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노벨경제학상

2009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선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을 끌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1년 이상 지속되면서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에 대한 신뢰가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노벨경제학상의 공식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려 스웨덴중앙은행이 수여하는 경제과학(Economic Science)상'이다. 생전의 노벨과는 무관하고, 스웨덴중앙은행 창립300주년을 맞아 1969년부터 시상되고 있다. 그러나 '인류복지에 최대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노벨의 유지만큼은 경제학상이라고 변함이 있을 수가 없다.

인류복지에 공헌은 고사하고 전 세계를 경제적 고통에 몰아넣었다고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2009년 한 해 정도는 경제학상 시상자를 내지 않을 법도 했다. 시상을 거르는 것 자체가 경제학계에 중대한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벨상 당국은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학문적 성취보다는 신문에 비판적 칼럼쓰기에 더 열을 올리는 폴 크루그먼에게 상을 줌으로써 실망감을 안겼다. 크루그먼의 '새 무역이론'은 165년 전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대체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명백히 1980년대 중반 하버드의 엘허넌 헬프먼과 공동작품이었다. 따라서 상을 받는다면 헬프만과 공동으로 수상하는 것이 순리였었다. 더구나 시상업적으로 거론된 경제지리학에 대한 공헌은 크루그먼과 이렇다 할 연관이 적어 스웨덴 한림원의 학문적 판단력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노벨경제학상이 갈수록 권위와 격(格)이 떨어지고, 경제학상을 넘어 '노벨 사회과학상'으로 면모가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1972년 공동수상자인 존 힉스와 케네스 애로는 둘 중 한 명의 업적만으로 근년의 수상자 3명을 합친 것을 능가한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올해 공동 수상자 중 미국 인디애나대학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는 정치학자이고 UC 버클리의 올리버 윌리엄슨 교수 역시 경제학자라기보다는 경영대학원의 비즈니스 및 법학 쪽이다. 경제학자 아닌 사람에게 경제학상이 수여된 경우는 로날드 코오스(법률가) 존 내쉬(수학자) 대니얼 카너먼(심리학자)이 대표적이다.

경제현상은 경제학적 연구만으로 한계가 있고 정치학 사회학 법학 등 인접학문과의 폭넓은 협동연구 내지 통섭이 필수적이라는 메시지다.

특히 올해 수상자 선정에서는 '시장이 만능이 아니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깔려있다. 시장이외의 사회조직들 간 역학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시장과 시장의 효율을 중시하는 정통 경제이론에 경고를 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실세계에서 경제조직체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특히 기업내부에서 위계질서에 입각한 권위와 규칙에 의한 의사결정이 때로는 시장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이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경제학자들 5명중 4명은 오스트롬교수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할 정도다.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것을 공화당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싫어할 것이라는 경제학자의 코멘트도 나돈다.

바다나 호수의 물고기, 공유림 등 사회구성원 전체가 함께 소유하는 공유재산은 구성원 개개인의 이기적 경제행위 때문에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공유의 비극'이다.

전통경제학은 정부의 개입이나 민영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한다. 그러나 공동체중심의 자치를 통한 협력체제로 공유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환경파괴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게임이론이나 아프리카 등 세계각지의 사례를 통해 오스트롬은 이를 실증했다. 

윌리엄슨교수는 "경제학자들은 지금까지 기업을 투입물(inputs))을 산출물(outputs)로 변형시키는 블랙박스로만 취급했을 뿐 그 속을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 우리가 그 블랙박스를 열어 제친 것"이라고 의기양양해 한다.

시장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무엇이 결정하는가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비시장조직도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시상에 대해 "현실세계의 학자들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워싱턴 포스트) "주류경제학이 현실과 분리돼 고도로 수학적 노름이 되어왔는데 이번 상이 실용적 경제학자에게 주어져 긍정적이다"(월스트리트저널)라는 평가도 잇따른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경제현실 규명에 다양한 방법론과 새로운 연구지평을 제시했을 뿐 '노벨경제과학상'에 걸맞은 어떤 새로운 이론을 공식화하거나 모델을 확립한 것은 아니다.

경제학이 그동안 현실과 너무 고립돼왔고 이에 대한 각성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가 올해 노벨경제학상이라는 예일대 로버트 쉴러교수의 풀이가 한결 현실적이고 설득력있게 들린다.

인류복지증진에 기여한 사람에게 경제학상을 준다면 상아탑 학자만이 아니고 경제정책 입안가 기업가 기업의 혁신가 국제금융인 등 복리증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상을 주어야한다는 주장도 끈질기다.

1969년 이후 올해까지 수상자 64명 가운데 77%인 49명이 미국인 내지 미국시민권자다. 미국이 세계 각종 혁신의 1번지이고 경제학의 학문적 주도권을 미국이 장악한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면서 중국과 싱가포르 홍콩 대만 한국 등 신흥경제권 국가와 일본 등 흑자국 인사들에게도 상을 주어야한다는 여론도 고개를 든다.

금융위기로 세계가 고통받는 2008년 과 2009년 두 해 수상자 3명 모두가 위기의 진원지이자 만성적자국 미국에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노벨경제학상의 일대 아이러니다.

경제현실과 경제과학 간에 얼마간의 괴리는 어쩔 수가 없다. 이 간격을 최대한 좁히는 일이 노벨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다. 수상자 ‘발굴’노력을 게을리 하며 연례 상아탑잔치에 머무는 한 노벨경제학상은 계속 작아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