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타산지석의 기회

세계 경제의 분위기가 자못 심상치 않다. 세계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유로 존(Euro Zone)의 여러 나라들이 심각한 재정 위기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른바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재정 건전성은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특히 경제 규모가 큰 스페인은 올 7월에 대규모 국채 만기 도래를 예정하고 있어 상환 실패시 발생할 국가부도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남유럽의 재정위기가 이제는 동유럽으로 다시 번져 가고 있다. IMF의 자금지원으로 한 고비를 넘겼던 헝가리 등의 재정위기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작년 국가 경쟁력 6위에 올랐던 핀란드마저 지난 1/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여 유럽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경기회복 뒤 다시 하강하는 소위 더블딥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유럽發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던 상황에서 핀란드가 첫 더블딥에 빠지자, 이제는 비단 남유럽과 동유럽 뿐 아니라 유로존(Euro Zone)의 다른 나라들도 재정위기를 염려하고 있다.

유럽국가들은 상호 간에 복잡한 채권채무로 얽혀 있어서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가 재정위기를 위해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을 할 경우 주요 채권국가들(프랑스, 독일, 영국)에게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웃 나라 일본의 재정위기에 대한 염려 역시 심각하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국가채무비율은 199.8%에 달해 24개 회원국 중 국가채무 건전성이 가장 악화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일본의 현재 국가채무는 역대 최대인 약 883조엔에 달하는데,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이에 얼마 전 새로 취임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일본이 재정적자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그리스와 같은 재정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간 총리는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세수 확보를 위한 세제개혁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OECD 보고서는 우리 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39.3%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이어 3번째로 양호한 수치이다. 위 수치만을 두고 보면, 일견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인 재정위기의 소용돌이를 비교적 안전하게 비켜 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지난 1분기의 경제성장률이 8%를 넘어서는 등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점도 일단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핀란드까지 집어 삼킨 유럽發 재정위기는 국제투자와 금융시장을 위축시킬 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 나라의 재무건전성 또한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우리 나라의 재정 수입은 과거에 비해 감소한 반면,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안정을 위한 재정확대로 인해 재정 지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의 재정수지도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적자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유럽發 재정위기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실정이다.

당초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출구전략의 시행 시기를 늦추게 된다면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조세정책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동안 6. 2. 지방선거를 의식한 나머지 당정에서 주요 국정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지 못 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6. 2. 지방선거가 끝난 이상 6. 2. 지방선거의 정치적 함의가 무엇이든 간에 국제경제 동향이나 우리 나라의 재정건전성이라는 관점에서 조세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먼저 현실을 돌이켜 보면, 앞서 설명하였듯이 우리 나라의 재정건전성도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예컨대, 2009년 9월 28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9 – 2013 국가재정운용계획안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국가채무는 2013년까지 49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위 전망치가 지금의 유럽發 재정위기나 글로벌 더블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임을 감안한다면, 향후의 국가채무 수준은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여기에 정부 통계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은 공기업의 부채 역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서 제기된다. 아울러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검토할 때에는 근본적으로 우리 나라 경제 시스템의 펀더멘탈 개선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민간경제 부문의 체질 개선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정수입 확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재정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각종 비과세·감면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몇몇 경제활동에 대한 비과세·감면제도는 그 자체로도 재정수입을 줄일 뿐 아니라,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거나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막아 이른바 조세중립성에 반한다. 따라서 비과세·감면제도에 대한 재정비는 단기적으로는 세수확보에 기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세수확보의 여력이 있는 세원을 양성화하여 재정기여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 대상으로는 물가수준이나 경제규모에 비하여 실질적 세부담이 낮은 세목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그 중의 하나가 담배소비세이다.

현행 담배소비세제는 종량세 방식(담배 1갑당 641원)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정기적으로 세율을 인상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 세부담이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예컨대, 과거 10년 동안 담배 관련 부가가치세는 약 210% 가량 세수가 증가한 반면, 담배소비세는 40%의 세수 증가에 그쳤다.

이와 같은 세목 사이의 세부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담배소비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만 하다. 예를 들어 담배소비세의 세율을 주기적·자동적으로 물가에 연동해 세율이 완만하게 인상한다면, 실질 세수 감소를 막으면서 재정수요에 부응할 수 있다. 아울러 물가에 연동하는 안정적인 세율 인상은 담배소비세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밖에도 재정수지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지금이 바로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검토·실행할 적기라는 사실이다. 

6. 2. 지방선거 이후 다시 우리 나라의 재정적 안정 및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논의에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경근 세무사] 미국 버클리대학 경영학 석사, 프랑스 시앙스포대학 경제학 박사, 국세공무원교육원 평가계장 역임, 국세청 본청 국제조세국 근무, 옛 재경원 세제실 국제조세과/소득세제과 주무서기관 근무, OECD 재정위원회 사무국 주무행정관·재정경제부 세제실 소득세제과장, 국제조세과장, 법인세제과장·유엔 산하 조세전문가회의 부의장 등 역임,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한국조정위원 활동, 법무법인 율촌(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