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치권이 이야기하는 조세정의 확립의 방법론은 '부자증세'다.
상위 1%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99%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질투의 경제학'을 기반으로 한 포퓰리즘적 선동을 통해 유권자들의 표심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자증세를 조세정의와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억지논리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부자증세의 기원은 한국 정치의 특색이나 다름없는 '색깔론'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정부당국도 정치권의 움직임이 부담스럽기만 한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증세 논의는 현행 세법의 테두리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이를 벗어난 탈세행위에 대한 응분의 세부담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다듬은 뒤에도 국가적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전제하에 스타트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이와 관련해 한 조세전문가는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쏟아내는, 검증되지 않은 복지 정책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의 증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소득자 탈세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에게 무작정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는 것이 조세정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지하경제' 주범…악덕 탈세자, '관리감독' 강화하자 =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난, 상습 탈세자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금 낼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소득을 빼돌리며 호화생활을 누리는 악덕 탈세자들은 여전히 많다.
세금누수 문제를 떠나 '고소득자=탈세범'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 상당수 선량한 고소득자들의 피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조세정의 확립 차원에서, 완벽하게는 어렵더라도 일반국민들이 납득할 수준으로까지는 해결해야 할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세청에 따르면 2005년 이후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평균 소득탈루율은 4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중 세무조사를 받은 2601명의 고소득 자영업자가 실제로 번 소득은 총 7조4907억원에 육박했지만, 실제 신고한 금액은 총 3조8966억원(52%)에 불과했다.
이들이 탈루한 소득은 소위 '지하경제'의 핵심 구성요소가 된다.
지하경제는 실체가 없다. 그저 추정에 근거해 지하경제 지도를 그려낼 수 있을 뿐이다. 지하경제는 세수의 보고(寶庫)다. 정확하게 발굴해 세금을 제대로만 걷을 수 있다면 말이다.
추정치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가 GDP의 20∼30%에 이른다는 것이 보편화된 정설. 지난 2010년 기준 지하경제 규모 196조원 상당에 달한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추산치도 존재한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적정선의 세부담 없이 증발되는 돈의 액수를 추정해볼 수 있다. 지난 2010년 기준 민간소비 지출액은 615조원에 달했지만 이 가운데 카드와 현금영수증 등 세원이 노출되는 사용액은 478조원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136조원의 상당 부분이, '지하경제'를 지탱하는 돈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셈이다.
일각에선 탈세 등을 통해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간 세원을 찾아내 응분의 세부담을 지운다면 10∼20조원의 추가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현금거래의 길목을 잡아낼 수 있는 과세인프라, 즉 현금영수증과 신용카드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노출시킬 수 있는 인프라의 활용률을 지속적으로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과세당국의 행정적 강제와 함께 국민들의 '참여'가 성패를 쥐고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올해부터 시행되는 성실신고확인제 등과 같은 제도가 실제로 탈세차단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현재 0.09% 수준(2009년 기준)에 불과한 자영업자 세무조사 비율도 상향조정, 탈세 유인을 차단하는 과세당국의 적극적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과세당국 골탕 먹이는 '차명계좌' 틀어막아야 = '차명계좌' 문제도 조세정의 확립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 중 하나. 차명계좌는 최근 국세청이 찾아낸 탈세 사례에서도 불법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행 금융실명법상 차명계좌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이는 명백한 금융실명법의 맹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명제가 아닌 '차명거래 보호법'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세청도 차명계좌 때문에 '골탕'을 먹는 경우가 많다.
자녀 명의 통장에 재산을 넣어두면, 과세당국이 이를 증여로 판단하더라도 차명계좌라는 반발에 부딪치면 과세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차명계좌를 통한 재산의 분산 예치로 금융소득종합과세 적용대상에서 빠져나가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차명계좌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금융실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차명계좌 금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증여로 의심될 경우 과세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정도의 보완책이라도 마련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탈세의도가 명백한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점에 대한 인식, 해결책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여태껏 손을 대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다느냐의 문제를 둘러싸고 시간만 허비해버렸다는 것이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유엄식, 장은석, 이희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