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를 반드시 입법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꺾여버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의 과세의지 실현을 측면에서 지원해야 할 정치권이 종교계의 눈치를 보며 오히려 발목을 잡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여파로 종교인 과세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 종교인 과세 법안 처리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정치권의 이중적 태도에 정치권에 대한 국민여론도 악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세법개정을 통해 오는 2015년부터 종교인 소득에 대해 과세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하지만 정기국회 논의과정에서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지난 2월에는 수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당초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정부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구성이 새로 짜여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국회 기재위원장인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과 기재위 간사인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은 종교계와의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처리에 난색을 표했고 야당 역시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사실상 반대의 뜻을 굳혀 법안의 연내 통과가 사실상 무산위기에 처해 있는 형편이다.
기재부 스스로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새로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종교계와 협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종교인들 간 합의가 덜 이뤄졌다"며 "신앙의 자유, 자발성에 기초한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언급,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 멀고도 험한 종교인 과세 = 매번 종교인 과세가 국회 문턱에 걸려 통과되지 못했던 것은 정치적인 이유였다. 표를 먹고 사는 의원들의 입장에서는 지역의 단단한 기반과 강한 결속을 가지고 있는 종교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종교인 과세의 필요성을 말한 이후 2012년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이 종교인 과세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까지 무려 40여년의 시간이 걸린 것만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종교인 과세가 필요하다는 박 전 장관의 발언도 대선이라는 정치 이벤트와 정권 말이라는 정치적 상황에 밀려 추진되지 못했지만 지난해 정부는 정책 집행 동력이 살아있는 정권 초라는 이점을 앞세워 종교인 과세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야당도 법안 처리에 의지를 보였지만 여당에서는 과세인프라가 아직 미흡하고 종교계 합의가 덜 됐다는 이유로 법안 처리에 난색을 표했고 정부가 올해 2월 대안을 가져오기로 한 채 해를 넘겼다.
기재부는 약속대로 종교계가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사례금' 항목을 '종교인 소득'으로 바꿔 과세하도록 내용을 수정했고 일률적으로 소득의 80%를 필요경비로 인정해준다는 원안과 달리 소득수준별로 차등을 두기로 했다.
근로장려금(EITC)을 적용해달라는 종교계의 의견도 수용해 저소득 종교인에 대해선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전문가들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할 정도로 파격적인 대안을 들고 나왔다.
□ 정부 대안, 논의 '0'…실현 가능성은? = 하지만 정부가 애써 만들어놓은 종교인 과세 대안은 단 한 번도 조세소위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지 못했다.
지난 2월 임시국회 때는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의 야당 비방 트위터 글 논란으로 기재위가 파행됐으며 이 사태는 4월 임시국회까지 지속됐고 생각지도 못한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면서 유야무야 그렇게 넘어갔다.
6월 임시국회 때는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 선거로 인해 정기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정기국회가 얼마 안 남은 지금, 기재위원들은 논의를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통과를 위한 심도있는 논의는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인 상황이다.
기재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은 "종교인 과세는 논의가 길어지면 안 되지만 정기국회에서 제대로 다뤄질지 의문"이라고 전했고 다른 여당 의원은 "지난번 종교인들과 합의한 것(자진신고납부 등)을 기초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안보다 다소 후퇴된 입장을 나타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지금 예단하기는 섣부르다. 정기국회 때 당내 의견 수렴을 통해 입장을 내놓을 것"이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정부 스스로 과세하겠다고 해놓고 일부 대형교회와 보수교단의 반발에 눈치보고 있다. 정부 조세정책의 형평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적극적이지 않아서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촌평했다.
□ 사회적 합의 됐는데…일부 종교인 때문에 '좌절'(?) = 기재부는 종교계와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법안 처리에 난색을 표하는 국회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종교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대안까지 만들어냈다.
그 결과, 종교인 과세 자체에 대해 반대해오던 종교계도 과세 자체에 대해선 찬성하는 입장으로 선회했고 조계종과 가톡릭 등은 기타소득 중 사례금으로 부과하려던 것을 종교인 소득 항목을 신설해주면 소득세를 납부하겠다는 입장도 내보였다.
개신교는 종교인 과세는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교회에 대한 세무조사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지만 종교인 과세에 가산세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다른 항목에 대한 과세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우세할 정도로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냈다.
종교계의 반발이 일부 종교인들만의 반발로 보여질만큼 종교인 과세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이미 무르익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아울러 기재부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뒤로하며 종교계의 요구였던 EITC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고 이제 밀어붙이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국회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다.
이런 논란에 기재부는 "종교인 소득 과세와 관련한 법안을 지난해 국회에 제출했고 올해 2월 종교계가 참석한 국회 간담회에서 수정대안을 제시했다. 상당한 수준의 의견접근이 이뤄졌다"며 "종교인 소득 과세 문제는 추후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라며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종교인 과세 제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처리를 미루면 안 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전병목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칙대로 하는 것이 맞다. 종교인 과세는 이중과세이니 이런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과세제도"라며 "종교인 과세는 반드시 해야되는 것이고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영기 홍익대 교수는 "현재 일반 국민들의 여론은 과세에는 예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정치인들이 종교인 편을 들면 유권자들의 표심을 잃을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봤을 땐 종교인 과세가 이뤄질 것이다. 조금 더 지나면 여론 주도층들의 생각이 정치인들에게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