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자유주의 바람? 주류 규제 완화" 움직임 현실화
"필요한 부분은 규제해야…세금인상 등 부정적 효과 상존"
일제강점기였던 지난 1909년 일제가 주세법(酒稅法)을 만들어 주류 규제를 시작한 이후, 대한민국 주류산업은 대표적 '규제산업'으로 불려왔다.
제조면허, 원료, 생산, 유통 전 단계에 걸쳐 규제의 울타리가 쳐져 있다. 최근 신(新)자유주의 경제이론이 세계적 조류를 타고 대한민국 주류산업 정책에까지 전파되면서, 주류산업의 규제도 다소 걷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시장주의를 말하는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사케, 위스키, 와인 등이 세계적 주류로 성장해 각광을 받는 반면 우리나라 주류의 경우 세계적 명성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산업의 규제 때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최근 소주와 막걸리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류가 점차 국제적 외연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좀 더 힘차게 세계로 뻗어나갈 동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류산업 규제 완화를 말하는 선봉장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있다.
공정위의 대체적 기조는 주류산업 전반에 걸쳐 규제를 완화하고 지나친 관의 간섭을 철폐, 주류산업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이 같은 생각에 쉽게 동의하는 주류전문가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런 탓인지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해 온 공정위의 주류산업 규제완화 움직임도 약간 소강상태로 접어들은 형국이다.
□ 주류산업 규제 완화가 능사(?)…'선봉장'은 공정위= 공정위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려는 주류산업 규제 완화 움직임은 전체적인 '그림'에 있어서는 규제 완화가 '산업진흥'이라는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주류는 소주와 맥주. 이른바 '대중주'다.
그러나 이 주류를 생산하는 업체는 제한되어 있다. 시장진입을 위해서는 생산시설 기준 등 규제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 차례에 걸친 규제완화 결과 현행 주세법상 주류 생산 시설기준은 대폭 완화됐지만 '장치산업'이라는 특수성과 시장진입의 불확실성 등 요인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납세병마개 제조도 마찬가지. 그동안 정부가 면허를 내준 2개 제조업체(삼화왕관, 세왕금속공업)가 수십년간 과점을 해왔다. 시장주의 경제원칙에서 따져보면 이는 과도한 정부의 간섭이다. 따라서 일정 부분 풀어낼 필요는 있다.
지난해 9월 이명박 대통령 주재 하에 열린 제17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 공정위가 보고, 확정돼 현재 추진되고 있는 주류산업 진입규제 개선방안은 이 같은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철폐하는 것이 핵심이다.
납세병마개 제조자 지정이 확대(1개사 추가)되고 주류제조업 면허기준과 종합주류도매업 면허기준도 대폭 완화된다(2010년 중 주세법 시행령 개정). 전통주에 한해 인터넷 등을 통한 구입이 가능하도록 제한이 풀렸다.
□ "규제완화 무조건 좋은 것(?)…현실 고려해야"= 공정위의 이 같은 규제완화 움직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내놓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주류산업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대의명분은 동의하지만 현실과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규제는 무조건 완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인 것이다.
최근 공정위가 소주제조업체들의 '가격담합'을 문제삼으며 과징금을 부과, 논란을 일으킨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이미 방침이 결정되기는 했지만, 제조면허 요건을 완화하는 문제도 논란거리다.
업계에서는 무분별한 시설기준 완화가 신규기업의 참여를 유도, 경쟁을 통한 주류산업 발전의 근간이 될 것이라는 논리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주류시장 자체가 일부 대형 주류제조사 위주로 편제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시설규제가 이들 대형 주류제조사들을 보호하는 '특혜장벽'으로 인식되는 '오해'에서 비롯된 부분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주류 시설규제는 안동소주 등 증류식 소주는 35개 면허가 발급됐고 지금도 얼마든지 신청만 하면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돼 있다.
또한 맥주의 경우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가 무려 99개나 허용되어 있는 등 면허 받기가 상당히 자유롭다.
소위 '대중주'로 불리는 희석식 소주 또한 마찬가지. 현재 전국적으로 10개사가 제조판매를 하고 있는데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시중에 판매되는 소주의 종류도 60여개 품종을 상회하는 것은 물론 품질이 나쁘다는 불평도 들리지 않는다. 이미 세계 60여개 국가에 매년 1억2000만불이상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류산업 진흥, 이에 수반하는 대대적인 규제완화는 이러한 현실적 측면을 감안하면 정부가 불필요한 '과욕'을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오는 이유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각국 정부에 주류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수립해 추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이 같은 세계적 기류에 부합하지 않는 '엇박자 행보'를 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 주류 전문가는 "지난 십수년 동안 특정 제조업체들이 시장을 지배, 신규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한다해도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하다"라며 "소규모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해도 경쟁력 부족이라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무분별한 영세업자의 난립으로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저질·불법 주류의 양산으로 이어져 국민 건강 위협과 세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종합주류도매업면허 제도 개선도 마찬가지다. 주류의 불법유통에 따른 세수일실 등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를 '경쟁제한'의 측면에서만 판단해 장벽을 낮출 경우, 시장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정책을 오랫동안 다뤄왔던 업계의 한 전문가는 일반 국민들의 주류면허제도에 대한 이해도 부족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주류 제조는 일본, 영국, 미국 등 선진국들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면허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면허제는 자격, 시설기준에 더해 숫자를 관리(제한)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 일부 규제를 과도한 진입장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도의 근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술의 경우 총기, 마약, 화약 등과 같이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숫자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면허제를 채택,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주류업계 일각에서는 정작 완화해야 할 세금규제는 완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뜩이나 높은 세율(소주·맥주 72%)이 적용되는 주류에 '죄악세(Sin-Tax)'를 매기겠다고 나선 정부가 과연 주류산업 경쟁력 강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주류연구원 이종혁 연구원은 "주세가 인상되면 물가 인상을 동반, 서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수입주류 세율도 함께 인상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과의 통상마찰도 우려된다. 고도주 고세율, 저도주 저세율 과세체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