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금액 이상의 현금수입업종에 대해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에게 장부기장 내용의 정확성 여부를 검증 받도록 의무화하는 세무검증제도의 도입 문제가 9일 공청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논의됐다.
이날 서울 가락동 조세연구원 대강당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는 세무검증제도 도입문제에 대한 찬반논쟁이 팽팽히 이어졌다.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에서는 세원투명성 확보를 위해 국세청 세무조사를 보완할 수 있는 세무검증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세무검증 수행자로 지목된 세무대리인측과 세무검증 대상인 전문직종에서는 정부의 책임전가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용역을 통해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세원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김낙회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관은 "투명화를 위해서는 세무조사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국세청이 인력을 보강해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세무검증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업종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제도 도입초기에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특정업종부터 시작하는 것은) 정부가 제도 도입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점차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도 "전문직종의 소득탈루율 20%대는 절대 낮은 수치가 아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세무검증제도 도입을 적극 반대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탈루가 자행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무검증제도를 하게 되면 해당 업종이 세원투명성이 끌어올릴 수 있어 업종의 위상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도 도입에 찬성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세무사 대표로 나선 김완일 세무사(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는 "세무검증제의 비용과 책임이 모두 세무사한테 전가될 것"이라며 "정부의 징세기능과 납세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비용을 세무사한테 전가하는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상기 대한변호사협회 세제위원은 "세무검증제도는 정부에 부여된 조사권을 사인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특히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국민의 권리에 위촉되지 않는 것과 공익성보다 능률성이 더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만 민간에 위탁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세무검증은 이런 법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는 정부의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검증대상자로 지목된 의사들을 대표해서 토론한 장현재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납세자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은 특정 업종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라며 "세원관리의 편의성만 추구하는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이날 토론에 참석한 토론자들의 주요발언 내용이다.
□김낙회 재정부 조세정책관 "세무검증제도 부작용 최소화"= 정부는 그동안 세원투명성을 위해 거래외형을 노출시키는 간접적인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해왔고, 이에 따라 외형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현재는 비용의 문제다. 아직도 사업자들은 전년도에 준하는 세금을 납부하자는 관행이 있다. 비용 투명화를 위해서는 세무조사를 통해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국세청이 인력을 보강해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세무검증제도가 필요하다는 것.
특정 업종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제도 도입초기에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부가 제도 도입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 이 제도를 도입한다면 점차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세무사업계의 어려움은 충분히 공감한다. 세무사 입장에게 볼 때 성실하게 검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측하지 못한 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검증했다면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이 제도의 성패는 세무사들이 성실하게 검증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편 개인사업자가 추후에 근로소득자처럼 세원투명성이 높아져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면, 성실사업자에 대한 교육비, 의료비 공제 등을 통해 추가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김완일 세무사회 연구이사 "세무사만 책임증가"= 세무검증제는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업종을 대상으로 하는데, 예식장, 입시학원 등을 빼면 전문직으로 대상으로 한다. 세무검증제의 목적이 세원투명성 확대라면,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특정 업종만 하고 있어 문제다.
국세청 소득탈루율을 보면 현금수입업종은 40%, 전문직은 20%로 돼 있는데도 세무조사 대상은 전문직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마치 전문직종이 탈세업종처럼 인식돼있다.
또 전문직종의 납세협력비용을 계속 증가시키고 있는데, 이런 비용 발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더구나 정부의 징세비용은 최저수준이다. 우리나라는 100원을 징수하는데 0.7원이 들어가는데 비해 우리나라와 유사한 조세체계를 갖고 있는 일본은 1.54원이 들어간다. 이는 징세비용을 늘리지 않는 대신 납세협력비용을 늘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세무검증제의 비용이 모두 세무사한테 전가될 것이다. 정부의 징세기능과 납세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비용을 세무사한테 전가하는 것이다. 더구나 세무사 시장이 과당경쟁 상황에서 세무검증제에 따른 보수를 법에 명시하지 않는 한 적절한 비용을 받지도 못하면서 책임만 떠 안게 될 것이다.
□오윤택 한국공인회계사회 국세연구위원 "자기검증은 모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세원 투명성 제고 등 세무검증제도의 도입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제도가 특정 개인사업자만을 검증대상으로 하고 있어 세법의 기본원칙인 조세평등주의와 납세자 성실신고의 원칙에 반한다는 논란이 예상된다.
실효성 제고를 위해서는 세무검증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 장부기장세무사와 세무검증세무사를 분리하는 것이 겸임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장부기장 세무사가 자기검증을 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검증업무도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정상적인 검증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부실검증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세무검증비용은 과세당국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정부의 필요에 의해 사전적으로 세무대리인에게 검증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고, 납세자 자발적이 아닌 것을 특정납세자에 대해서만 실시하는 것이다.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따라 세수증대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과세관청이 세무검증비용을 전액부담하는 것이 옳다. 일부비용만 부담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상기 대한변호사협회 세제위원회 위원 "정부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 세무검증제도는 정부에 부여된 조사권을 사인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검증제도는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어 위험한 생각이 될 수 있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국민의 권리에 위촉되지 않는 것과 공익성보다 능률성이 더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만 민간에 위탁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세무검증은 이런 법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는 정부의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만약 검찰조직을 사인에게 위탁한다면 이를 수긍할 수 있겠는가.
신고납세제도는 납세자가 신고, 납부하도록 하고 있는데 객관적인 탈루가 있지 않음에도 세무검증하는 것은 소득세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 또 세무검증 대상사업자를 임의로 선정(현금수입업종 및 전문직)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권 및 과잉금지원칙에도 어긋난다.
만약에 세무검증제도를 도입한다면 이를 선택적으로 적용해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세무검증 확인자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세무대리인의 자격을 갖고 있는 자(변호사 등)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세무검증제도는 바람직"=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있어서는 정부의 명분론과 제도 대상의 현실론이 대립된다. 세무검증제도 역시 그러한데, 이번에는 현실론이 명분론을 뒤집기가 어려울 것이다.
제도 대상자들의 현실론을 다르게 해석해보면 어느 정도의 탈루는 어쩔 수 없지 않는가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디에도 탈루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또 전문직종의 소득탈루율이 20%대라고 하면서 탈루율이 낮은 것처럼 얘기하는 데 이 수치가 절대 낮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세무검증제도 도입을 적극 반대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탈루가 자행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무검증제도를 하게 되면 해당 업종이 세원투명성이 끌어올릴 수 있어 업종의 위상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회계사가 수행하는 외부감사제도와 마찬가지로 세무사가 세무검증을 하는 것이다. 부실검증이 드러나면 가산세와 징계가 부과된다고 하는데, 이는 검증에 대해 다시 검증하는 것으로 이렇다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이전에 자율적으로 불성실 납세자를 제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현재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세무검증제도는 특종업종의 부당한 차별"= 세무검증제도는 불공정하고 모순적이다. 조세정책은 조세제도의 기본적인 틀을 설계하는 일이고, 세금부담이 공평해야 한다. 납세협력의무도 부당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납세자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무검증제도는 의사, 변호사 등 일부 업종에만 적용하고 있고, 이렇게 차별화하는 것에 대한 근거는 없다.
소득탈루는 거의 모든 사업자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대규모 사업자일수록 탈루율이 큰데, 왜 이들은 세무검증대상에서 빠져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의료업계의 경우 수익금액의 100%가 건강보험에 적용돼 국세청에 통보돼 세원투명성이 충분히 이뤄졌다.
세원관리의 편의성만 추구하는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누락된 세원발굴 등은 엄연히 정부의 의무인데 이를 세무대리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세무조사 선정비율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홍기용 납세자연합회 회장 "강제세무대리제도 대상자에게도 도입해야"= 소득세법은 납세자가 세무를 신고·납부하도록 하는데, 일부 사업자는 의무적으로 세무대리인을 통해 신고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예컨대 세무사도 자기 세금을 스스로 내지 못하고, 타 세무사에게 부탁해야 한다. 이는 헌법 위반에 해당한다.
세무검증제도도 이러한 강제세무대리제도와 별 차이가 없다. 어느 나라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않다. 현재 강제세무대리제도 하에서는 정부가 납세자에게 납세협력비용을 전가시키고 있다. 세무대리인이 이에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도입했지만 법률적으로 이에 대한 세무대리인의 책임규정은 없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세무검증제도는 세무대리인에게 책임을 부여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 세무검증제도는 일부 고소득자에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세무대리제도 대상자 모두에게 부과해야 한다. 또 강제세무대리제도에도 세액공제가 필요하다.
한편 강제세무대리제도와 세무검증제도는 준조세적 납세협력비용을 전가시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유지할 제도는 아니다. 다만, 강제세무대리제도가 유지되는 한 세무검증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세무검증제도는 정부가 강제할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