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탄탄대로', 현실은 거대한 '벽' = 부가세율 인상은 향후 폭발적으로 증가할 소지가 큰 국가재정 확보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부가세율 인상을 비롯해 부가세 분야를 건드리는 문제(ex : 면세범위 조정, 간이과세자 축소 또는 폐지 등)는 논리만 가지고는 풀어낼 수 없는 거대한 현실의 장벽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에덴동산에 맺힌 달콤하지만 강한 독침을 숨기고 있는 선악과(善惡果), 그것이 부가세율 인상의 실체다.
유신독재의 종말은 1977년 부가가치세 제도 도입에서부터 잉태됐다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10·26 열흘 전 발발한 부마민주항쟁도 부가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폭발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전쟁의 발발원인도 세금이었다.
세금은 그만큼 '휘발성'이 높다는 것이다. 함부로 건드리면 가혹한 대가가 따른다.
1991년 캐나다 정권교체, 1997년 일본 정권교체는 집권세력이 소비세율을 건드린 것에 대해 국민들이 안겨준 대가였다. 정치적 측면에서 부가세율 인상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부가세는 빈부격차를 고려하지 않는 세금이다. '소비'를 과세베이스로 삼고 있는 부가세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부터 수 백억대 재산을 가진 거부(巨富)까지 전 국민이 소비에 따라 부담하는 세금이기 때문에 세율변동에 따른 파급력의 수준 자체가 다르다.
'행동'이 없었기 때문에 가늠이 불가능할 뿐 부가세율 인상이 가져올 조세저항의 크기는 어마어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정부의 2013년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명분이 빈약했다는 측면도 크지만)월 1만원 소득세도 더 내기 싫다는 것이 민심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 상황에서 역진성으로 인한 소득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부가세율 인상을 정부가 선택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보는 것이 맞다. 국민들 입장에서 부가세율 인상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양면성을 가진 문제다.
정권창출이 목적인 정당도 마찬가지다. 세율인상 논리와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울러 내심 인상을 추진하고 싶지만 선거결과에 직결될 조세저항을 의식한다면 그 누구도 '악역'을 떠맡기 꺼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조세저항 이외에도 부가세율 인상의 부작용은 또 있다. '물가상승'이다.
전문가들은 부가세율을 1%p 올리면, 소비재의 가격은 그 이상 올라갈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 조세전문가는 "부가세율을 1%p만 올려도 대다수 사업자들이 세부담 증가분을 물건값에 반영,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상승 효과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시적으로 상승한 소비재 가격이 굳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고통지수'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 부가세 제도 성역(聖域)은 아니다, 국민설득 '관건' = 분명한 사실은 부가세율 조정을 포함한 부가세 제도가 건드려서는 안될 '성역'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카드만 제대로 찾아낸다면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적 카드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 앞서 증명됐듯 복지확대를 위한 재원마련이라는 카드, 통일재원 마련을 위한 필수적 선택이라는 카드는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그 어느 전문가도 이 이상의 설득카드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도 정치권도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부가세율 인상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카드를 찾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두뇌를 소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현 시점, 그리고 앞으로도 부가세율 인상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일 수밖에 없다.
직접적인 세율인상이 어렵다면 우리나라 부가세 제도의 문제점으로 꼽고 있는 부분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하는 것도 재원확보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탈세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간이과세제도 정비, 광범위한 부가세 면세범위 조정 등이다.
간이과세제도는 도입 이후 지금 현재도 탈세를 부추기는 뒤틀린 제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금융수수료(ATM 이용, 환전), 교육·의료용역에 대한 부가세 면세정책은 전향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세정책 공청회에서 "원칙적으로 수수료가 발생하는 금융거래에는 모두 부가세를 부과해야 한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영리목적 교육용역도 부가세 면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그 동안 부가세 면세범위를 축소하는 노력을 점진적으로 추진해 왔다. 지난 2010년 자동차 운전학원 등 교육용역은 부가세 면세대상에서 제외했고, 쌍꺼풀 수술 등과 같은 미용목적 의료용역도 부가세 과세대상으로 전환했다.
OECD 주요국가들이 비영리 목적 교육과 국민 후생용역 성격의 의료서비스에 대해서만 부가세 면세를 적용하는 등 지속적으로 면세범위를 축소하는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한 조세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그 동안 정치적 이유가 정책목적으로 둔갑해 부가세 면세범위가 추가된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들의 생활과 기업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면세범위 조정조차도 적지 않은 '조세저항'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 포함시킨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 설정, 미용목적 의료행위 과세대상 확대 등은 벌써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혀 국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해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장)은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설정 부분은 국회 통과가 어려울 것 같다. 야당반대뿐 아니라 이해관계인들의 반대가 심하다"며 "경제논리로는 맞아도 정치논리로는 힘들다"고 언급했다.
간이과세제도 폐지 문제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2011년 기준 전체 사업자 536만명 중 간이과세자는 185만명(34.5%). 정부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소득탈루를 통해 인위적으로 간이과세자 범위에 합류한 '짝퉁' 간이과세자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조세저항 목소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않는다.
특히 간이과세자가 곧 '서민'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간이과세제도 폐지 또는 조정에 대한 저항 역시 가늠하기 쉽지 않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이희정·이현재·강상엽·김중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