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성실신고확인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오는 5월 종합소득세 신고·납부부터 수입금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사업자들은 세무사로부터 사업소득 계산의 적정성을 확인받고, 관할 세무서에 성실신고확인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당초 제도 도입을 놓고 세무사 업계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지만, 한국세무사회를 중심으로 제도 시행의 장점을 부각시켰다.
세무사들이 국세청 세무조사에 버금가는 세금신고 확인 작업을 수행, 국내 유일의 세법·세무 전문 국가공인자격사로서의 입지를 보다 확고히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업계에 퍼지면서 정부의 제도 도입 작업에 탄력을 실어줬다.
특히 포화 상태가 된 지 오래인 기장대리 업무 등 기존 세무사 업무영역에 성실신고확인제도가 '블루오션'으로 인식, 세무사 업계에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사업자들의 성실신고확인 세무사 선임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현재, 세무사 시장의 반응은 최근 50년 만의 한파가 몰아닥친 바깥 날씨보다 차갑기만 하다.
각종 성실신고확인 리스트를 확인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지만, 고된 업무로 세무사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수임료는 '푼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과도한 업무량, "세무사가 다해주면 국세청은 뭐하나?" = 취재 과정에서 접한 세무사 대부분은 성실신고확인제도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
한 세무사는 "납세자에게는 추가 비용 부담만 주고, 세무사에게는 상당한 업무 부담만 생긴 꼴"이라며 "도대체 어떤 공무원이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세무사들 입장에서는 성실신고확인 자체의 업무량이 상당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고시한 '성실신고확인 체크리스트'에 따르면 세무사는 사업자가 소득을 줄이고자 가짜 비용을 신고했거나, 접대비 등 업무와 무관한 경비까지 공제 받았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사업자가 지출한 비용에 대해 세금계산서, 현금영수증, 신용카드 매출전표, 매입자발행세금계산서 등이 갖춰져 있는지를 들춰봐야 하고, 3만원 초과 거래에 증빙서류가 없는 경우 반드시 그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인건비, 복리후생비, 접대비, 여비·교통비, 차량유지비 등 각종 장부상 사업비용이 실제 업무와 관련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말 그대로 세무사들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대신하는 수준인 셈이다.
이 같은 성실신고확인 업무에 실수라도 저지를 경우 최대 2년 이하의 직무정지와 과태료 등 엄중한 징계 처분까지 받을 수 있어, 세무사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욱 커진다.
서울시 압구정동에 사무소를 운영 중인 한 세무사는 "세무사들이 수행하는 성실신고확인은 규모나 업무량에서 국세청 세무조사와 다를 바가 없다"며 "세무사들이 세무조사까지 해주면, 국세청은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고 불평했다.
□ "수임료는 쥐꼬리, 밥값도 안 나온다" = 특히 세무사들이 성실신고확인제도에 불만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전혀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시행 첫해를 맞아 세무사들이 받을 수 있는 수임료 수준이 애매하고, 노동 투입량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수임료를 받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최근 세무사들 사이에서는 성실신고확인 1건당 최저 '160만원' 이상은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60만원도 세무사들의 노동력 투입 대비 손익분기점이 아닌, 납세자가 부담해야 할 추가적인 납세순응비용 대비 손익분기점으로 세무사들이 부를 수 있는 '최저가' 개념이다.
현행 세법상 성실신고확인 대상 사업자들은 성실신고확인에 지출한 비용의 60%를 최대 100만원을 한도로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지출비용 전액은 다시 소득세 계산 시 필요경비로 공제된다.
이 같은 세액공제 및 필요경비 공제 혜택으로 사업자들은 약 160만원 이상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어, 세무사들에게 성실신고확인 수임료로 지불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논리다.
한 세무사는 "성실신고확인 대상 사업자들의 경우 160만원가량을 세무사에게 추가로 지불해도 세액공제 등을 받으면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라며 "하지만 세무조사에 버금가는 노력을 들여야 할 세무사 입장에서 바라 본 160만원은 투입한 노동력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임료"라고 설명했다.
□ "수임 경쟁은 무슨…울며 겨자 먹기" = 당초 성실신고확인 제도가 시행되면 세무사 시장에서 서로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과도한 수임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됐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임경쟁은커녕 성실신고확인 대상 사업자와 아예 거래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라는 전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세무사들이 기존 거래처 중 성실신고확인 대상 사업자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세무사는 "솔직히 성실신고확인 업무는 기존 거래처가 확인 대상에 포함된 경우에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해주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신규 거래처를 받을 때 성실신고확인 대상 사업자는 아예 받지도 않겠다는 세무사들도 많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개인 세무사무소 1개당 최소 4개에서 많으면 10개가량의 성실신고확인 대상 거래처를 보유하고 있어, 가뜩이나 기존 거래처에 대해서도 해주고 싶지 않은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늘리고자 새로운 거래처까지 찾아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