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의 신용 정보가 유출돼 경찰에 알렸으니 협조 요청에 응해주세요."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을 직접 당하게 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까요.
최근 A씨는 H은행 직원을 사칭하는 자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했습니다.
A씨는 사기꾼의 지시에 따라 은행 통장과 신분증, 인감을 지참해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휴대전화는 꺼둔 상태였습니다.
이를 뒤늦게 알아챈 A씨의 남편은 서둘러 H은행 지점에 방문해 상황을 설명했으나, 은행 직원은 A씨의 남편이 보이스피싱을 직접 당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경황이 없었던 A씨의 남편이 횡설수설하자 은행 직원도 적잖이 당황한 것입니다.
은행 직원이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보여주세요"라고 말했으나 A씨의 남편은 "신분증이 없고 주민등록번호 앞 번호만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직원은 고령의 A씨 남편이 본인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판단했고, 콜센터(call center)를 통해서 본인 확인 절차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A씨 남편의 통장이 분실한 것으로 처리되며 '통장 분실 등록이 완료됐다'는 문자메시지까지 발송됐습니다.
한편 이 때 A씨는 H은행의 다른 지점을 방문해 현금카드를 발급받고 사기꾼의 계좌로 총 1800만원을 송금했습니다.
현금카드의 경우 신용카드와 달리 신청 즉시 발급과 사용이 가능한 점을 이용해, 사기꾼은 A씨에게 현금카드를 발급받도록 한 것입니다.
보이스피싱을 알아차렸는데도 억울하게 당한 A씨의 남편은 금융감독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해 은행이 피해 보상을 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A씨의 남편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은행 직원은 콜센터에 연결해 본인 확인을 하는 등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통장 예금의 지급정지를 했으면 돈을 안 빼앗겼을 텐데 분실신고만 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은행 측은 "지급정지 신청은 예금주 본인만 가능하며 예금주 본인의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만큼 지급정지를 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이 지급정지를 조치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했으면 손해배상을 해야 하나, 예금에 대한 지급정지의 경우 예금주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다"고 판단했습니다.
금감원은 또 "또 A씨 남편이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신분을 확인할 객관적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은행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