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손님은 '왕' 문화…남몰래 가슴 멍드는 관세 지킴이들

"내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어디서 아들뻘인 놈이 와서 날 검사해?"
"내 술이니까 내가 여기서 마셔버리거나 깨 버리면 될 것 아니야?"
"네 이름이 뭐야? 내가 아는 사람이 청와대에 있는데 너 가만 안 둘거야"

우리가 세계에서 8년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한다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인천국제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 단면이다.

연간 3200만명의 여행객들이 드나드는 인천공항은 8년 연속 공항서비스 평가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진 만큼 세계 어느 공항과 견주어도 규모와 시설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600만평 이상되는 부지에 여행객들이 주로 있는 입출국장, 면세점 등 여객계류장만 해도 38만평에 이른다. 시설도 화려해 여객계류장의 중앙에 있는 무대에서는 날마다 공연을 하고 향수와 화장품, 명품이 즐비한 면세점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행에 들뜬 마음을 더욱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인천공항의 친절한 서비스, 우수한 시설 등은 여행객들을 흡족하게 하지만 그 한쪽에는 어딜가나 '왕'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관 직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손님은 '왕' 문화, 법집행 공무원은 '찬밥'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인천공항을 찾은 지난 9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수하물 수취대에서 큰 자물쇠처럼 생겨 시끄러운 소리를 연신 울려대는 전자택이 달려있는 자신의 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세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별도의 검사대에서 자신의 짐가방을 열면서 여행객들은 "이거 왜 열어요?"라거나 "뭐가 문제라는건데요? 아무것도 안 들고 왔거든요"라며 기분 나쁘듯이 말을 툭툭 던진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시비가 붙을 수 있겠지만 세관 직원들은 꾹꾹 참는다. 오히려 이 정도면 양반이라고 한다.

휴대품6검사관실 김진원 관세행정관은 "한 여성 여행객이 면세점에서 물건을 산 것을 뻔히 아는데도 같이 온 남자친구와 서로 모른다며 30분이나 실랑이를 한 적도 있었다"며 "나중에는 '국내에서 산 것을 증명하면 당신이 물어낼거야?'라고 세관 직원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면세범위를 초과한 양주를 구매한 사람이 여행객에게 세관 직원이 과세 대상이 된다고 하자 욕설을 한 경우도 있었다.

해당 여행객은 "1병 가지고 왜 그러냐. 내 물건이니 내가 마셔버리겠다"라며 "왜 물건을 유치하려고 하느냐. 규정을 모르니 내게 지금 설명하라"고 소란을 피웠다.

다른 여행객은 지인들에게 선물할 물건이 면세범위를 초과해 세관 직원이 물건을 유치한 뒤, 추후 출국할 때 물건을 찾아갈 것을 안내했고 보관료가 나온다고 설명하자 "내가 모 단체 위원장이다. 청와대와 언론을 통해 관세청의 문제점을 폭로하겠다"며 "네 이름이 뭐냐.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은 적도 있었다.

이에 입국장에서 근무하는 세관 직원들의 상당수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호소한다. 세금을 부과하는 쪽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이고, 사회안전을 위해하는 물품 등은 철저히 단속해야 하는 압박감과 더불어 여행객들의 민원에도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소란을 피운 사람들은 대개 해당 직원이 불친절했다며 민원을 넣기도 한다.

휴대품 통관 분야에서만 연간 160건 정도의 민원이 발생하는데 가장 많은 민원이 불친절 부분이었고 그 다음이 과세 절차, 검사 지정 등이었다. 직원들이 여행객의 휴대품을 검사하면서 욕설을 듣거나 시비가 붙는 일이 이틀에 한번 꼴로 일어나는 셈이다.

세관 직원들의 힘든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비행기가 밤낮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것도 세관 직원들을 지치게 한다. 그나마 매일 밤을 새거나 매일 낮에 근무하는 등 근무시간이 일정하면 거기에 적응하면 된다지만 입국장 직원들은 하루는 주간에, 하루는 야간에 근무하는 구조다.

물론 비행기가 드문 시간인 새벽 12시부터 4시까지는 좀 쉴 수 있지만 집에서 자는 잠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없었던 일명 '캡슐방'이 생겨 예전보다는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한다.

캡슐방은 십여명이 동시에 잘 수 있는 이곳은 한 사람 정도가 들어가 몸을 뉘일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로 직원들이 옆사람이 쳐다보거나 하는 것 등을 신경쓰지 않고 잘 수 있다.

하지만 한두시간 쉬었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해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깊은 잠은 '그림의 떡'이다.

김진원 행정관은 "직원들도 사람이다보니, 자다 일어나 업무를 보려면 민감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여행객들도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오니 서로 조금만 감정이 상해도 크게 번질 수 있다"며 "몇 시간만 있으면 곧 쉬니까 다들 힘내자고 많이 독려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초 당 짐 하나…'매의 눈'으로 잡는다

세관 검사대 직원들이 여행객들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고생하고 있다면 물밑에서는 여행객들의 짐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감시요원들이 치열한 검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비행기에서 짐을 내려 수하물 수취대로 보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15분에서 20분 남짓. 여행객은 비행기에서 내려 걸어오면 어느 새 수하물 수취대에는 짐이 하나씩 내려오고 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짐이 재빠르게 나오는 것도 인천공항의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 한몫했다.

거기에는 3초 당 짐 하나를 샅샅이 뜯어보고 판독하는 엑스레이 판독요원들의 눈물과 피땀이 있었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한 사람당 4대의 모니터를 앞에 두고 연신 모니터만 바라보는 여직원들은 옆사람과 말할 시간도 없어보였다. 짐이 내려오는 순간, 저들의 눈은 온통 모니터에만 쏠려있었다.

일반 사람이 보기에는 평범한 짐인데도 거기에서 명품 가방을 발견한 한 직원은 마이크로 "검정 가방 뒤집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 말은 바깥에서 짐을 콘베이어 벨트에 넣고 있는 직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 그 직원은 바로 짐의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뒤에는 짐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그 짐만 바라볼 수 없다. 1~2초 안에 판독을 끝낸 뒤, 전자택을 붙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판독요원들이 과세 물건이 들어있다고 판단하는 물건은 노란색 전자택을 부착해달라고 요청한다. 전자택 고리를 걸 수 없는 짐이라면 노란 스티커를 붙이도록 한다.

이렇게 하루에 붙이는 노란색 전자택과 스티커만 430건, 월별로는 1만3000건에 달한다. 총기나 인명살상용 무기류 등 안전위해물품에 붙는 빨간색 전자택과 스티커, 식물검역과 관련한 연두색 전자택, 동물검역과 관련한 주황색 전자택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엄청나다.

3초 안에 이상이 있는 짐을 다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는 경력과 실력이 있는 판독요원들만 배치된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점에 불과한데도 지폐와 실탄, 총기류를 잡아낸다. 그만큼 꼼꼼함도 중요하기 때문에 여직원들만 배치된다.

때문에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비행기가 들어오면 그 비행기의 짐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검사를 하기 때문에 혹시나 총기나 마약 등의 위해물품을 적발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까 '중압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감시과 임영숙 관세행정관은 "우리는 눈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눈이 보배다. 오래 앉아 있어 허리도 안 좋은 사람들이 있다. 한 번 앉으면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자리를 못 뜨는 경우도 있다"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보는거라 남한테 부탁할 수도 없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교묘하게 숨겨 적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스트레스는 참 크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