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세' 논란을 촉발시킨 장본인인 세계적 부자 워런 버핏이 증세 필요성을 언급한 부분은 근로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였다.
월급쟁이인 자신의 비서에게 적용되는 근로소득세율보다 자신이 주식투자를 해 벌어들인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이 더 낮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소득층 증세를 거론한 것은 심각한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재원확보 차원이지만, 근본적인 지향점은 뒤틀린 자본소득 과세체계에서 비롯된 계층 간 세부담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온 버핏세 논란에 대해 우리나라 정치권이 내린 결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사실상 고소득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판 버핏세가 도입됐고, 정치권의 복지경쟁과 융합되면서 대대적인 '부자증세' 논란으로 전이(轉移)됐다.
□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재검토 필요하다 = 현재 정치권에서는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중심으로 한 증세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불합리한 자본소득, 즉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제도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행 금융소득 종합과세제도는 이자·배당 등 금융소득이 연간 4000만원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된다. 그 이하의 금융소득에 대해서는 분리과세된다. 문제는 연간 이자·배당소득이 4000만원 이상이 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5% 금리로 가정할 때 이자소득이 연간 4000만원이 되려면 1년 동안 약 8억원 이상의 '목돈'을 통장에 넣어놓아야 한다. 게다가 부부별산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과세기준이 8000만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jpg)
차명계좌가 허용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돈 좀 있는 부자들이 얼마든지 자본을 분산예치, 과세망을 피해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아울러 경기부양 등 정책 목적을 위한 세제특례 금융상품이 상당하다는 점도 또 다른 '탈출구'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SOC, 해외개발, 리츠 펀드 등 비과세가 적용되는 펀드 투자를 통해 상당수의 금융부자들이 분리과세 등 혜택을 통해 과세망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금융소득 과세대상자의 보유 자산 및 담세 능력 등을 고려, 현행 금융소득 과세기준을 현재의 절반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낮추는 것이 일반 근로소득자와의 과세 형평성에 맞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조세전문가는 "이자소득으로 4000만원 가까이 벌어들인 사람과 300만원 정도를 번 사람에게 똑같이 14%의 소득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며 "이는 고소득자에 대한 특혜이며 상대적 저소득자에게 세금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는 총 4만8907명. 특히 금융소득이 1억원을 초과한 '금융부자'들의 숫자도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들이 2010년 벌어들인 금융소득의 총합은 무려 9조8527억원에 달했다.
□ 주식 양도차익 과세, '발상의 전환' 필요하다 =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조세제도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분야가 주식시장에 적용되는 과세제도. 현재 주식거래로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극히 일부에만 적용되고 있다.
상장회사 소액주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비과세이며 코스피 시장에서 지분율 3% 또는 지분총액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코스닥 시장-지분율 5% 또는 지분총액 50억원 이상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서만 양도세가 부과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천억원 규모 자금을 주식에 투자한 대형 투자자들도 대주주가 아닌 이상 벌어들인 소득이 얼마인지를 불문하고 거래 한 주당 0.3%에 불과한 증권거래세만 내면 된다. 거액을 벌어도 합당한 세금 한푼 내지 않아도 되는 불공평한 과세체계인 셈.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적법한 세금부과 문제 또한 오래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도입 필요성이 강조되어왔다. 금융시장의 충격을 감안해 전면적 과세가 어렵다면 적어도 양도세 과세기준인 대주주 등 요건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조세정의 차원에서만 놓고 본다면 주식양도 차익에 과세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비율이 상당한 국내 주식시장의 여건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제도를 바꾸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강조했다. 박 장관은 이와 관련해 "현실적인 측면에서 대만과 같은 급격한 제도 도입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도입한 일본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 조세전문가는 "지금 당장은 다소 이른 측면이 있고 정권의 입장에서도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과제"라며 "적법한 과세제도 도입 시 적게는 수조원, 많게는 1조∼20조원의 세수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국민소득 증가 추이를 감안해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소득세 '최저한세율' 도입, 국민개세주의 '확립' = 소득세 분야에서도 개선할 부분이 존재한다. 현재 정치권이 입에 올리고 있는 고소득층 소득세 부담강화와는 다른 차원이다. 너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소득세 '면세자'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는 아무리 적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라도 적은 액수의 세금을 부담케 하는 원칙. 일반 국민들이 납부하는 직접세 중 핵심인 소득세 분야에서는 이 같은 원칙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소득분 기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면세점 근로자가 전체 근로소득자 가운데 40%(592만명)에 육박하며, 자영업자 등 사업소득자도 면세비율이 비율이 47.2%(247만명)에 달하는 실정이다.
꾸준한 소득이 발생하는 근로자 또는 자영업자 10명 중 4명은 연말정산을 통해 원천징수된 세금을 환급받는 등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근로자 등에게 적용하는 각종 공제 또는 감면이 많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법인세 분야에서 작동하고 있는 '법인세 최저한세율' 제도를 소득세 분야에도 차용, 아무리 소득이 적더라도 일정액의 세금을 내도록 만드는 것이 조세정의와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소득세)최저한세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시행시기는 경제상황 등 종합적인 여건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 종교인에 대한 비과세, '기득권'이 아니다 = 종교인과 종교단체에 대한 과세문제도 한층 발전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열거주의를 택하고 있는 소득세법상 종교인(목사, 승려)들이 벌어들이는 근로소득 등에 대해 '비과세'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교회나 사찰로부터 급여를 받는, 사실상의 근로소득자인 이들은 '관행'을 이유로 과세사각지대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있다. 조세정책 및 행정당국도 여론의 압박을 의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관행에 맡겨두고 있는 형편이다.
수년 전 종교인 과세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나 정치권이나 소리가 요란하기 짝이 없는 방울을 고양이 목에 달겠다고 나서기에는 거대 세력화된 종교계의 힘을 감당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는 수면 아래 작은 목소리에 불과하지만, 종교인들에 대한 소득세 과세와 함께 교회·사찰 등이 재산운용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와 함께 고가 미술품에 대한 과세문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크고 작은 금품로비 등 비리사건에 고가의 미술품이 매개체로 등장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유는 거래와 관련한 과세체계가 미비해 거래투명성이 확보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정부가 소득세법을 개정, 6000만원 이상인 고가의 국내외 미술품(생존작가 제외)거래에 한해 양도세를 부과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지난 2010년말 국회에서 또 다시 과세 유예를 결정, 본격적인 시행은 내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여전히 미술계를 중심으로 시장위축과 개별 미술품의 가치산정의 문제점 등을 거론하면서 과세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향후 선거결과 및 정국주도권 변경에 따라 언제든지 뒤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조세정의 확립 차원에서 고가의 미술품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반드시 과세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표를 던지지 않는 조세전문가들을 찾아보긴 힘들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유엄식, 장은석, 이희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