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놓인 걸까?" = 모든 정책은 방향과 시기가 적절해야 한다. 정책 의도가 좋더라도 전반적인 상황에 역행하거나 때가 아니라면 국민들로부터 좋은 정책이란 소리를 듣기 힘든 법이다. 세법개정에 따른 연말정산 '파동'. 과연 정부는 적절한 시기에 '신의 한수'를 놓은 것일까.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적어도 이번 만큼은'13월의 월급'에서 '13월의 세금폭탄'으로 전락해 버린 연말정산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케이스다.
2014년 귀속 연말정산은 지난 2013년 개정된 소득세법이 적용된 첫 해 였다.
2013년 소득세제 개편의 핵심은 특별공제(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보험료, 연금저축·퇴직연금 등) 항목을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한 것.
당시 정부는 조세정상화와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를 명분으로 삼았다. 즉 세액공제 전환으로 고소득 근로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증대된 세수를 활용해 저소득 근로자에게 자녀장려세제 및 근로장려세제 형태로 환원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명분과 정책목표는 연말정산 대란으로 이어지면서 철저히 붕괴됐다.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 중에서도 세부담이 늘어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조세정상화 명분이 깨지고, 세액공제 전환에 따른 9000억원 가량의 세수증대 효과는 지난해 연말 담뱃값 인상 후폭풍과 맞물리면서 '꼼수증세' 논란으로 확산됐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인 증세없는 복지 프레임까지 흔들리면서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40%)'마저 무너뜨렸다.
현재로서는 연말정산 대란은 수치로 증명할 수 있는 실체적 진실에서 비롯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부의 설명과 달리 개별케이스 별로 어느정도의 세부담 증감이 있었는 지 여부를 일일이 가려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말정산 대란의 원인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不信), 즉 국민들의 정서가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형성된 여론이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생략한 채 현학적 명분만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려 했던 정부의 무사안일한 태도가 국민들의 감정선을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에 발발한 사태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스윙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소득세 징수체계는 소득이 높아질 수록 세율이 올라가는 '누진세' 체계다.
따라서 '소득공제' 형태로 납부세액을 계산할 경우 근로자가 적용받는 세율이 높아지는 만큼 소득공제로 인한 세금 절감 효과도 커진다. 반면 세액공제는 개인에 적용되는 세율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출하는 금액에 상관없이 세액공제 금액은 동일하다.
이 때문에 대다수 조세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이 형평과세 차원에서 올바른 방향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전환시기 자체가 늦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즉 2013년 세법개정 당시 정부가 간판으로 내세운 '조세정상화' 명분은 적합성 측면에서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명분에 부합할 만큼 세액공제 전환 시기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했다. 연말정산 대란을 초래했다는 측면만을 고려할 때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은 방향성은 옳았지만 '수'를 놓는 시기가 잘못됐다. 정부 스스로도 이를 증명했다.
현오석 경제팀이 물러난 후 구성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수장으로 한 경제팀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세수확보가 어렵고 적자재정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 지난해보다 지출액을 20조원 이상 늘린 새해 예산을 편성하는 한편 이른바 '가계소득증대 3대 패키지' 등 덩어리가 큰 내수진작책을 쏟아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를 포함 심지어 기준금리까지 1%대로 끌어내렸다.
결과적으로 2013년 현오석 경제팀의 유산인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은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정책 기조와는 역행하는 정책이었다는 것이 증명됐다. 가계경제의 위축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뚜렷한 사실상의 증세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애초 2012년 '조삼모사 정책'이라는 비아냥을 실컷 들어가며 간이세액표를 조정, 덜내고 덜받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취지는 근로자들의 세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여 이를 소비로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명분이 좋았다 해도, 원했던 '결실'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면 이는 실패한 정책이다.
오히려 정치권 일각에서 의료비와 교육비 및 자녀 관련 공제체계를 다시 소득공제로 환원하자는 움직임마저 전개되고 있다. 잘못된 타이밍의 선택은 세액공제 전환이 가지고 있던 그 좋은 명분을 일거에 희석시켜버리는 참담한 결과물을 떠 안고 말았다.
꼼.수.증.세
소득재분배 강화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 또한 연말정산 대란 앞에 맥없이 무너져 버렸다. 담뱃값 인상 후폭풍과 뒤섞이면서 중산서민 근로자들의 지갑만 노린다는 '꼼수증세' 논란으로 불이 옮겨붙었기 때문이다.
정책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정부는 일방적이었다.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여론탐색'을 위한 공청회 등은 생략됐다.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정부는 여론무마를 위한 숫자 맞추기식 보완으로 일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근로자 세부담 증가를 이끌어낸 부분은 따로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근로소득공제'의 축소가 결정적 이유라는 분석이다.
근로소득공제는 급여소득을 얻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으로 간주해 전체 소득에서 일정부분을 공제해주는 금액으로, 소득금액에 따라 공제비율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종전 근로소득 중 500만원까지는 80%의 근로소득공제율을 적용해 왔으나 이번부터 70%로, 500만원 초과 1500만원까지는 50%에서 40%로 공제율이 축소됐다.
15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의 공제율은 15%가 동일하게 적용되고, 3000만원에서 4500만원까지의 공제율은 10%에서 15%로 조금 확대되었으며, 4500만원에서 1억원의 경우 기존과 동일한 5% 공제율을, 1억 초과에 대해서는 5% 공제율이 2%로 축소됐다.
이로 인해 연봉 1500만원~3000만원인 저임금 근로자의 경우 근로소득공제가 900만원에서 750만원으로, 연봉 3000~4500만원 소득자의 경우 급여수준에 따라 75~150만원, 4500만원~1억원 소득자도 75만원의 근로소득공제가 줄어들었다.
근로소득공제가 150만원 줄어들 경우 최저세율인 6%의 세율을 적용하더라도 추가로 4만500원~6만3000원 정도의 세금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150만원에 6% 세율을 적용한 9만원의 산출세액에서 30%~55%의 근로소득세액공제를 차감한 금액).
75만원의 근로소득공제가 줄어드는 소득자가 1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면 근로소득세액공제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최소 5만600~11만2500원의 세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특히 의료비나 교육비 등 특별공제를 적용받는 근로소득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반면 근로소득공제는 모든 근로소득자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훨씬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3년 귀속 연말정산 결과 소득세를 부담한 근로소득자 1123만명의 근로소득공제 규모는 128조원에 이르지만, 의료비 공제는 292만명에 6조2000억원, 교육비 공제는 278만명, 8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특히 3000만원 이하 근로자의 경우 전체 534만명이 50조원의 근로소득공제를 적용받는 것에 비해 의료비 공제는 70만명, 7000억원, 교육비 공제는 24만명, 4000억원에 그쳤다.
결국 의료비 등 특별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에서 오는 혜택을 적용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근로소득공제 축소에 따라 오히려 전체적인 세부담이 가중됐다는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부가 50만원으로 묶여 있던 근로소득세액공제 한도를 끌어올려(총급여 5500만원 이하 66만원, 총급여 7000만원 이하 63만원) 세부담 상승 조절장치를 설정했지만, 크든 작든 근로소득공제 축소 및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으로 인한 세부담 상승분을 체감한 근로자들의 심리적 충격파까지는 조절해 내지 못했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강상엽, 류성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