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세관 서경호 관세행정관이 작성했습니다.)
"이상한 회사"
2015년 1월 6일, 첨단 외환범죄 단속 강화를 목적으로 서울세관에 외환조사3관실이 추가로 신설되었고, 그렇게 우리팀 4명은 서로 다른 과에서 한팀으로 모이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용병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신생팀인 만큼 을미년(乙未年) 한해 우리팀이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할지, 어떤 사건을 해야할지 함께 고민하며 생각해나가고 있을 쯤, 구정이 지나면서 어느덧 3월이 들어서고 있었다.
3월의 마지막 날 오후 갑자기 팀장님이 회의를 소집하셨다. 무역보험공사로부터 무역금융을 받은 업체를 대상으로 분석하고 있었는데, 금형을 제조해 일본과 미국으로 수출하는 A업체가 이상한 무역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팀장님은 A사가 수입실적이 전혀 없는데도 일본에 설치된 해외지점에 2010년 이후 1억불을 수입대금으로 송금했고 수출하는 물건이 단순 플라스틱 제품인데도 수출가격이 너무 고가로 신고되어 이상하다고 하시면서 한번 검토해보라고 지시하셨다.
팀장님 말씀을 듣고 내 머릿속에는 "나도 작년에 관세청 외환조사의 히트작과 다름 없는 모뉴엘과 같이 아직 부도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무역금융을 편취하고 있는 회사에 대해 조사해 볼수 있겠구나. 재미있겠다"하면서도, 잘해 낼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되었다.
"업체를 해부하자"
먼저 A사의 수출거래를 살펴보았다. A사는 주로 몰드(금형)와 TV캐비넷(텔레비전용 플라스틱 외관 케이스)을 수출하고 있었는데, 몰드는 1년에 5회 정도 수출했고 대부분 42인치 LED 텔레비전용 TV캐비넷을 수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출되는 TV캐비넷 1개당 중량이 2kg에 불과함에도 물품가격이 2억원이 넘는 것으로 수출신고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금괴 1kg의 가격이 5천만원대임을 감안하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TV 외관 케이스가 다이아몬드로 장식하거나, 금테를 두르지 않는 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니 '이 사건 정말 재미있겠다'는 느낌과 궁금증이 나를 사실관계 파악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왜 A사가 수출가격을 고가로 신고했을까, 수출가격을 고가로 신고하면서 얻은 이익은 무엇일까' 난 A사가 수출채권을 전량 금융기관에 매각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무역보험공사의 자료를 이용해 A사가 2006년부터 무역보험공사로부터 신용보증을 제공받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640억원 상당의 신용보증을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모뉴엘처럼 수출가격을 고가로 조작해 무역금융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A사는 직원이 6명임에도 2004년도에 매출액이 20억원(순익 5000만원)에 불과했으나, 2006년부터 갑자기 사업규모가 크게 늘면서 2013년에는 매출액 432억원(순익 1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했다. 허위수출로 무역금융을 편취하고 상환기일이 도래시 이를 메꾸기 위해 다시 허위수출을 일으켜야 했기 때문에 매출규모가 10년간 20배로 증가한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A사가 수입실적이 없음에도 일본지점에 수입대금으로 1억불을 송금한 것은 만기가 도래한 무역금융의 상환을 위하여 수입대금 명목으로 일본으로 자금을 보내고 해외에서 수출대금이 정상적으로 들어와 상환되는 것처럼 '뺑뺑이'를 돌린 것이라는 사실까지 추론할 수 있었다
"이젠 증거싸움이다"
이젠 강제수사를 시작된다. 문제는 A사의 대표가 국외출장이 너무 빈번하다는 것이다.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할 때 출국하게 되면 미국에 본처와 아들이 거주하고 있어 국내로 입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먼저 압수수색영장과 출국금지 신청을 동시에 진행했다.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었고, 난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며칠후 있을 압수수색영장집행을 위해 조를 편성하고 서류를 정리하던 중 조용하던 사무실의 적막을 깨듯 전화벨이 울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굴까'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A사의 대표가 아닌가.
그는 지금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하려던 중 출국금지를 당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세관에 잘못한 것도 없고 지금 홍콩에 가서 거액의 사업자금을 받아와야 하는데 자신이 홍콩으로 가지 않으면 큰 손해가 발생하게 되니 출국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전화였다. "일단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는 세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 보면 밝혀질 사항이며 출국금지를 해제하는 것은 그 다음 사항"이라고 말하고 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허위수출신고를 통한 무역금융편취라는 사기사건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중요한데, 지금 이순간 피의자가 세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그렇다면 밤중에라도 중요한 증거자료를 은닉하거나 폐기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분석하고 준비한 고생이 없어지는 것인가. 혼란스러움과 조급함이 내 몸 전체를 감싸는 것 같았다.
급하게 다음날 오전 압수수색을 집행하기로 결정하고 다른 부서의 업무지원을 받아 3개팀으로 나눠 10시 정각 A사 안양본사 사무실, 무역센터 사무실, 대표의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시작했다.
안양본사 사무실 출입문의 벨을 누르니 30대 초반의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사무실에는 30대초반의 여자 2명과 남자1명이 근무하고 있었고 문을 열어준 여성은 통관과 회계를 담당하는 경리과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수출신고하는 물품의 가격이 고가인데 왜 그런 것인가요"하고 묻자 경리과장은 "그것은 해외바이어들이 몰드를 주문하고 주문한 몰드로 시제품인 플라스틱케이스를 만들어 해외로 발송하면 주문한 금형대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것입니다. 시제품에 금형이 체화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이것은 무슨 괘변인가' 다시 "그럼 해외바이어들은 금형을 인도받지도 않았는데 금형 대금을 지급한다는 것인가요?" 계속되는 질문에 경리과장은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는 사장님이 그런 가격으로 신고하라고 해서 했을 뿐입니다" 이젠 모르쇠다.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한쪽 구석에서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플라스틱 TV캐비넷을 포장한 박스를 발견했다. 이것이구나. 그간 세관에 허위로 수출신고한 물품 및 해외로 발송된 상태를 나타내는 포장상태 현품을 확보했으니 이젠 사건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해외예금계좌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허위로 부풀려서 수출신고하고 은행에 매각한 서류는 모두 확보했지만 일본내 예금계좌 거래내역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모든 서류를 압수해 사무실로 향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 순간 사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던 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택에는 온통 루이비통 등 갖가지 명품 가방과 시계 등으로 가득하단다. 그리고 자택의 월세는 월 1800만원이라는 말과 일부 해외계좌와 관련된 서류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화너머에서 들려왔다.
(②-下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