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시절 
학생 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책을 찾아서 읽는 아이로 기억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고전부터 성인 서적까지 보이는 대로 글을 읽었다.
당시 용돈만 받으면 책을 사는 터라, 나중에는 집에 책을 쌓아둘 데가 없어질 정도가 되었다. 내가 비교적 단기간에 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때의 무수한 독서 경험에서 오는 이해력과 사고력, 독해력 덕인 것 같다.
꾸준한 독서는 텍스트를 이해하고, 저장하고, 글로 서술하는 작업을 거치는 어느 시험에서든 큰 도움이 된다.
2. 대학교
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공짜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컴퓨터도 무척 재밌어서 컴퓨터 동아리에 들어서 친구들이랑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지금도 성적표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그때가 아니면 누릴 수 없었던 캠퍼스의 낭만과 즐거움은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ASSET)으로 남을 것을 알기에, 비록 대변에 분개된 그만한 부채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3. 사법시험
스물두 살이 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물두 살의 반이 지나도록 민총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법시험을 2년 이내에 끝내기로 하고 일단 휴학하고 신림동으로 들어갔다.
1, 2학년때 고시공부는커녕 수업도 제대로 안 들어간 탓에 기초는 제로에 가까웠다. 스물세 살이던 1999년에 1차를 합격하고, 그 다음해 2000년 제4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4. 사법연수원, 법무관, 회사 시절
연수원 수료 후 법률구조공단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면서, 처음으로 송무를 경험해 보았다. 특히 내가 있었던 곳은 전국에서 사건 많기로 1, 2위를 다투던 곳이었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을 쌓을수 있었다.
학부 때부터 지적재산권을 꾸준히 전공해오면서 향후 이쪽으로 전문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당시 지인의 소개로 변호사분이 오너로 있던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회사에 변호사는 내가 처음이어서 처음 내부 통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특히 특허, 상표권 분쟁이 많았었는데 외국계 회사와의 소송이 잦았다. 그런데 변리사나 공대, 의약대 출신 변호사가 아니면 이쪽에서 전문화하기란 쉽지 않았고, 생각보다 변호사에게 주어진 영역이 크지 않았다.
나는 자문 분야의 메인스트림인 금융 분야에 일하고 싶었다. 근무하면서 지주회사 분할을 회계법인과 같이 일해 봤는데, 그때 회계나 세무쪽 지식이 있으면 참 유용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유상증자나 기업지배구조 변경, 회사분할 등의 업무는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과 같이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금융 분야 자격증 가운데 가장 어렵고 힘든 시험인 CPA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5. 출시의 변
회사를 그만두고 사표를 냈을 때, 나를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힘든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일확천금을 바라거나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가 아닌, 나중에 기업법무나 재무이슈를 다룰 때 다양한 지식으로 좀 더 다양한 진로선택의 기회를 찾고 싶은 마음이 컸다.
6개월 정도는 회사를 다니지 않고, 종로에서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특히 김기동 선생님의 재무회계 강의를 열심히 들었었다.
2010년 1차 CPA 시험을 치르고 지금 다니는 우리은행에 들어갔다. 2010년 CPA 1차는 알려진대로 역대 최고 난이도와 최저 합격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매년 몇천 명씩 뽑은 1차 합격자를 1235명만 뽑아, 2차 합격 인원(1000명)에 거의 근접했다.
그래서 기대도 안 했는데 운 좋게 커트라인을 넘어서 합격했다.
6. 2012년 최종합격하기까지
회계원리는 흥미로웠다. 특히 복식부기의 원리에 따라 차변과 대변이 정확하게 일치되는 과정은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고 놀라웠다.
각 과목의 공부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해 본다.
재무회계 : 1차 재무회계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50문제 가운데 25문제만 정확히 풀면 평균은 한다고 본다.그럴려면 '풀 문제'와 '스킵할 문제'를 구분한 다음, 풀 문제에만 시간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재무회계 공부의 출발점이다.
예를 들어 올해 재무회계 1차 문제중 감가상각 문제를 '정석대로 방정식 세워서' 풀어서 정답을 찾아냈다면 아마 재무회계 때문에 떨어질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본다. 경제학에서 게임이론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바람둥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여자를 만날 수 있나요?' 그러자 바람둥이가 말했다. '지혜로움과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궁금해 하며 물어보았다. '지혜로움과 현명함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이에대해 바람둥이는 '넘어갈 여자와 넘어가지 않을 여자를 구분하는 것이 지혜로움이고, 넘어갈 여자에게만 대쉬하는 것이 현명함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시험장에서는 풀 문제와 안 풀 문제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로움과, 풀 문제에 시간을 들이는 현명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공식 일명 '와꾸'를 만드는 것이다. 촉박한 시간과 긴장감 때문에 시험 시간에는 뭘 새롭게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2011년도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1차 재무회계 무더기 과락 사태가 기억날 것이다. 따라서 창의적인 생각보다는 어떤 문제를 보면 어떤 공식을 자동으로 떠올리고, 그 공식에 기계적으로 숫자만 집어넣으면 답이 튀어나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급회계 중 현금흐름표랑 오류수정 부분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현금흐름표는 현금을 제외한 다른 계정들의 움직임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생을 정말 많이 한 과목이었다.
쉽게 나오면 풀겠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꼬아서 나오면 손도 못 댈 느낌이었다. 나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계속 헤매는 편이다. 오류수정도 장부가 마감되었을 때와 아닐 때가 각각 논리가 틀려서 이해가 쉽지 않았다.
사실 처음 김기동 선생님에게 강의를 들을 때, 착실히 강의를 들은 부분은 나중에라도 이해가 됐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강의를 듣지 못한 부분은 나중에 많은 고생을 했다.
따라서 처음에는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전체를 빠지지 않고 착실히 들어두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라도 낫다.
원가회계 : 원가회계 1차는 대체로 재무회계보다는 쉽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뒤에 있는 원가부터 푸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2010년까지는 그런 전략이 그런대로 통했지만 올해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떨어졌을 것이다.
2011년 1차 원가가 12문제인가 나왔는데 난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물론 원가문제가 어렵다는 것을 파악하고, 다 찍긴 했지만, 어떻게 찍은 것마다 답이 비켜가는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원가와 재무는 어떤 것이 어렵게 나올지 모르니, 어려운 문제와 풀 문제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고급1차는 향후 출제 방향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재무회계는 점수밭이었다.작년과 올해 모두 고급은 상당히 쉬운 편이었고, 1차에서도 고급의 중요성은 점점 더 증대되리라 본다.
다만 고급은 '고급'이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쉽다는 것이지 결코 내용 자체가 쉽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고급회계는 강의를 듣지 않고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내용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부분이라는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개별재무제표와 별도재무제표, 연결재무제표의 구별기준은 저녁 시간 내내 봐도 이해가 안 되어서 괴로웠다. 연결분개 끊을 때 매출원가/재고자산 2년차 이후 분개가 이해가 안 되어(억지로 외웠지만 지금도 이해는 잘 안 됨) CPA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많았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IFRS 회계기준 번역을 너무 무성의하고, 이해하기 힘들게 한 탓이지만, 얇은 분량에 너무 성급하게 달려든 탓도 있었다.
경제학 : 경제학은 2010년은 역대 최고의 난이도이자 최저합격률의 주범이었고, 과거 점수밭이라던 경제학에서 여러 명이 우수수 걸려 넘어졌다. 정병열 연습서와 김판기 강의를 수도 없이 들었고 멘큐책과 3인 공저 까지 봤지만 문제를 보는 순간 심각한 혼란이 발생했다. 나는 패닉에 빠질 뻔했다.
난 문제를 풀다가 안될 것 같으면 비교적 쉽게 스킵하고 넘어가는 편인데, 그해 경제학은 1번부터 10번까지 줄줄이 건너뛰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1년 올해 경제학도 미시는 정말 어려웠다. 다행히 경제학 점수는 합격자 평균에 비해서도 무척 좋은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경제학 미시는 그냥 거시를 이해할 정도만 보고 거시랑 국제에 집중하는 것이 더 합격 확률은 높은 것 같다. 특히 2011년에는 전철 타고 시험장으로 가면서 국제경제학부분만 봤었는데 그 부분에서만 3, 4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세법 : 1차 세법은 할 말이 없다. 세무회계와는 달리 정말 객관식 세법은 나랑 맞지 않았고 점수도 저조했기 때문이다. 1년 더 공부해서 오히려 점수가 하락한 기이한(?) 과목이고, 객관식 세법은 시간은 촉박하고 숫자가 1만 틀려도 엉뚱한 답안이 나오는 탓에 부끄러운 점수만 받고 말았다.
경영학 : 경영학은 두 번에 걸친 1차에서 합격의 일등공신이었다. 회사생할을 해서인지 이해도 더 쉽게 되었다. 특히나 세법을 능가하는 숨막히는 암기량(특히 리더십과 조직이론의 학자들)이 있었지만, 세법과 달리 꼬거나 계산이 필요없다는 점 때문에 점수가 높았다.
경영학이야말로 시험 전날이나 당일 공부가 가장 빛을 발하는 과목인 것 같다. 특히 공부한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때는 기업가와 직장인 마인드(?)로 최선을 다해서 풀어야 한다.
재무관리 : 재무관리는 2010년 1차와 2011년 1차의 난이도가 극과 극이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2010년은 경제학과 함께 폭탄과목의 대표였고 2011년은 문제를 읽고 1초만에 답이 나오는 구구단 수준의 문제가 많아서 합격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만 1차를 통과해도 2차를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1차 공부할 때도 재무관리 공부의 기초와 기본을 착실히 해 둬야 하며, 특히 기업재무에 비해 파생쪽은 뒤에 있어서 공부에 소홀하기 쉬운데 오히려 문제는 파생쪽이 더 쉬운 것 같다.
사시2차에서 상법을 70점대로 최고점을 받았지만 CPA에서 저조한 이유는 양쪽이 공부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시는 2차과목의 특성상 주요 주제 위주로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면 CPA는 조문의 철저한 암기를 바탕으로 세세한 지식위주의 넓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문제집 위주의 공부는 금물이고 철저히 조문위주, 교과서, 판례 위주의 공부로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전 범위를 포괄하는 전략이 현명해 보인다.
회계감사 : 회계감사는 2차과목 중 사실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이다. 감사는 비교적 논술형에 가까운 시험으로 사시2차와도 성격이 유사하고, 내가 그러한 논술형 시험에 무척이나 강했기 때문이다.
유예와 동차와의 가장 큰 차이가 감사과목에서 난다고 하던데 오히려 난 동차에, 그것도 감사폭탄이라던 해에 합격했으니 자신감을 느낄 만 했다.
감사 책 1회독도 제대로 못한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냥 무작정 외우는게 아니라, 하나하나 사례를 실제 일어난 일로 생각하고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했던 게 컸던 것 같다.
7. 회사생활
회사(은행)에서는 준법지원부에서 의견서작성과 법률자문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정원보다 월등히 부족한 변호사 숫자로 사내변호사로서는 상당히 업무과중이 있는 편이었다.
하루에 많을 때는 3~4개씩 의견서를 써야 했고 수시로 걸려오는 상담전화(우리 회사의 지점은 국내에서 가장 많았고, 직원은 1만 5000명 이상이었다)까지 있었다. 사실 회사다니면서 CPA 2차 공부를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20대 초반의 경영학을 전공한 쌩쌩하고 체력좋은 대학생들이 하루 종일 공부에만 매달려도 최소 3, 4년씩 걸리는 시험에서, 회계라고는 시험 전에 대변과 차변도 모르는 사람이 달랑 6개월 공부하고, 매일 야근하며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2010년도에 한 과목 합격이라 곰곰이 생각한 끝에 2011년도에 1차에 재도전하기로 하고, 또 다시 짐을 하나 더 얹었다. 회사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꾸준히 쌓여가는 실력 속에 은근히 합격까지도 바라게 되었다.
발표날은 늘 그렇듯이 정말 떨렸다. 하지만 내 이름을 발견하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 그리고 내 주위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강물처럼 내 마음에 흘렀다.
8. 에필로그
끝으로 내가 일과 수험공부의 병행을 성공적으로 수행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주위 분들의 정성과 관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고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제가 한 분이라도 빠뜨리는 불찰이 있을까 봐 이 글과 마음으로나마 진심어린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다만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할 때 옆에서 밤낮으로 챙겨주신 어머님과 어여쁜 조카 가연이, 다민이에게 꼭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