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했어? 얼마나 받아?"
매년 연말정산 시즌 직장인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의 주제는 연말정산 환급액이 얼마인지 여부다. 하지만, 올해(2014년 귀속) 연말정산 시즌에 펼쳐진 풍경은 예년과는 크게 달랐다.
"연말정산 했어? 얼마나 토해내?"
과장 조금 보태어 대화의 주제가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이 대화들은 '여론'이라는 큰 덩어리로 단단히 뭉쳐졌고 정부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성난 여론을 막아낼 재간을 정부는 가지지 못했다. 효과를 떠나 실패한 정책의 폐단이 정부의 발목을 제대로 잡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정부와 정부의 정책에 잔뜩 동의표를 얹었던 정치권은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연말정산 대란은 그렇게 대한민국을 온통 들쑤셔놓았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대한민국은 직면해야 했을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연말정산 대란. 그 원인은 어디서부터 태동했을까.
연.말.정.산
연말정산이란 국세청에서 1년 동안 매달 간이세액표에 따라 거둔 근로소득세를 연말에 다시 계산해, 실제 납부해야 할 세금보다 많이 징수가 됐으면 그 만큼을 되돌려 주고(환급), 적게 징수됐으면 그 만큼을 더 떼어내는 절차다.
이런 식으로 근로자들의 세금부담을 조정하는 이유는 매달 간이세액표에 따라 원천징수한 소득세액의 합계가 1년 동안 근로자가 벌어들인 소득(근로소득)에 대한 정확한 세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매달 정확한 세금이 징수된다면 연말정산은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매달 근로자들의 소득세를 여러 소득공제와 세액공제를 정확히 책정하는 일은 원천징수의무자(회사) 입장에서도,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 따라서 1년에 한 번 있는 연말정산으로 이 같은 불편을 갈음하는 것이다.
매달 급여를 받는 근로자들에게 1년 치 소득에 대한 세금을 한꺼번에 떼어낼 경우,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매달 원천징수를 통해 부담을 분산시킨다는 목적도 있다.
연말정산 대란은 이 기본적인 근로자 과세체계에 가해진 변화에서 비롯됐다.
이는 제도상의 원인일 뿐 심리적 원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속된 말로 죽을 쑤고 있는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 이 와중에 담뱃값 인상에 대한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서민중산 근로자들의 분노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연말정산 체계 개편은 '형평과세', 담뱃값 인상에는 '국민건강' 등 정부가 내놓은 명분은 그럴싸 했다. 하지만 정부의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는 수치적으로도 이미 정부가 인정했다.
바로 '세수(稅收)'다.
국민들이 치를 떠는 증세를 정부는, 그럴듯 한 명분으로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으면서 분노의 폭발력은 더 커지고 말았다.
'불청객'이 된 연말정산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12년 9월로 되돌아가보자. 연말정산 대란의 시초는 2012년 9월 당시 기획재정부가 단행한 간이세액표 조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원천징수 시점 세금을 더 걷고 연말정산 시점 더 많이 환급해주는 방식을 바꿔 '덜 걷고 덜 돌려받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조삼모사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는 했지만 근로자들 입장에서 내는 세금의 액수는 사실상 동일했다.
당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소비를 진작시킬 묘안을 찾던 정부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수단이었다.
당시 정부는 원천징수액을 10% 인하했다.
쉽게 말해 매월 10만원씩 연간 120만원을 우선징수한 뒤 연말정산에서 20만원을 환급해주던 것을 9만원씩 108만원을 거두고 8만원을 돌려주는 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연말정산부터 이미 환급액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수 개월 뒤 정부는 근로자들의 잠재된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특별공제(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보험료, 연금저축·퇴직연금 등) 항목을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것이다.
형평과세를 명분으로 상대적 고소득 근로자의 세부담을 늘려, CTC(자녀장려세제) 및 EITC(근로장려세제)를 통해 저소득 근로자에 분배하자는 것이 정부 세법개정안의 정신이었다.
실제로 근로자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고소득자의 세부담은 늘어나고 서민·중산층의 공제금액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률 공제를 정액으로 변경하면 고소득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준선'이 너무 낮게 설정되면서 불거졌다. 정부는 세법개정안 발표 초안에서 세금을 더 걷는 기준점을 총급여 3450만원 근로자로 잡았고, 근로자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결국 5일 만에 기준선을 총급여 5500만원으로 끌어올리는 희대의 헤프닝을 벌였다.
한동안 논란이 됐지만 어찌된 노릇인지(?)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국회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됐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의 경우 세부담 증가액이 없다는(연말정산 환급액에 차이가 없다는) 정부의 철썩같은 홍보 덕인지 이후 문제는 완전히 수면아래로 내려가버렸다.
이후 '무관심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 12월~올해 2월 본격적인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서 사고가 났다. 총급여 5500만원 이상 고소득 근로자는 물론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 특히 독신근로자들이 세금환급은 커녕, 수 십 수 백만원을 토해내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분노한 여론에 정책당국자들의 '진화성 발언'은 먹히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는 등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닫자 정부와 여당은 해결책을 급히 만들어 내며 정책실패를 자인해 버리고 말았다.
이 모든 과정이 증명하는 사실은 하나다.
연말정산 대란은 '인재(人災)'였다는 것이다.
정책 입안 전 충분한 국민여론의 수렴 과정도 생략한 채 '세수친화적' 정책을 그럴듯 한 명분과 수치상의 데이터, 일방향성 대국민 정책홍보를 통해 밀어붙인 정부와 이에 동조한 여야 정치권, 이를 있는 그대로 믿은 국민들 그 누구도 문제가 가진 엄청난 '휘발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13월의 보너스, 연말정산은 '불청객'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강상엽, 류성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