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일방향' 정책홍보…대란 막을 '골든타임' 놓쳤다

◆…연말정산 대란 불러 온 '일방향' 정책홍보 = 연말정산 대란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일방향 정책홍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3년 8월 기획재정부는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을 골자로 한 세법개정안에 대한 비난여론을 막기에 급급,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는 세부담이 없다는 식의 홍보전략을 구사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전년대비 3.4% 가량 증가한 430만원, 연간으로 치면 5160만원.

정부가 발표한 이 수치는 과연 제대로된 대한민국의 실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비정규직 문제와 소득 양극화 등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높은 지금,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먹고 살기 충분한 소득을 대한민국 모든 가구가 벌어들이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는 믿음이 썩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평균의 함정'.

월 8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과 월 200만원을 버는 사람의 평균소득은 500만원이다. 200만원과 500만원의 차이는 300만원이나 되지만 '평균'이란 이름으로 획일적으로 맞추다보니 국민들은 공감할 수 없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올해 초 대한민국을 뒤흔든 '연말정산 대란'도 평균의 함정에 빠진 정부의 일방향 홍보가 원인이 된 측면이 크다. 

정부의 눈높이, 그리고 국민의 눈높이

국민들은 세법을 어렵다고 말한다. 법조문의 특성이나 다름없는 복잡성으로 인한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세법용어'에 대한 낯설음이 이러한 인식을 만들어 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연말정산 대란의 여러 불씨 중 하나를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연말정산과 밀접한 '총급여'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국민들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좀 더 신뢰성있게 설명하면, 평소에는 관심없다가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관심을 갖고 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총급여는 근로자 개인이 1년 동안 회사로부터 받은 급여와 상여금 등 전체 소득금액에서 교통비나 식비, 학자금, 실업급여, 자가운전보조금 등 비과세소득을 제외한 소득을 뜻한다. 일반 근로자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용어, '연봉'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용어다.

과세표준도 마찬가지다. 연봉에서 비과세소득을 빼고 나온 총급여에 연말정산에 적용되는 각종 소득공제와 세액공제를 뺀 뒤 나온 금액을 뜻하는 과세표준과 매월 원천징수로 납부한 세액을 의미하는 기납부세액, 연말정산 적용 후 확정된 최종부담세액을 뜻하는 결정세액 등도 세법용어다.

정부는 공식적인 정책홍보자료에는 어김없이 이 같은 세법용어와 행정용어를 여과없이 사용한다. 다시 말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매우 불친절한 홍보전략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8월 세법개정안 발표 초기, 정부는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취지(형평과세) 등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는 형태의 홍보전략을 구사했다. 제도 개편으로 인해 세수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증세가 아닌 '조세정상화'로 포장하고 늘어난 세수는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재원으로 사용한다는 설명만 잔뜩 늘어놓았다.

제도 개편으로 정부가 설정한 기준선 이상의 근로자는 세금이 늘고, 기준선 이하 근로자는 세금이 늘지 않는다는 이분법적 설명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려 했다.

문제는 국민들이 주목한 지점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주목한 대목은 어디였을까. 정부가 설정한 기준선, '총급여 3450만원'이었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저소득 근로자들에게까지 세부담을 늘린다는 비난여론이 형성됐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고 박근혜 대통령의 한 마디에 정부는 기존 노선을 버리고 기준선을 '총급여 5500만원'으로 끌어올렸다.

총급여 3450만원은 연봉 개념으로 접근하면 경우에 따라 4000만원~5000만원 수준이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총급여 5500만원 또한 실제로는 6000만원~70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 근로자층이 포함될 수도 있다.

정부가 총급여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연봉 개념으로 기준선을 설정했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지언정, 국민들의 '분노게이지'를 극한으로까지 끌어올리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평균의 함정' 그리고 '골든타임(Golden Time)'

가장 효과적인 홍보는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개괄적 내용(또는 이미지)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통상적인 정부의 정책홍보 방식은 매우 후진적이고 일방향적인 것이 사실이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는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거나 늘어나도 2~3만원에 불과하다는 정부의 설명은 사실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소득수준이라도 각자의 상황과 비용지출 성향 등에 따라 연말정산시 근로자 개개인의 세액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는 이를 확실히 간과했다. 알면서도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일부러 평균의 함정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모든 정보와 데이터를 틀어쥔 '빅브라더'의 페이스에 국민은 물론 국회의원들마저 휘말렸다.

정부가 주입한 '총급여 5500만원 이하 = 세부담 증가 미미' 공식은 제대로 먹혔다. 2013년 8월, 불같이 타오르던 세법개정안에 대한 비난여론은 순식간에 진화됐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지 못한 국민은 물론 국회의원들도 세법개정 논의 당시, 사실상 아무런 제재 없이 정부가 제출한 입법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사장됐다.

당시 세법개정안 가진 '맹독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다수가 알아차린 시점, 시간은 모두 허비됐고 연말정산 대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대란을 막을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던 것이다.

누더기 세제도 대란의 '원흉(元兇)'

어려운 세법용어와 개별 근로자들의 광범위한 사례를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평균치' 홍보방식이 이번 연말정산 대란의 한 원인이었지만 더욱 아쉬운 점은 국회와 정부, 언론, 국민 모두에게 대란을 막아낼 시간이 주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연말정산 대란의 원인이었던 2013년 세법개정안은 2013년 8월8일 발표됐고 그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2014년 귀속 연말정산 시즌이 도래한 지난해 12월, 터질 것이 터질 때까지 적어도 1년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초 정부가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과정에서 공청회 등 국민여론을 탐색하는 기본적인 절차를 생략한 채 추진했지만, 문제점을 파헤치고 공론화해 정기국회 또는 임시국회 등 언제든지 보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없었다. 

연말정산으로 인해 토해내는 세금의 액수가 늘고(특히 독신근로자), 심지어 정부가 발표한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들 중에서도 환급세액이 전년대비 줄어들거나 오히려 토해내는 케이스가 발생하자 여론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근로소득공제 조정 등 세부담 증가를 유도하는 장치들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정부 입법안에 합의해 준 정치권은 뒤늦게 보완대책 마련을 정부에 요구했고 정부도 부랴부랴 분할납부 허용 등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방적 홍보, 국민의 무관심 등도 이번 연말정산 대란의 주요원인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누더기 세법'이라고 지적한다. 세제가 단순명료하다면 정부도 굳이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서까지 국민의 오해를 살 일도, 국민도 어렵다고 외면할 일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세법은 경제상황과 정권의 정책기조에 따라 조변석개하면서 점점 복잡해지고 국민에게는 더욱 설명이 어렵고 낯설어지고 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신원기 간사는 "지금의 세법은 너무 복잡해 단 한마디로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게 설명하려고 하면 더욱 오해가 생긴다"라며 "연말정산 문제도 일종의 행정효율적인 면에서 홍보를 했기 때문에 비롯된 측면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가 갖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해 국민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간사는 "정부가 연말정산 대책을 내놓은 것도 너무 급하게 내놨다. 어차피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 또 대책을 발표할텐데 이러면 국민들은 더욱 헷갈리게 된다"며 "세법을 국민 눈높이에 맞춰 홍보하려면 '누더기 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강상엽, 류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