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減稅)를 경제정책 기조의 중심축으로 삼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08년부터 대대적인 법인세율 인하를 추진했다. 소득금액(과표) 기준으로 2억 초과 25%, 2억 이하 13%였던 법인세율은 각각 22%, 10%로 인하됐다.
기업의 세부담을 완화, 투자를 늘려 일자리와 고용을 늘리고 소비까지 진작시키는 '경제선순환(트리클 다운 효과)'의 시발점으로 세율 인하를 선택한 것이다. 시나리오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그 시나리오가 현실에 완전히 대입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5년이 지난 2013년,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 정책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누계 세수실적은 92조1877억원(1월∼6월). 전년 동기 대비 9조4061억원이 줄었다. 특히 감소분의 절반(44.5%) 수준인 4조1883억원이 법인세 감소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은 투자에 인색해지고, 감세효과로 사내유보금만 산더미처럼 쌓이면서(2012년 3월 기준 10대 재벌그룹 사내유보금 183조원), 대기업들은 감세의 열매를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증세논쟁'의 한 지류(支流)로 법인세율 인상(환원)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대기업들에 대한 세율을 인상, 복지재원에 투입되는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법인세율 인상 주장의 핵심 포인트다.
□ '낮은 세율' 찾아 3만리, 모국(母國) 떠나는 기업들 = 최근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대형 기업들이 유럽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고 아예 본사를 유럽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의 본사 이전 배경은 '세금(법인세) 절감'.
미국 제약회사 페리고는 아일랜드의 바이오테크 기업 엘란을 인수하면서 본사 이전을 발표했다. 미국에서 30%의 법인세를 내면서 기업활동을 할 바에는 17%의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수 있는 아일랜드로 이전을 선택한 것이다(세금 절감액 1억1800만 달러).
네덜란드 광고회사 퍼블리시스를 합병한 미국의 광고 회사 옴니콤도 합병 직후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겨버렸다. 마찬가지로 법인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다(세금 절감액 8000만 달러).
낮은 세율을 찾아 모국을 떠나는 기업들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큰 오산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움직임이 본격적이지 않을 뿐 대한민국에도 실제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질 공산이 크다.
수익성을 찾는 것이 곧 생존인 기업은 냉철하다.
투자환경이 마땅치 않으면 옮겨버리면 그만이다. 이미 경제에 국경(國境)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다. 낮은 세율로 기업들의 구미를 당기는 나라들은 세계 도처에 존재한다. 왜 세계 각국이 법인세율 인하 전쟁을 벌이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 법인세율을 둘러싼 '총성(銃聲)' 없는 전쟁 = 세계 각 국은 지금 이 시간에도 법인세율 인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요란한 포성만 존재하지 않을 뿐,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OECD회원국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 지난 2000년 30.2%에서 2011년 25.4%로 급격히 하락했다. 국경 개념이 사라진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하지 못하거나 그나마 있는 기업들을 놓친다면 경기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로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인하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낮은 법인세율로 다수의 기업들을 유치, 기업활동에 동반되는 경제효과(고용, 소비)를 극대화해 국가경제를 부양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법인세율을 38% 수준까지 올린 이웃나라 일본도 최근 단계적으로 법인세율을 25∼30%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한민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2%(지방세분 포함시 24.2%)다.
OECD회원국 평균(2011년 기준 25.4%)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법인세율 인상이라는, 세계적 기류에 역행하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법인세율 인상의 명분이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세계 각 국은 경제활성화를 이끌 파트너인 대형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낮은 세율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인데 대한민국은 복지를 명분으로 거꾸로 갈 태세다.
경제활성화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설정한 박근혜 정부가 법인세율 인상은 없다 고 분명한 선을 그은 상태지만 복지재원 문제에서 촉발된 증세 논쟁 틈바구니에서 법인세율 인상 주장은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이희정·이현재·강상엽·김중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