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는 소득세, 법인세와 함께 3대 기간세목으로 꼽힌다. 세수규모 측면에서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압도하는 최대 세목이다. 지난 2012년 기준 부가세수는 55조6600억원 수준(소득세수 45조7600억원, 법인세수 45조9300억원)이었다.
우리나라가 부가세 제도를 도입한 시점은 지난 1977년. 도입 당시 세율은 10%였다. 경제규모와 국민들의 삶의 질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2013년 현재 부가세율은 10%. 35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부가세 인상은 증세를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주목받아 왔다. 효과 또한 확실하다. 모든 주변 조건을 그대로 둔 상태를 가정하고 부가세율을 1%만 상향조정해도 5조원(2012년 세수 기준) 이상의 추가세수가 정부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온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부가세 인상은 에덴동산의 '선악과(善惡果)'와 같다. 보기에도 먹음직 할 뿐만 아니라 베어 물었을 때의 달콤함은 크지만 그 속에 독이 잔뜩 묻은 가시가 숨어 있고 이 가시에 찔려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부가세 인상, 말은 쉽지만 현실화를 위해서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비롯해 그 어떤 세목의 세율인상 보다 더 높고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특히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부가세 인상 시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과연 어느 정권이 '선악과'를 따기 위해 손을 뻗겠는가.
□ "부가세 인상, '군불때기' 계속" = 저출산·고령화의 가속화로 복지지출 확대가 국가의 숙명이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점차 형성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증세의 방법론, 증세에 앞서 풀어야 할 과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해결이 없이 무조건 복지를 우선해 증세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실 부가세 인상은 지난 십 수년 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인상 명분에 있어서 복지가 가장 먼저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이 현재와 달랐을 뿐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지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재원' 마련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이 방편 중 하나로 부가세율 인상이 거론됐었다. 복지가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부가세 인상 명분의 최우선 순위에 복지가 놓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2월 한국을 방문한 앙헬 구리아 OECD사무총장은 복지재원 마련을 고민하는 한국정부에게 "아직 부가세 인상 카드가 남아있다"는 조언을 남겼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언급할 때 기준점을 삼는 OECD회원국 평균 부가세율이 19%를 육박하는 수준이라는 측면에서 앙헬 구리아 사무총장의 조언은 적시성이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부가세 인상 명분의 최우선 순위에 복지가 세팅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대선이었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부가세율은 지난 35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며 세율인상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곧바로 자신의 발언이 증세 뉘앙스로 해석되자 발언을 거둬들이기는 했지만, 그의 발언이 논리적 측면에서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만큼 부가세율 인상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정합성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최근 "부가세율이 1977년 도입 이후 35년간 10%를 유지하고 있고, OECD 국가 중 4번째로 낮다"며 향후 복지재정 증가추세와 인구고령화로 인한 세원축소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부가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명분·실리' 최적화 된 부가세율 인상 = 복지가 시대조류이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세가 필수라면 다른 어떤 세목보다 부가세율을 인상하는 것이 명분과 실리의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데 이견을 내놓을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드문 것이 사실이다.
세율 인상 논의에 있어 가장 필요한 부분은 이미 확보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득세와 법인세처럼 과표구간이 존재해 다소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다. 단순히 세율만 1∼2%p 움직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차용한다면 부가세율 인상 여지는 더욱 도드라진다. OECD회원국 평균 부가세율은 18.7% 수준이다. 캐나다와 일본은 매우 낮은 수준의 부가세율(각 5%)을 유지하고 있지만, 프랑스(19.6%), 독일(19%), 영국(17.5%)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높은 부가세율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복지천국' 북유럽 주요 국가들은(스웨덴 25%, 노르웨이 25%, 덴마크 25% 등) 20% 이상의 부가세율을 책정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향후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재원, 복지수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원이 필요한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 최소 2%p, 최대 5%p 가량 세율을 올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부가세율 인상 논의는 더 이상의 추가논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히 숙성이 된 상태다. 하지만 학자들이 내놓은 논리로는 극복이 어려운 큰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부가세율 인상이 가져올 '물가상승' 등 경제에 미치는 충격, 그리고 후폭풍의 강도를 가늠하기 힘든 '조세저항'이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이희정·이현재·강상엽·김중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