
프리랜서 사업자 "우리는 피해자... 국세청의 너무한 처사"
국세청의 소명자료 요청 안내문을 받은 사업자들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힌 상황이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Y세무사에게 세금신고를 맡겼는데, 국세청이 자신들을 '탈세범'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단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부랴부랴 새로운 세무대리인을 선정하고 증빙이 될 만한 자료를 모으고 있지만 4~5년 전 자료를 모으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형편이다. 일부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 상황을 공유하고 공청회를 준비하는 등 공동대응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종합소득세와 관련된 부분은 어쩔 수 없더라도 최소한 부정신고가산세 부분은 조세불복을 통해 줄여보자는 현실적인 대안도 나온다. 국세청 신문고에 글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으며 일각에선 Y세무사에 대한 고소 또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무대리 업계 "고질적인 병폐, 터질 게 터졌다"
세무대리 업계에선 '언젠간 터질 일이 터진 것'이라는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세무대리 업계에 따르면 가공경비를 통해 프리랜서 사업자의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이미 오래 전 부터 알게 모르게 자행되어 왔고, 종종 벌어지는 연예인 탈세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한 세무사는 "이번에 한 명의 세무사로 인해 크게 사건이 드러나서 그렇지 그동안 가공경비로 사업자들의 세금을 줄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Y세무사 같이 저렴한 비용에 남들보다 세금을 더 깎아 줄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세무사의 잘못도 있지만 사업자들이 세무사를 선정할 때 '세금을 얼마나 깎아줄 수 있냐'는 식의 질문부터 해오는 것도 분명 문제가 있다. 나 같은 경우 다짜고짜 세금부터 깎으려는 사업자가 오면 나중에 탈이 날수 있기 때문에 조용히 돌려 보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무사는 "한꺼번에 많은 세금을 내야하는 것은 부담이겠지만 그동안 가공경비를 통해 부당하게 세금을 환급받았다면 가산세 등을 모두 내야하는 것이 맞다"며 "Y세무사가 그동안의 자료를 모두 갖고 있어 소명할 수 없다고 주장해봤자, 원칙은 납세자가 갖고 있던 자료를 통해 세무대리인이 세금을 신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관의무도 납세자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전후 사정을 떠나 의심이 가는 부분에 대해선 반드시 소명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Y세무사가 설령 '자신만 믿으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더라고 최종 입증 책임은 납세자에게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프리랜서 사업자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세관청 입장에선 소명을 받아야 할 의무도 있다"며 "최대한 소명한 뒤 억울한 부분은 조세불복 등을 통해 구제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눈 감아준 세무공무원도 문제? 국세청에 '불똥'튀나
한편 일각에선 Y세무사가 세금을 줄이는 과정에 세무공무원들의 조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자신을 Y세무사에게 당한 피해자라고 소개한 한 사업자는 "과거 관할 세무서 조사관이 나와 세금을 한번 내게 된 적이 있다"며 "당시 Y세무사가 활동비 명목으로 수 백만원을 요구했고 결국 세금의 절반 가량을 감면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Y세무사가 고객들에게 받아간 활동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안 봐도 뻔한 스토리'라는 것이 세무대리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특히 검찰 조사를 받는 도중 Y세무사의 입을 통해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세청이 입는 '데미지'도 상당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프리랜서 사업자들의 고질적인 가공경비 처리 문제, 고객 유치만 하면 덤핑도 불법도 상관없다는 일부 세무대리인들의 과욕, 그리고 이를 은근슬쩍 눈감아 주는 일부 세무공무원 문제까지, 이번 탈세스캔들의 파장이 시간이 갈 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