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 소위 잘나갔던 안원구 국장의 몰락과 검찰수사 그리고 이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 듯한 안 국장의 계속되는 폭로로 정치권마저 소용돌이 치고있다.
안 국장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폭로한 내용의 진위를 가리기에 앞서, '도대체 왜 안 국장이 국세청이 수용할 수 없는 인물로 몰려 퇴임 압박을 받는 등 벼랑에 섰으며, 왜 폭로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해야 했을까'에 많은 관심들을 보이고 있다.
국세청에서 한때 잘 나가는 '꿈나무'였던 그가 갖가지 폭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 안 국장은 국세청의 '귀한(?) 존재'였다
현재 국세청 인사운영에서 가장 심각한 현실은 행정고시 출신 간부들을 매해 일정규모로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데다, 이를 메워 줄 하위직 출신 간부들을 심한 인사적체로 제 때 공급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국세청은 한상률·오대식·김호업·권춘기·김갑순 등 20명에 가까웠던 행정고시 21회 출신에 이어 정병춘·허병익·이승재·김창환·김남문 등 5명의 22회를 제외하면 행시출신들의 절대적인 부족현상을 빚고 있다.
23회출신 국장급으로는 채경수·김영근·허장욱·이준성 등 4명에 그쳤했으며, 24회도 이현동·조홍희·공용표·임성균 등 국장급 4명에 불과했다. 이어 25회 출신은 조현관(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국장과 기획재정부에서 영입된 김문수 소득지원국장이 전부였다.
행시26회도 안 국장과 김영찬 노원세무서장 등 2명이 고작으로 안 국장은 말 그대로 가만히 있어도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는 국세청의 '귀한(?) 존재'였다.
국세청 관계자는 "행시출신 간부는 매년 10명 정도 국세청에 영입돼야 31명으로 구성된 국세청 고위공무원단 인사에 숨통이 트인다"며 "간신히 이어지는 행시출신 기수가 많아 큰 골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세청 안팎에서는 "안 국장은 행시기수 선배들을 따르면서 가만히 있더라도 국세청을 책임져야 할 기둥의 위치를 점할 수 있는 행운아였다"며 "꽃놀이 패를 쥔 그가 너무 앞서가려고 욕심을 부려 지금의 사태를 일으킨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 안 국장은 큰 꿈(?)을 가졌었나?
국세청 총무과장에서 일약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으로, 다시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으로 갔다가 대구지방국세청장에 임명되기까지 안 국장은 말 그대로 '초고속 행진'을 이어갔다.
그의 쾌속 승진을 지켜 본 국세청 선배들이 그에게 소위 '속도론'을 들어 '서서히 가라'고 권유했을 정도다.
한 전직 국세청 고위간부는 "안 국장에게 너무 앞서가는 것은 좋지 않다. 모난 돌이 되지 말고 다른 선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등 속도를 늦추라고 권고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안 국장으로부터 "다른 선배들은 나보다 2-3년 승진이 늦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뭐가 급해서 그렇게 서둘러 가냐. 너무 빠른 것은 나중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신호등 이론'을 펴기도 했다.
그는 "차를 운전하다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파란 불에서 노란 불로 신호등이 바뀌더라도 서둘러 건너야 한다. 거기서 머뭇거리게 되면 좌회전과 우회전 차량들에 밀려 한참 뒤에 건널 수밖에 없다. 인사라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2007년 추석을 전후해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장이었던 안 국장을 만났다는 한 지인은 "청장님은 행시기수로 봐 앞으로 국세청에서 어떤 자리도 갈 수 있는 꽃놀이 패를 쥔 행운아다. 이번에 대구청장을 마치면 본청 조사국장으로 가야하지 않느냐고 덕담을 건네자, 안 국장은 정색을 하면서 '나는 그보다 더 큰 꿈을 갖고 있다'고 말해 깜짝 놀랐었다"고 전했다.
안 국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정무적 판단을 하는데는 상당히 능했다"는 데 입을 모은다. 또 "안 국장이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느냐.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사람들을 그는 쉽게 만난다"는 말도 자주 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사퇴압박이 정점에 치닫던 시기 주호영 장관에게 보내는 구명서신을 통해 "지금의 정부가 태동할 때 제가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나름대로 국세행정에 관한 다양한 청사진을 준비해왔다"고 썼다.
현 정부 태동시기가 안 국장이 대구청장 시절임을 감안하면, 그는 이미 보다 더 큰 꿈을 안고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한 갖가지 생각을 구상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 일개 지방국세청장 치고는 그는 분명 높은 꿈을 갖고 있었다.
■ 안 국장의 추락…시작은 인사원칙의 변화
겉으로 드러난 안 국장의 끝없는 추락의 시작은 한상률 前국세청장이 그를 대구지방국세청장에서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임명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총무과장에서 서울청 조사1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 이미 예고돼 있었다.
안 국장이 서울청 조사1국장에 임명될 즈음 국세청은 이주성-전군표 청장 이후의 국세청을 누가 이끌 것인지를 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한상률-김호업-오대식 등 선두그룹을 따라 김갑순-권춘기-정상곤-허종구-조성규 등 기라성 같은 행시21회 출신들이 줄지어 있었다.
우려가 현실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차기 국세청장 자리를 두고 행시21회 동기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경합, 국세청 조직에 상처가 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안 국장은 서울청 조사1국장에 임명된 직후 인사의 의미를 묻는 조세일보 기자의 질문에 "이주성 청장과 전군표 차장이 차차기 국세청장 후계구도와 맞물려 만든 인사구도"라며 "행시26회 이상은 더 이상 본청과 서울청에 중용되지 않는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주성-전군표씨가 만든 이같은 국세청 고위공무원 인사원칙은 전군표 청장이 취임하고부터는 지켜지지 않았다. 그해 6월말 단행된 인사에서 전 前청장이 21회 출신 간부들을 대거 국세청 본청에 중용했던 것.
결과적으로 안 국장은 행시기수로는 5회나 선배들인 행시21회 출신들과 경합하는 인물이 됐으며, 유독 눈에 띄는 '모난 돌'이 되고 말았다.
2006년 연말에도 안 국장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너무나 눈에 띄는 그의 출세가도를 염려했던 전군표 청장이 그에게 "국방대학원 또는 중앙공무원교육원에 파견을 가서 승진속도를 조절하라"고 권유했던 것.
그러나 그는 이조차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동안 국세청 조직에 열심히 공헌했는데 왜 교육을 보내느냐"며 교육파견 방침에 반발했고, 결국 국세청 본청 국제조세관리관으로 더 높이 올라가면서 비극을 싹틔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