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올해로 담배를 입에 문지 10년째 되는 '애연가'다. 회사업무를 마친 뒤 동료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위해 단골 백반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A씨는 익숙하게 메뉴를 주문하고, 습관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몇 모금 연기를 내뿜는 것도 잠시, 크고 작은 기침소리와 함께 주변의 뜨거운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따가운 눈초리로 A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A씨는 몇 모금 빨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된 담배에는 담배소비세, 국민건강증진기금을 비롯한 6종류의 세금과 부담금이 부과된다. 한 갑에 2500원인 담배에 붙은 세금은 담배소비세 641원, 지방교육세 320원, 부가가치세 227원 등으로 총 1188원이다.
여기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354원, 폐기물부담금 7원, 연초안정화부담금 15원이 추가된다. 담배 한 갑 가격에 포함된 세금과 부담금만 1564원으로 전체의 63%를 차지한다. 생산원가가 640원 정도인 담배 한 갑이 소비자가격 2500원으로 '뻥튀기'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도대체 담배엔 왜 이토록 많은 세금이 붙는 것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위의 A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술, 담배 등 자신과 타인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제품의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정부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소비가 줄지 않는다면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름 마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죄악세(Sin-Tax)'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04년 12월 담뱃값이 500원 인상됐을 때, 담배에 부과하는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이 929원에서 1338원으로 409원 올랐다. 인상액의 80%를 세금과 부담금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담뱃값을 1만원으로 올리게 된다면 약 7500원 가량이 세금과 부담금으로 부과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담뱃값 '꼴등', 흡연율 '1등'…대한민국은 '흡연 공화국'
우리나라 담뱃값은 지난 2004년 12월 500원이 오른 뒤 지금까지 동결된 상태다. 담뱃값은 현재까지 8년이 넘도록 2500원을 유지했고,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 흡연율은 OECD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산하 담배규제위원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담뱃값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는 한 갑당 2500원으로 꼴등을 차지했다. 반면 아일랜드 1만4975원을 비롯해 서유럽 대부분 나라의 담뱃값이 8000원∼1만원 수준이다.
한국의 흡연율은 44.3%(2009년 15세 이상 성인 남성)로 OECD 34개 국가 가운데 그리스(46.3%)에 이어 2위다. 스웨덴(13.5%)의 흡연율이 가장 낮았고 아이슬란드(15.9%), 미국(17.9%), 오스트레일리아(18.0%), 캐나다(18.2%), 뉴질랜드(19.3%), 노르웨이(21.0%) 등 대부분 담뱃값이 비싼 나라들이 흡연율 하위권에 속했다.
담뱃값과 흡연율의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7전8기' 담뱃값 인상 논란 '재점화(再點火)'
이처럼 상대국가에 비해 높은 우리나라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뱃값을 올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그 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담뱃값 인상에 대한 저항이 상당히 거센 편이다.
담뱃값 인상이 물가와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간접세의 특성상 담뱃값이 오를수록 소득의 역진성은 더욱 심화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담뱃값 인상안을 내놨지만 이에 따른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자 가격 인상 방안을 바로 원점으로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꾸준히 담뱃값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복지부가 담뱃값 인상 카드를 꺼낸 이유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인남성 흡연율(44.3%)을 떨어뜨리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대책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2004년 인상 이전 60%에 가깝던 흡연율이 2년 만에 40%대로 떨어진 사례가 복지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동안 물가 인상 때문에 난색을 표해왔던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의 태도도 최근 변화의 기류를 타고 있다.
지난 1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담뱃값을 올릴 때가 됐다"고 발언, 담뱃값에 대한 재정부의 정책노선이 변했다는 것을 시사했다.
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담배 가격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 결정해야 하지만 2004년 인상한 이후 8년이 지났고 정액으로 돼있는 부담금에 대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야 한다"며 "이제는 담뱃값을 올릴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세인 담배소비세 업무를 관할하는 행정안전부에서도 담뱃값 인상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김현기 행안부 지방세제관은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현재 담배에 부과하는 담배소비세 종량세율에 물가 지수를 연동시키는 물가연동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5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담뱃값인상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도 담뱃값을 4500원으로 인상하자는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내놓았다.
그 동안 소강상태였던 담뱃값 인상 논란에 '불'이 지펴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