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지표경기의 회복세를 계속 따라잡지 못하자 내수확대로 문제해결을 시도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정부 각 부처 장관들에게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이달 안에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수출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내수시장이 작아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어렵다. 내수가 확대되어야 서민들이 살기 좋아진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지난 주말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무총리와 모든 부처 장·차관, 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정토론회에서 내수확대방안이 집중 논의됐고 이 토론회의 결과가 이달 말 발표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의 방점을 내수에 찍은 것은 서민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의 체감경기가 워낙 바닥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이 심해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체감경기 회복은 요원한 상황이다. 게다가 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경기부양이 불가피하다는 정치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는 1분기에 4.2% 성장했지만 기여도를 보면 순수출이 3.1%포인트, 내수가 1.1%포인트로 무역에 의한 성장효과가 내수부문의 3배에 육박했다. 이런 불균형은 여러 거시지표에서도 드러났다. 4월 광공업 출하를 보면 수출용 출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3% 급증했으나 내수용 출하는 2.2% 증가에 그쳤고, 내수와 직결된 자영업 취업자는 5월에 4만9000명이 감소해 2006년 5월 이후 61개월째 줄었다.
소비자물가는 5월에도 4.1% 오르면서 5개월째 4%대의 높은 수준을 지속했고, 하반기부터는 공공요금도 줄줄이 오를 예정이다. 또 1분기 말 가계부채 총액은 작년 동기 대비 8.4% 증가한 801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여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실효성 있는 정책수단이다. 소비자물가가 5개월 연속 4%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국가채무가 4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내수를 부양할 여지는 크지 않다. 이 때문에 무리한 내수부양은 피하면서 공급기반 확충 측면에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관광 등을 지원하는 이런저런 정책수단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 수단들 중에서는 특히 '중소상공인 골목경기 활성화'와 '국내관광 활성화' 방안이 눈길을 끈다. 영세 자영업자의 현장인 '골목상권'의 자생력 강화를 위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제한을 검토 중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입점 제한 범위를 기존의 '500ｍ 이내'에서 '1㎞ 이내'로 넓힌 유통산업발전법(일명 SSM 규제법) 개정안은 지난 달 국회상임위를 통과했다.
또 돈 있는 이들이 돈을 쓸 수 있도록 공공부문 근로시간을 9-6(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제에서 8-5(오전 8시 출근-오후 5시 퇴근)제로 바꿔 퇴근 시간을 앞당겨주고, 학생들의 방학 시기도 조율해 여행수요를 늘리는 방안도 제시됐다.
'주5일 수업제'가 내년에 전면 시행되면 주말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새로운 관광 수요를 일으킬 수 있고, 초·중·고생의 방학을 분산할 경우 휴가 기간도 다양해지고 관광 비수기를 없애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때 의원입법이 시도되고 정부도 부처 간 협의를 벌인 바 있는 '대체휴일제'의 시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체휴일제'란 법정 공휴일이 토·일요일과 겹치면 금요일이나 월요일을 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이다. 한마디로 돈 쓸 시간을 늘리고 돈 쓸 거리를 만들어주자는 얘기다.
그러나 이 같은 내수진작 아이디어들을 놓고 현실성 없는 급조된 대책들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유통시장 개방을 약속한 한·유럽연합(EU) 자유뮤역협정(FTA) 등으로 국제적 분쟁의 소지가 큰데다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맞벌이부부, 싱글족의 증가 등 생활패턴 다양화로 쇼핑시간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사라진 상황에서 영업시간 제한은 소비자권리에 역행한다는 반론이다.
또 우리나라 공휴일 수가 선진국과 비교해 적지 않은 현실에서 대체공휴일제 도입은 내수 진작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뿐만 아니라 노동일수 축소로 기업부담만 가중시킨다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볼멘소리다. 교육계 또한 내수 진작을 위한 방학조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교육은 교육논리로 접근해야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고(高)'물가 상황에서 정부가 고려 중인 묘책들이 고작 시장규제완화 등의 제도개선에만 국한되고 있어 실제 내수활성화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관계부처 간 이견에다 이해당사자들이 반발하고 있어 실제 시행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전체 GDP 가운데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60%다. 가계소득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소비수요 자체가 늘지 않는 한 인위적인 내수활성화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의 실질구매력을 늘리려면 재정 세제지원책이 절실하지만 그럴 경우 총수요를 늘려 물가에 부담을 준다. 물가를 생각하면 금리를 계속 올려야하지만 서민가계의 '이자폭탄'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등 거시경제정책운용은 곳곳에서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
개인 금융부채는 3월 말 현재 1006조6000억원으로 8년 만에 배 가까이 급증했다. 1년 동안 대출금리가 1.0%포인트만 올라도 연간 이자부담은 10조원이 불어난다. 가계소비가 위축되면 이는 기업매출 감소→고용축소→가계대출상환능력 악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부동산담보대출의 상당부분이 생활비나 창업자금 중소기업운영비라는 사실이 심각성을 더한다. 내수를 활성화시키려면 가계대출상환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논의는 원점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 속도를 강조하며 수출대기업 중심으로 운용돼온 정부의 정책기조는 이제 중소기업 중심의 내수기반을 다지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수출에 유리하도록 운용되어온 환율정책의 재검토가 당면과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협의단도 내수부문을 제2의 성장 동력으로 강화해야하며 이를 위해 환율의 유연성을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민간소비 위축은 부동산침체에도 큰 원인이 있다. 그렇다고 부동산경기를 인위적으로 띄울 수도 없다. 섬세한 금리정책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가계저축률을 끌어올리고, 그러면서도 부동산시장 붕괴를 피하며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황금의 해법'은 없는가.
내수활성화는 자질구레한 묘수나 땜질처방이 아니라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정공(正攻)법에서 해법을 찾아야한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