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H사, 누구 말이 맞나 = 국세청은 올해 초 ODD(광디스크드라이브, Optical Disk Drive) 등 광저장장치 시장점유율 세계 1위로 잘 알려진 H사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H사가 미국에서 담합 행위로 인해 지출한 120억원 가량의 민사합의금 및 소송비용이 손금으로 처리, 법인세 신고된 부분을 부인하고 H사에 50억원 가량의 세금을 부과했다. 현재 H사는 국세청 과세에 불복,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대리인으로 선임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한 상태다. (사진제공 위키메디아)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규모(추징세액)를 제대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가뜩이나 경기침체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을 살리기는 커녕, 국세청이 법적 다툼의 소지가 다분한 부분을 끄집어내는, 지나친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발단, H사 과세사건 = 올해 초 국세청은 ODD(광디스크드라이브, Optical Disk Drive) 등 광저장장치 시장점유율 세계 1위로 잘 알려진 H사에 대한 세무조사(정기)를 진행했다.
조사과정에서 국세청은 지난 2013년 H사가 ODD제품 판매 담합행위로 미국 독점금지법을 위반, 미국내 직접구매자집단이 제기한 손해배상 집단소송과 관련해 이들에 지불한 120억여원의 합의금(이하 민사합의금)이 법인세 손금으로 처리된 부분을 발견했다.
현재 시행 중인 국내 세법에 따르면 기업들이 담합행위로 국내 또는 국외 정부로부터 과징금 등 징벌적 성격의 금전을 부과받은 경우, 해당 금액은 법인세 손금산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H사도 담합행위 적발로 미국 정부에 납부한 벌금(120억원 가량)에 대해서는 국내 세법에 따라 법인세 손금불산입 처리해 세금을 신고했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아닌 직접구매자집단에게 지급한 민사합의금과 소송비용(변호사 비용) 등을 손금으로 처리한 회사의 결정에 국세청이 '딴지'를 걸면서 불거졌다.
국세청은 H사가 지출한 민사합의금과 소송비용(변호사비용 등)은 담합이라는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이기 때문에 법인이 사업을 영위하면서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할 비용으로 보기 힘들다며 해당 금액의 법인세 손금산입을 부인, 50억여원의 세금을 부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사회적 불법행위로 지출한 금액에 대해서는 '통상적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법인세 손금불산입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인세법 규정을 준용한 것이다.
□ 전개, 끝내 '과세권' 휘두른 국세청 = 이 같은 내용의 H사 과세건은 최근 국세청이 방침을 확정, 과세통지서를 발부하기 직전까지 밀고 당기는 다툼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명확한 법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세통지서 발부를 앞두고 진행된 과세전적부심 단계에서 H사와 H사의 세무대리인, 국세청 3자 사이에 과세적정성을 두고 논리대결을 벌였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쟁점이 된 민사합의금이 발생한 원인이 담합이라는 '불법행위'에서 출발했다는 측면에서 법인세 손금의 일반 원칙인 '통상성'에 위배됐다는 입장이었다.
H사측은 현행 법인세법상 민사합의금 및 소송비용이 손금불산입 항목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 과세의 부당성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세청은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세금을 최종적으로 부과처분했다. 국세청은 당시 과세전적부심에 참여한 외부 전문가들도 국세청의 입장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과세에 한 점 잘못도 없다고 밝혔다.
현재 H사측은 국세청 과세와 관련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대리인으로 선임, 조세심판원에 조세불복청구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 위기, H사 사례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 H사 과세사건이 단순히 H사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모두 과세선상에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그동안 손을 대지 않았던 신천지(?)를 H사 과세를 통해 손 대면서 어마어마한 액수의 세금을 둘러싼 기업과 국세청간 '대격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H사의 경우 민사합의금의 지급시점(2013년 전후)을 매개로 과세를 했다는 측면에서 현재 부과제척기간(5년)이 살아있는 기간(2010년 이후)내에 유사한 케이스로 법인세 손금산입 처리해 법인세를 신고한 기업들은 모두 과세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세청은 해외 국가에서 담합행위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들에게 자료 제출을 요청(독점금지법 위반 관련 자료제출 안내)하는 등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 중인 상황이다.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이후 3년 동안 LG전자,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 삼성SDI 등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미국과 EU 등 국가에서 담합행위가 적발, 부과받은 과징금의 액수는 1조원을 훌쩍 넘었다(1조375억원).
특히 집단소송 합의금의 규모는 정확한 추산이 어렵지만 해당국 정부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0년~2015년 10월 현재 합의금을 지급한 후 종결된 사안도 상당할 뿐더러, 현재 진행 중인 담합관련 소송 건수도 많아 H사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는 이들 기업들 입장에서 거액의 세금 부담으로 연결된 공산이 농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