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부족과 재정적자 확대가 만성화될 징후를 보이자 조세부담을 올려야 한다는 '증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이미 높은 한국의 조세부담률을 감안할 때 증세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증세론자들은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OECD 국가 가운데 낮은 편이기 때문에 세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복지와 사회안전망 구축 등 그동안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가려 소홀했던 정부의 사회적지출 요구가 커지고 있어 조세부담률을 높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팀의 경우 적자예산을 편성해서라도 경기를 활성화시키면 세수부족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세금을 더 걷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특히 복지 등 재정지출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조세부담률이 높아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문제는 경기침체로 서민경제도 팍팍해지고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요즘, 증세의 다른 표현인 조세부담률을 높이기 위한 설득논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 조세부담률, "객관적 수치 낮아"vs"실질적으론 높아" = 학계와 정부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다른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세부담률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OECD의 회원국 통계를 보면 우리의 조세부담률이 다른 OECD국가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이다.
OECD국가의 국민총생산 중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 즉 조세부담률은 평균 34.5%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6.8%로 조사됐다. 상대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벌어들이는 소득 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사회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되어 있는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등 선진국의 조세부담률은 35%~48%로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GDP 1위인 미국은 24.3%로 우리보다 조세부담률이 낮고 일본은 28.6%로 우리보다 조금 높은 모습을 보인다.
이와 관련 조세부담률을 단순한 수치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지 않다.
각종 연금이나 사회보험, 준조세 등을 감안하면 우리의 조세부담률이 결코 낮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최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호주보다 높고 일본과도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결코 낮지 않다는 지적이다.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경우 젊은 남성들이 사실상 무보수로 군에서 국방을 위해 일하는 것은 일종의 '용역세'를 부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그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해 조세부담률 계산에 반영시키면 조세부담률은 상당히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부담금 준조세 등도 조세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어서 표면적인 조세부담률만을 두고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증세를 수반하는 조세개혁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 개인소득세는 OECD 평균보다 낮고 법인세는 높은 편 = 조세부담률을 비교할 때 각 세목별로 분석해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소득세 부담률은 한국이 OECD국가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법인세 부담률을 보면 우리나라가 OECD 평균보다 법인세 부담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세는 우리나라가 4.02%로 OECD 평균인 8.70%의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인세는 우리가 3.99%로 OECD평균 2.98%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법인세 부담은 OECD 국가 가운데 4번째로 높다.
중소기업중앙회 신상철 박사는 "우리나라의 복지형태는 영·미 등 선진국 구조를 갖고 있지만 조세구조는 그렇지 않다"며 "소득세 등 직접세가 OECD국가 중 최하여서 필요한 복지재원을 위해서는 소득세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경련의 송원근 본부장은 "최근들어 법인세율을 직접적으로 올리진 않았지만 최저한세율 인상과 세액공제축소 등으로 실질적인 기업의 세부담은 늘고 있다"며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선 법인세율 인하가 중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부가세 등 소비세는 OECD 평균 수준 = 만약 조세부담률을 올릴 경우 법인세나 소득세 같은 수입기준 항목이 아닌 부가세나 개별소비세 같은 소비기준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소비세는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조금만 세율을 올려도 효과가 크고 직접세와 비교해 조세저항이 세기가 상대적으로 약해 세금징수에 용이하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지난 2013년 우리나라 전체 세수 가운데 부가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9.4%로 소득세 25.1%, 법인세 23.1% 보다 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주세, 담배세 등 개별소비세까지 합치면 32.3%나 돼 각종 소비세 인상에 따른 세수증대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부가세 증세는 국민전체에 대한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조세형평성이 높은 나라가 경제성장률도 높다"며 "조세형평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인데 부가세를 올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부가세 증세에 반대했다.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도 "지금 당장 부가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향후 필요한 재정지출의 예비비를 써버리는 것"이라며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통일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재정지출을 위해 부가세는 가장 나중에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우 의원은 그 대신 담배세나 주세 등 개별소비세를 먼저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여야는 물론 조세전문가들도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복지 등의 재정지출 규모가 커지고 조세부담률도 올라 갈 수밖에 없다는 데는 인식은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세금을 어떻게 얼마나 더 걷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워낙 민감도가 높은 아젠다라는 측면에서 쉽게 결론에 도달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