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증세 없는 복지, '함정'에 빠진 대한민국

'증세없는 복지' 논란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증세없는 복지가 과연 가능할까?'에 대한 의구심을 넘어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불신으로까지,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증세없는 복지를 국정운영의 모토로 내세우던 박근혜 정부를 휘청이게 만들고 있다.

증세없는 복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부터 이어져온 정책 기조. 세목 신설이나 세율의 상향조정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정비, 세출 구조조정으로 집권 5년 동안 복지공약에 소요될 재원 135조원을 충당한다는 것이 증세없는 복지의 골자였다.

하지만 재원 충당은커녕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해 나라 곳간은 해가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늘어만 가는 복지예산은 올해 115조원을 넘어서며 전체 예산 367조원 중 30%를 차지는 수준으로 비대해졌다.

애당초 비과세 감면 축소나 지하경제 양성화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부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비난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복지공약의 수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든, 최소한의 증세 가능성을 얘기해 국민을 설득하든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증세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의 증세는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대란 등 최근 벌어진 정부의 이중적 태도가 불러온 일련의 사태에 국민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

사실상의 증세를 부정하고 여전히 직접적인 증세는 없다고 외치는 정부의 태도에 나갈 돈 많아진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 '신기루' 향한 정부의 일방통행 =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경쟁적으로 복지 확대를 내세우면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진보 진영이 주도하는 복지 아젠다까지 끌어안고 '증세없는 복지'라는 슬로건을 내놓았고 당선 이후에도 이 같은 기조를 밀어붙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소요재원만 131조원에 달하는 복지공약을 제시하면서 재원 충당 방안으로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정비, 세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매년 27조원씩 임기 5년간 증세 없이 약 135조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불가능한 정책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선거 분위기에 편승, 이 같은 주장은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증세없는 복지에 대한 의구심은 이후에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정부의 말대로 세목의 신설이나 세율 인상과 같은 직접 증세는 없었지만 사실상 증세의 형태로 증세가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첫 세법개정안은 중산층 월급쟁이들에 대한 세부담이 상승한다는 이유로 3일 만에 수정됐지만 올해 연말정산 논란의 핵심인 소득공제의 세액공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정부는 9000억원의 증세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듬해 세법개정안에는 사내 유보금 과세 방침이 실렸으며, 파생금융상품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내용도 담겼다. 비과세였던 세금우대종합 저축은 대상이 축소된 형태의 비과세종합저축으로 변경됐으며, 대기업에 대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의 기본공제는 폐지됐다.

이 같은 정부 세법개정안이 발표됐을 당시 전문가들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증세 없다'는 정부의 방침과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정부는 이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문제는 올해 초 제대로 터졌다.

"설마 정부안대로 한번에 2000원(2500원→4500원) 씩이나 오르겠냐"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담뱃값은 정부안 그대로 2000원 상승된 채 국회를 통과했다.

흡연자든 비흡연자든 이 때부터 증세에 대한 불신은 국민들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하게 됐고, 결국 '13월의 세금폭탄'이라고까지 불리는 연말정산 대란은 증세라는 불씨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정부는 문제가 있다면 고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부랴부랴 후속 대책을 세웠지만 실효성 없는 정책과 여전히 증세가 아니라는 정부의 고집스런 태도에 돌아선 민심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 등 돌린 민심, 與 너마저…위기의 '증세없는 복지' =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3주 지지율이 11%p떨어지면서 집권 23개월 만에 30%선을 밑돌기 시작했다.

취임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인사 실패와 불통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지난해 말 청와대 문건유출 파문이 일었을 때도 40%대의 지지율을 굳건히 지켜온 박 대통령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민생 문제가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연초부터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논란이 일며 정부를 향한 여론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연말정산 소급적용을 검토하고 당청의 잇따른 정책 혼선을 막기 위해 '정책조정 협의회'를 신설하는 등 후속 보완책을 들고 나섰지만 콘크리트로 여겨지던 지지율 마저 깨진 상황에서 돌아선 민심을 다시 되돌리기는 역부족으로 보여 진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정치권에서도 즉각 반응하고 나섰다. 여당 내부에서까지 증세를 고민해보거나 방대한 복지수요를 조절해야한다는 주장이 새어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나성린 의원은 지난달 29일 연말정산 파동 문제와 해법 토론회에서 "어떻게 증세할 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며 대안으로 '중부담 중복지'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같은 당 심재철 의원은 최근 "공약을 내걸었다 해서 그것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현재와 같은 문제점 계속 발생한다. 지출을 줄이기 증세 국채발행 3가지가 있는데 지출을 줄이기는 어렵고 증세냐 국채냐 둘 중 하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정부를 태도를 대놓고 비판했다.
 
지난 2일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은 지난달 27일 출마 기자회견 뒤 오찬 간담회에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다. 복지개혁과 증세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한다"는 발언으로 야당과의 증세 합의를 이끌어 낼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 의원은 또 원내대표 선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현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라고 한 기조는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담뱃세가 오르고 소득·세액공제 전환 세법 개정안을 모두 증세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빠지므로 그 기조는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새누리당의 수장 김무성 대표는 지난 3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집권여당의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나란히 정권 수장의 노선에 '비토'를 놓은 것이다. 

등 돌린 여당 핵심들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목소리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야당은 법인세 인상을 비롯한 부자증세에 방점을 찍으며 정부의 증세없는 복지 프레임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일 "정부 정책이 이렇게 갈팡질팡, 우왕좌왕, 지리멸렬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것은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비현실적 정책 기조 때문이라며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여당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힐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