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총리 후보 "영·프와 핵 공유…핵 방위 적용 논의해야"
프랑스 "2020년 제안한 유럽 핵 방위 논의에 대한 응답"
영국 "유럽 대륙의 방위를 위해 리더십 발휘해야 할 때"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 대표. 사진=로이터통신
21일(현지시간)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독일 중도보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의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한 미국의 핵 보호 없이도 유럽이 스스로 방어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와 함께 나토의 핵 공유 정책에 따라 미국 핵무기를 수용하는 유럽 국가 중 하나다.
메르츠 대표는 독일 ZDF방송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나토의 상호 방위 약속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유럽인들은 유럽 대륙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유럽의 두 강대국인 영국과 프랑스와 함께 핵 공유, 또는 최소한 두 나라의 핵 방위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르츠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프랑스의 핵 방어 계획을 오랫동안 반대해 온 독일에 전략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폴리티코는 진단했다.
독일은 프랑스의 '전략적 자율성' 기조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독일과 핵무기 공유 방안을 모색하는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으며 이후로도 독일은 미국과의 관계를 이유로 거부했다.
하지만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꾸준히 지적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독일의 기독민주당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 14일 "미군이 지금은 유럽에 있지만 5년, 10년 또는 15년 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더 큰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유럽 주둔 미군 조정을 시사한 바 있다.
메르츠 CDU 대표의 발언에 프랑스는 크게 환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의 안보·국방전략을 세울 때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엘리제궁 관계자는 "프랑스가 2020년 제안한 유럽 핵 방위 논의에 대한 응답"이라며 "프랑스의 핵 억지력에 대해 마침내 독일이 지지하게 됐다"고 긍정 평가했다.
프랑스의 군사 정책을 담당하는 한 관리는 "미래의 총리이자, CDU 수장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놀라워하며 "수십년간 우리는 대서양 횡단주의라는 미명하에 국방에 대한 관심을 잃고 미국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었는데 이제 유럽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나토를 통해 유럽 동맹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는 영국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영국 의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인 탠 데시 노동당 의원은 "미국의 영향력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유럽 대륙의 방위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만 영국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미국과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어 새로운 유럽 핵 방어 체계 구축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의 헬로이스 파예 연구원은 "프랑스와 독일은 정치적 차원에서 후속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유럽이 위험에 처했을 때 대책을 세우려 한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라고 말했다.
