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필요성 '원칙론' 공감, 비판 화살 맞은 '방법론'
정부가 한국조세연구원에 의뢰해 마련한 일감몰아주기 과세방안이 '난도질'을 당했다.
합리적 과세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마련된 공청회는 조세연구원이 제시한 방안에 여러 허점들이 발견되면서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 도입' 이라는 원론만 확인한 채 끝이 났다.
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일감몰아주기 과세방안에 대한 공청회에서는 조세연구원이 제시한 5개 방안에 대한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위헌적 요소는 물론 과세 방법적인 측면에서 논리의 틀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발제자인 한상국 전북대 교수는 ▲주식가치 증가분에 대한 증여세 과세 ▲영업이익에 대한 증여세 과세 ▲영업이익에 대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수혜기업에 대한 법인세 추가과세 ▲일감몰아준 기업의 비용 손금불산입 등 5대 과세방안을 제시했다.
한 교수는 "물량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무상이전은 전통적인 증여방식이 아니지만 그 경제적 실질은 증여행위로 볼 수 있다"며 "수혜기업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이 물량을 몰아주어 발생한 이익에 대해서는 과세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교수가 제시한 방안들은 대체적 '공감' 보다는 대체적 '비판' 형편을 면치 못했다.
정부는 이날 제시된 방안 중에 하나를 골라 이 달 말 발표예정인 올해 세제개편안에 담을 계획이지만, 상당한 논리적 허점을 완벽히 보완하지 못하거나 획기적인 방안을 내 놓지 않을 경우 국회통과 마저 어려울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제시된 방안 중 주식가치 증가분에 대한 증여세 과세방안은 세금 없는 부의 이전에 대한 철저한 과세가 가능할 것이라고 제시됐지만, 주식가치의 증가분을 일감몰아주기에 의한 이익으로 구분할 수 없고, 논리전개가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 조사본부장은 "주식가치에 대한 과세는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이며, 법인·소득세와의 중복과세의 문제가 있다"며 "상증세법은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재산에 대해 증여로 보고 있지만, 물량몰아주기의 경제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인지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전오 성균관대 교수는 주식가치에 대한 과세방안이 가장 타당하다면서도 "높거나 낮은 가격으로 몰아준 것은 과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상가격으로 몰아준 것은 그것이 무슨 증여냐 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며 "정상가격으로 몰아준다고 해서 과세하는 것은 외국에는 없다. 위헌 논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주식가치가 오를지 여부는 귀신도 모를 일인데 어떻게 이를 계산할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정상적인 주가상승분을 어떻게 찾아내서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대표로 참석한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물량몰아주기와 실제 주가 상승분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하다"며 "금통위의 금리결정도 주가에 영향을 주고, 환율변동도, 미국의 경제상황에도 폭락하는 것이 주가"라고 지적했다.
과세방안에 적극 찬성의 뜻을 표명한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소장도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은 기업들의 반발이 심하고, 논리전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주식양도차익 과세를 강화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영업이익에 대한 증여세 과세나 영업이익에 대한 배당소득세 분리과세도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배상근 본부장은 "영업이익이 1조가 났든, 5조가 났든 주가와 연관하기 어렵다. 배당이익에 대한 과세는 위헌성이 크고, 45%로 배당이익을 할증과세하는 부분은 왜 45%인지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오 교수도 "영업이익에 대해 주식보유분에 따라 과세하자는 것인데, 상법상 주주의 이익과 영업이익은 구분돼 있는데 영업이익을 곧 주주의 이익으로 칭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인세부담을 늘려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자는 방안들도 '뭇매'를 피하지 못했다.
이전오 교수는 "법인세 과세는 일감몰아주기 문제를 회사 자체에 과세할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이는 부의 이전에 대한 차단수단도 될 수 없고, 다른 주주의 일반이익을 해치는 것으로 도입근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배상근 본부장은 "법인에 과세하는 것 자체가 편법증여에 대한 과세라는 취지를 벗어났다"고 지적했고, 조세연구원 박명호 박사도 "헌법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증여세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아예 전면적인 재검토를 제안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일감몰아주기 과세도입 자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박 교수는 "일감몰아주기가 다른 기업의 일감을 뺏는 편법적 부의 대물림이라는 것을 증명해야하는데, 이를 증명하지 않는 이상 과세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증여와는 무관한 것을 억지로 과세하면 소송으로 연결되고, 위헌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공청회에서 제시된 방안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셌지만, 정부는 일단 현재에 제시된 안을 토대로 과세방안 마련을 차질없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김형돈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오늘 논의된 안을 바탕으로 이달 중으로 어떻게든 일감몰아주기 과세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비판적인 의견은 수렴하고, 장점들은 반영해서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