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 선택권 박탈…임의화 필요, 가산세 부과 폐지해야
"수정·보완 없이 개인사업자 확대시 엄청난 혼란 올 것"
전자세금계산서 제도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도 논란의 불씨는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제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표면으로 불거져 나오지 않았을 뿐 당장 내년부터 전자세금계산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사업자들의 잠재된 불만은 상당하다.
제도가 가지고 있는 기본 취지에 대한 반론은 없다. 자료보관 비용 절감 등 기업의 입장에서 편익이 증가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가가 납세자들에게 가혹한 수긍을 강요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불만이 높다.
지금이라도 패널티까지 부과하면서 강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고 일정 기간 동안 선택적으로(임의화)시행한 뒤 차근차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정책노선을 고쳐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 "기업 납세협력비용 부담 늘어날 것"= 정부는 전자세금계산서 도입으로 납세자들의 납세협력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선전에 동의의 뜻을 표하는 기업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납세협력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데 기업인들은 동의하고 있다. 국세청 e-세로 또는 ASP업체를 선정해 세금계산서 발행을 할 수 있지만 회사 회계시스템 등과의 연계문제로 인해 새로운 시스템 구축비용 등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 구축비용 등 소요되는 비용에 대한 세금혜택도 없다. 기업들의 '입'이 삐죽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세금계산서 발행 시마다 발행금액에 상관없이 일정액 이상의 '수수료' 부담이 발생한다. 종이세금계산서 발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납세협력비용인 셈이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에 있어서 '갑(매입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대기업들은 제외하더라도 '을(매출자)'의 입장에서 매출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하는 중소기업은 납세협력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가 전자세금계산서를 교부하지 않을 경우와 정해진 날짜(교부일 익월 10일)까지 국세청에 교부내역을 전송하지 않을 경우, 각각 공급가액 1∼2%의 가산세를 패널티로 설정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거래를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수정 사항이 발생, 실제 거래일에 비해 한참 뒤에 세금계산서를 끊는 경우도 상당하다"라며 "정부의 가산세 부과 방안은 기업간 재화거래와 세금계산서 수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체 관계자는 "단순히 세금계산서를 지연전송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의적인 소득누락, 탈세 등에 적용하는 가산세를 부과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 "적응기간 너무 짧다"= 상당수 기업인들은 전자세금계산서 제도를 강제 시행하기보다는 최소 1, 2년간 '적응기'를 부여해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충분히 적응한 뒤 자연스럽게 기업들 스스로 전자세금계산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래정보의 노출, 즉 보안문제에 있어서도 기업인들은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한 기업인은 "보안메일 등을 통해 전자세금계산서 수수가 이뤄진다고 하지만, 해킹으로 인한 거래정보의 유출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ASP업체들에 대한 '안정성' 문제도 거론된다.
특정 기업이 ASP업체의 서비스에 가입해 이용하다가 ASP업체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업체가 자금난으로 아예 문을 닫아 버릴 경우 회사의 기밀사항인 거래정보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가 없다는 지적.
또한 ASP업체와의 연계를 통해 세금계산서 발행 및 국세청 전송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 지연전송으로 인해 가산세가 부과될 경우 책임의 귀속여부에 대한 분쟁의 소지도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한 기업인은 이와 관련해 "제도 시행 이후 이 같은 문제점들이 발생할 경우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며 "이 같은 문제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후년 개인사업자들까지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을 의무화하려는 것은 혼란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 "'역발행'을 아시나요?"= 업계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 즉 전자세금계산서 제도가 시행될 경우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될 것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역발행'이다.
매입자가 매출자에게 대신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ERP시스템상 전자세금계산서 프로그램 또는 ASP업체의 서비스를 통해 거래 상대방인 중소기업 등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과 ASP업체가 역발행시 거래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는 등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역발행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은 ASP업체가 제공하는 전자세금계산서 발행 서비스간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거래 상대방이 가입하고 있는 ASP업체에 중복가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납세협력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일부 ASP업체에서는 특정 대기업과 연계, 해당 대기업이 발행하는 전자세금계산서는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거래업체의 역발행 건에 대해 높은 수수료를 책정하는 등 방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이메일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전자세금계산서 발행시 매입자와 매입자가 사용하는 ASP업체에 동시에 발행내역을 전송하는 방식) 향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시 매입자와 매입자가 사용하는 ASP업체에 동시에 발행내역을 전송하도록 국세청 고시를 통해 명확하게 할 방침"이라며 "이렇게 될 경우 우려되는 문제(중복가입 등)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주목되고 있는 국회 논의 향방= 전자세금계산서 제도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국회의 논의결과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전자세금계산서 '임의화', 미전송 가산세 완화 또는 일정기간 유예, 한 발더 나아가 아예 미전송 가산세를 폐지하는 입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전자세금계산서 임의화 및 미전송 가산세 폐지를 골자로 한 부가세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전자세금계산서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납세자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안 제출의 취지다.
기획재정부도 미전송 가산세 부분을 기간별로 구분해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시행은 내년부터 하되 가산세를 완화하거나 유예하는 내용의 논의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제도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고 ASP사업자들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상태에서 임의화로 전환하는 것은 정부 정책 신뢰성에 타격은 물론 시장의 혼란만 일으킬 것"이라며 "가산세 부분에 대해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