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은 뒷전, '이념'에 치우진 법인세율 인상 논란 = 법인세율 인상을 둘러싼 찬반 양쪽의 시각차는 '타협'의 여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극명하다. 언제부터인가 '이념(보수·진보)'이 스며들어 현실진단을 기반으로 한 논쟁이 아닌 이념논쟁으로 변질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세문제를 이념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이라는 국가경제의 없어서는 안될 버팀목과 직결되는 문제다. 따라서 이념보다는 현실진단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인세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측의 주장을 좀 더 뜯어보면 재벌 대기업에 대한 세율인상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는 대기업들에 대한 '부의 집중' 현상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목 최고세율은 24.2%(지방세분 포함)이지만 투자 등과 관련한 각종 비과세·감면이 적용되면서 실제 대기업들이 부담하는 실효세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주머니를 닫은 채 엄청난 사내유보금(2012년 3월 기준 10대 재벌그룹 사내유보금 183조원)을 쌓아놓고 있다는 것을 문제로 꼽고 있다.
2008년 법인세 인하의 논리, 대기업 경제력 집중이 투자로 연결되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소비가 늘어나는 등 하부계층까지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보수경제학의 핵심 '트리클 다운 효과(낙수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도 진보이념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형국.
아울러 재벌들의 편법적인 부(富) 이전, 해외 조세피난처를 활용한 역외탈세 시도 등 어두운 이면들이 공개되면서 '재벌'에 대한 여론의 히스테리 반응도 극에 달해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복지확충을 위한 돈줄이 필요하다는 인식까지 합쳐지면서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은 매우 매력적인 카드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현실적 측면에서 바라본 법인세 인상, 경제활성화 '찬물' = 이념을 떠나 현실적 측면을 따져보면 법인세 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장 법인세율 인상이 세수확보에 도움이 되지만 국가경제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국가들의 동향을 면밀히 살필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2008년 28% 수준이었던 아시아 국가들의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은 현재 22.4% 수준까지 낮아졌다. 태국과 베트남은 올해와 내년 각각 법인세율을 20%와 23%로 낮추거나 낮추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외에도 아시아 국가들은 법인세 인하를 포함해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획기적인 세제인센티브를 퍼붓고 있다. 중국은 다국적 기업 유치를 위해 첨단기술 기업에 각종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있고, 베트남은 외국기업에 대해 일정 기간 법인세 면제혜택과 함께 토지 무상 임대 등 먹음직한 '당근'을 내밀어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현재 재계 안팎에서는 이들 국가들에 비해 투자환경 측면에서 척박한 대한민국을 떠나 거점을 가까운 아시아 국가로 이전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율까지 올린다면, 국내 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물론 외국자본의 유입 또한 더욱 위축되고 국내자본의 해외유출만 심화,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해외 직접투자는 236억 달러인데 반해 외국인 직접 투자는 50억 달러에 불과, 우리나라로 들어온 돈보다 해외로 나간 돈이 4∼5배 많아 우리 경제의 '엑소더스(Exodus)'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곽태원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최근 언론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개방화된 소규모 경제의 경우 법인세율의 상승은 기업들의 국외이전 또는 국내투자 감소, 외국인 직접투자 감소 등을 초래해 국내 일자리를 줄이고 세원(稅源)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 이념과 현실 갭(Gap), '명분'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 현재 민주당은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대기업에 적용하는 세율을 22%에서 25%로 3%p 인상하고, 과세표준 2억∼200억원 구간에 적용되는 법인세율도 2%p(20%→22%)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상황이다.
이렇게 법인세율을 인상할 경우 연간 4조6400억여원, 5년 동안 총 23조2365억원 세수 증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당장 세수가 부족하고 복지재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를 메울 방편으로 법인세율 인상을 논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복지재원 확보가 법인세율 인상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대지진으로 인한 국난 극복을 위해 특별세 형태의 세금을 더해 법인세율을 대폭 끌어올린 일본의 경우처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인세율 인상은 가장 시급한 경제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는 지적이다. 정 필요하다면 법인세율 인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먼저 만들어낸 뒤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세율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인세는 효율성 관점에서 열등하고 형평성 개선에도 기여하지 못 한다"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성장잠재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부담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성장 친화적 조세체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명목세율은 그대로 둔 채 법인세 최저한세율 조정을 통해 일정부분 '실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백정현 세무사는 "법인세율을 올리지 않는 목적은 다른 나라와의 형평을 맞춰 투자유치를 하자는 것"이라며 "명목세율을 올린다면 기업들은 세금에 민감하기 때문에 세율이 낮은 나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인세율보다는 최저한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기업들은 공제나 감면을 받는 세금이 많기 때문에 명목 법인세율이 올라도 실제 대기업들이 납부하는 금액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도 "명목세율 인상은 외국과의 경쟁 때문에 올리기 어려워 법인에 대한 여러 가지 혜택을 비과세를 통해 주고 있다. 과도한 비과세 혜택을 통제하는 부분은 최저한세율 조정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이희정·이현재·강상엽·김중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