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 환율전쟁, 그 불똥 어디까지?

미국과 중국, 일본 간의 환율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위안화 절상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엔고 저지를 위한 추가 개입가능성을 일본정부가 배제하지 않고 있는 등 글로벌 통화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미, 중, 일 세 경제 대국간 갈등으로 경기회복을 위한 글로벌 공조 체제가 붕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경기침체를 막으려는 강대국들의 치열한 싸움에 한국은 이미 휘말려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급락(원화가치 급등)하면서 달러당 1,150원대가 무너지고, 원화가치상승세가 추세적으로 이어지리라는 분위기가 시장에 확산되면서 외국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주가와 채권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는 환율을 끌어내려 수출 및 경제성장 전반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코앞에 닥친 G20 서울정상회의에 이 이상의 악재(惡材)도 없다. 환율전쟁에 파묻혀 별 성과 없이 끝나게 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이번 환율전쟁에 불을 댕긴 것은 경제대국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하루 동안에만 2조 엔을 투입해 달러를 사들였다. 지난 2004년 이래 첫 시장개입으로 달러당 82엔대를 오가던 엔화는 하루사이 85엔 선까지 올랐다. 활시위를 떠난 불은 두 강국인 G2(미·중)로 바로 옮겨 붙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총리간의 '환율 담판'이 무위로 돌아가자 미 하원세입위원회는 위안화 저평가폭 만큼 중국의 대미수출품에 보복관세를 물리도록 허용하는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법안'을 가결시키며 고강도압박에 나섰다. 미 재무장관은 "G20 서울회의에서 중국위안화 절상을 위한 국제적 지지세력을 규합하겠다"고까지 공언한 터다.   

위안화는 국제적 표적이 되고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 등도 위안화 저평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국제공조를 통해 중국을 압박해야 할 시점에 일본이 '사고'를 친 것이다.

미국과 EU(유럽연합)의 맹비난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엔고저지를 위한 시장개입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외환시장 개입에 투입할 수 있는 시장안정기금 40조 엔을 확보해놓은 상태다.

일본이 엔화강세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은 만큼 시장개입은 옳았다는 평가도 없지는 않다. 문제는 일본의 시장개입이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브라질 등 신흥국가들에게 자국통화 절하를 위한 시장개입의 구실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의 환율정책이 세계여론의 표적이 되면서 동아시아가 글로벌통화전쟁의 격전지로 부각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자국통화 약세 경쟁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달러공급을 늘리는 양적완화로 달러화 약세화를 가속화시켜 미국산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려고 안간힘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기회복과 일자리창출 해법을 수출에서 찾기 위해 달러화 약세를 의도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지난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추가적인 양적 완화 조치를 실시할 방침을 밝힌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 같은 미국 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중국이다. 중국이 올해 들어 2% 수준의 위안화 절상을 단행했지만 이는 미국입장에서 태부족이며 위안화는 25~40%정도 저평가 된 것으로 미국은 추산하고 있다.  

미국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위안화 몰아치기'에 나선 것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정책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데다 일본에 외환시장 개입 저지를 촉구할 명분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위안화 환율을 급속하게 절상할 이유가 전혀 없다. 위안화 환율은 경제적인 문제며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고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중국의 환율 때문이 아니라 투자와 저축 간 불균형 등 미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며 위안화를 25-40% 절상하면 중국 수출기업들이 도산하고 노동자들이 실직해 중국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온다고 반박한다.

중국정부는 중국의 연간수출(2009년) 가운데 55.9%는 외국인투자기업들 몫이며 이들이 전체 무역흑자의 3분의 2를 점하고 있는 점을 내세운다. 중국이 수출하는 바비돌 인형의 경우 미국에서 10달러에 팔리지만 중국제조업체는 개당 35센트밖에 받지 못한다는 항변이다. 

어떻든 미국의 '실력행사'는 11월 중간선거 때 까지 가속화될 전망이다. 경기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아야하는 입장인데다 수출확대로 실업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번번이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닷없는 일본의 이탈은 중국 압박을 위한 국제공조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간 나오토 총리는 재임에 성공하자마자 시장개입에 나서는 결단력을 과시했다. 바깥세계는 '정치적인 시장개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엔화는 명목상 초강세로 보이지만 일본의 만성적 디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환율로 따지면 주요무역상대국 통화들에 대해 과다절상된 수준이 아니라는 전문가들 평가도 없지 않다. 간 총리가 줄줄이 예정돼있는 G7과 G20 등 다국적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단독으로 추진한 시장 개입을 어떤 논리로 설득할지 주목된다.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강세는 원화에도 강세요인으로 작용한다.

중국이 적어도 내달 15일 미국 재무부의 반기환율보고서가 제출될 때까지는 절상에 얼마간 성의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곧 원화에 대한 절상압력이다. 게다가 일본당국의 시장개입과 관련해 한국원화가 달러화에 대해 30%, 엔화에 대해 50% 정도 평가절하 돼 있다는 주장도 일본에서 불거진다.

환율조작국가로 의심받을 경우 중국을 잡기위해 쳐놓은 보복관세의 그물망에 한국이 희생양으로 걸려들 수도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판에 뒷짐만 지고 있을 수도, 그렇다고 섣불리 시장개입을 할 수도 없는 궁지로 몰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의 세계 경제3강이 자국통화 지키기에 함몰돼 연말까지 힘겨루기를 지속할 경우 G20 회원국 간 분란은 커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의도했던 글로벌금융안전망강화, 국제통화기금 출자지분개편, 개발도상국 경제개발을 위한 행동계획 등 야심 찬 의제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의장국으로서 싸움을 말리며 대화분위기를 조성하고, 우리에게 떨어지는 불똥은 그것대로 서둘러 수습해야하는 이중 3중의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