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세관 곽형준 관세행정관이 작성했습니다.)
부모님 집에는 30년전 어머니께서 인삼에 소주를 넣어 담근 인삼주가 한 통 있다.
긴 세월 동안 장식품처럼 같은 자리에 놓여 잊고 있었던 그 술이 2012년 어느 밤잠에서 깨어 문득 생각이 났다. '그 술을 만약 팔면 얼마에 팔아야 하지? 그걸로 설명해 보는 건 어떨까' 갑자기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 건 2008년부터 시작된다.
내가 위스키를 수입하던 회사를 조사한 것은 세관에 입사한지 2년차가 되던 해였다. 그 회사는 해외에 있는 본사가 다른 주류회사에 인수된 후 원가 절감 등을 이유로 같은 물품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였고 이로 인해 '새로운 거래가격을 관세의 과세가격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뜨거운 논쟁이 계속 되었다.
그 논쟁의 핵심에는 '수 십년간 숙성한 위스키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쉽지 않은 문제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를 나가보니 상황은 답답했다. 분명 가격은 대폭 인하되었는데 그 인하된 가격은 본사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로펌과 회계법인을 통해 관련 법률을 검토해 가격한 가격으로 그 가격결정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회계자료와 이자율 계산의 산식이 넘쳐나고 있었다.
또한 심사과정에서도 대형 로펌이 대리인으로 나서 자료에 대해 철저히 검토한 후 제출되었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자료는 본사와 협의 후 제출하겠다고 시간을 끌었다.
회사의 수입가격은 분명 다른 경쟁물품보다 현저히 낮게 들어오고 있었는데 회사는 대량생산과 상표권을 주장하고 맞서며 협정상 포괄적 규정의 틈새로 방어하고 나섰다.
그 뿐이 아니었다. 회사의 본사가 상공회의소를 포함한 다양한 기관을 통해 과세가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우린 그 때마다 과세의 정당성을 각 기관에 설명해야 했다.
사건은 결국 본격적인 법정 공방의 본 게임으로 이어졌다.
가끔 법정드라마를 보면 원고와 피고가 서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 들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곤 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 공방전에 나서야 했다.
상대는 국내 최대로펌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며 변호사만 6명이 나왔고 우리도 이에 뒤질세라 전청차원에 TF팀을 조직하고 5명의 전담팀을 구성했다.
검찰청과 정부법무공단, 청 법무팀과 법인심사팀, 원산지담당관실, 교역협역과까지 70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 해외 사례조사, 유관기관 협의 및 대응, 대응논리 개발에 나섰다.
드디어 법정 PT가 시작되었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상대 변호사가 나와 한 시간이 넘게 백 여장도 넘는 PT를 시작했고 우리는 중간중간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넘게 원가와 가격에 대한 공방을 이어가자 배석판사가 졸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차례는 다음 변론으로 넘어갔다. 우린 판사가 졸지 않게 준비해야지 다짐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어떻게 우리 주장을 펼칠까 고민하던 중에 집에 있던 30년된 인삼주가 떠올랐다.
위스키 관련 서적과 해외 사례를 보니 온통 영어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진작 영어공부 좀 해놓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PT가 준비되자 팀장님과 나는 발표연습을 시작했다. 시선은 어디로 둘지, 제스처는 어떻게, 한 박자 쉬었다 강조할지 고민하고 서로 협의했다. 시계는 어느새 새벽 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드디어 우리 변론이 시작되었다. 긴 호흡을 하고 팀장님은 앞으로 나서며 PT를 시작했고 나는 지난번 졸던 판사를 다시 쳐다보았다. 졸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미소가 나왔다.
미소도 잠시 상대의 공격이 시작되고 이에 대한 반박을 재기하며 두 시간의 변론이 끝났다. 그렇게 공방을 주고 받으며 2년이 지났고 열 번이 넘는 논쟁을 이어갔다. 치열한 법정공방 후 회사는 인하했던 가격을 대폭 인상했고 거액의 세금을 납부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정상을 가장한 부당한 저가신고에 대해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고 가격인상을 통해 연간 수십 억원의 추가세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초기 자료 확보와 대응에 실패하여 8년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고 심사인력이 낭비되는 문제점 또한 확인하였다.
지금도 대규모 심사업체들은 로펌을 통해 제도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거래를 조정하고 추징시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파상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또한 이번 사건을 포함하여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조직과 제도를 정비하며 전문가를 활용하고 있다.
쉽진 않지만 모두 공평하고 정당한 신고납부의 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며 그렇게 조금씩 발전해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