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에 대한 국회의 심의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세법(조세정책)은 정부의 경제정책 전개의 주요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호주머니와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법개정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충분한 논의를 통해 개정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위원들의 역할은 매우 중차대하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비롯해 의원입법안을 면밀히 검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수반되는, 부작용의 소지가 적은 세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흔히 세법은 오랜 시간 해당 분야를 공부한 세법학자들마저도 '어렵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에게 세법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새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얻거나 양보하는 '물건'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졸속 세법심의 논란은 단순히 올해 예산안 자동부의제라는 함정을 가진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됐기 때문에 촉발된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표면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 국회라는 정치의 공간에 내재되어 있었던 문제다.
근본적으로 '정치'라는 생물이 가진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여론수렴도 없이 정치적 목적, 정책적 목적만을 위해 '세법기술자'들이 만들어 낸 세법개정안, 이를 모두 소화하기 힘든 물리적 시간, 정치에 함몰되어 '세법수요자'의 눈으로 이를 바라보지 못하는 '입법기술자'들의 한계들이 교집합을 이루며 만들어진 고질적 문제다.
□ 非전문가들이 진행하는 非공개회의 = 대다수 조세전문가들은 조세소위의 모든 세법심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비공개 조세소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커튼 뒤 조세소위는 그래서 수많은 의문을 달고 다닌다.
조세소위를 둘러싼 의문 중 하나가 조세소위원회 구성원들의 비전문성이다. 전문성이 밑바탕에 깔린 심도 있는 논의가 아닌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자리가 조세소위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커다란 착시효과를 동반해 왔을 뿐, 그동안에도 조세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세소위의 세법심의 과정에 대한 의구심은 항상 존재해 왔다.
조세소위는 여야 동수 1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당은 강석훈 조세소위원장을 중심으로 김광림, 나성린, 류성걸, 정문헌 의원이 조세소위 위원으로 포진되어 있으며, 야당은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을 비롯해 김관영, 김영록, 최재성 의원이 있다. 여기에 정의당 박원석 의원까지 포함됐다.
경제학 교수 출신, 경제연구소장 출신, 세제정책을 입안하는 역할을 하는 기획재정부 고위직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모두 당내에서 손꼽히는 '경제통' 의원들이다. 하지만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세법에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한 조세소위원들이 상대적으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입법기술자들인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에게 논리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더욱 '정치적 관점'에서 세법심의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정기국회와 임시국회 당시 조세소위 회의록을 보면 감춰진 조세소위의 속살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조세소위에서 논의된 안건은 국민적 관심사였던 '종교인 과세'였다.
한 의원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일부 의원을 지칭하며 "두 분은 기독교 신자 아니냐"라며 정책취지와는 별개의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또 다른 의원은 정부안을 수정, 의원입법안으로 법안을 발의하자는 제안에 "아니, 정부가 두들겨 맞을 것을 왜 우리가 대신 두들겨 맞느냐. 나는 자신 없다"라며 무책임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올해 정기국회 조세소위는 사실상 파행적으로 운용됐다. 엄청난 양의 심의안건도 안건이지만, 국회선진화법에 휘말려 물리적 시간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졸속 세법심의 책임을 조세소위에서 떼어낼 수는 없다. 향후 공개될 ‘속기록’이 이를 증명해 줄 것이다.
□ 근거 있는 '조세소위 무용론' = 조세소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객관적 관점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조세소위는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속기록이 공개되지 않은 이상 회의장 안에서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갔는지 알 수 없다.
그들만의 '밀실회담'이다.
민감한 세법개정안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들을 불러 의견수렴을 하기도 하지만,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오고가는 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법이 다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난 이후에나 속기록을 뒤져 확인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에 조세소위 전 과정을 공개하고 사전에 중요도가 높은 세법개정안에 대해서는 조세소위 차원에서 공개적인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객관적으로 수렴하고 이를 세법심의에 반영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세제조사회가 세목별로 1년 이상의 장기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구 결과물을 정부에 보고하고 반영하는 공식적인 절차가 마련돼 있는 등 세법 제정 단계에서부터 매우 신중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민간 경제의 물길을 결정하고, 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세법이기 때문에 세법의 제정부터 심의까지 충분히 민의를 반영하고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는 구체적인 절차가 제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구체적으로 입법절차가 국회법 안에 들어가야 된다. 특히 세입부분은 더 필요하다"며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인데 국회법에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의원입법 발의는 공청회를 거치지 않게 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또한 입법예고만 하고 민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공식 루트는 없다"며 "일본을 벤치마킹해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부족한 세법심의 기간도 풀어야 될 숙제로 꼽힌다.
현행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1월1일) 90일 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세법을 비롯한 예산안과 결부된 법안들에 대한 심의기간은 60일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저런 정치일정과 소요되는 절차를 고려하면 활용이 가능한 심의기간은 더 짧아지게 되는 셈이다. 올해의 경우도 세법심의 기간이 불과 2주 남짓이었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강상엽, 류성철, 우선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